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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Apr 22. 2016

턱의 근황

딸이 추우면 엄마는 두배로 추운 거야

일어났을 때 입이 평소보다 2/1밖에 안 벌어지는 걸 알아챘다. 조금의 벌리는 시도를 해볼라치면 딱딱 거리는 소리가 나 신경을 건드렸다. 결국 이 사단이 나는구나 싶었던 게, 실은 이런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던 탓이다. 이틀째 되는 날 이상하게 호흡이 가빠오고 입으로 숨쉬는 게 전보다 버거워진 것이 느껴졌다. 코를 막고 입만으로 숨을 쉬는 시도를 했다. 숨이 전혀 내뱉어지지 않았다. 필시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는 확신이 생겼다. 꽤나 단단한 두려움이 미흡한 호흡 속에 섞여 있었다. 


가끔가다 엄마에게 무심하게 굴다가도 나는 늘 신변의 위협을 느낄 때면 엄마부터 찾게되었다. 본능 같은 것일까. 교묘하게 어긋난듯 했던 턱관절이 호흡의 순환을 방해한다는 판단이 든 순간 엄마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마침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기에 조금 늦는다는 운을 떼고, 나의 호흡상태가 어떤지, 턱때문에 겪어던 순간의 감정들을 이리저리 토해내곤 엄마의 답변을 기다렸다. 엄마는 늘 그렇듯 걱정묻은 목소리와 함께 내일 당장 아침 일찍 근처 대학병원에 가야한다고 말했다. 


매일 밤 머리를 감고 잠들면 다음 날 아침 머리상태는 내가 원하는 모양새를 갖추곤 했다. 때문에 나는 다음 날 나가야 할 일이 있으면 꼭 머리를 감고잤는데, 어제는 늦은 귀가 탓에 머리를 감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겼다. 늘러붙은 잠 때문인지 도무지 머리를 감을 여력이 생기지 않았다. 결국 고양이 세수를 하고, 작게 입을 벌려 칫솔질을 했다. 후에 어제 챙겨뒀던 검은 스키니와 반팔티를 입고 그 위에 작년에 언니가 사줬던 검은 가디건을 걸쳤다. 


엄마가 풍산역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애니골을 지나는 길에는 유독 신호가 많이 걸렸다. 엄마는 나와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며 운전을 해나갔는데 순간 신호를 어긴 차가 이제 막 바뀐 신호를 감지하고 나서는 우리차를 쌩-하니 지나갔다. 그 차에서 뿜어나오던 '빵빵' 거리던 클락션 소리는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던 어느 술취한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떠오르게 했다. 가끔 운전하는 엄마가 괜한 것으로 욕을 할 때면 나는 그럴수도 있지- 하고 넘겼었는데 이상하게 화를 감출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것은 그 차의 뻔뻔함 때문이기도 했지만, 차의 뒷 유리창에 붙어있던 문구 탓이 컸다. '아이가 타고 있어요'가 적힌 귀엽고도 무시무시했던 스티커의 자태. 


엄마는 극한 놀라움 탓인지 욕보다는 계속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엄마의 침묵에 되려 큰소리를 낸 건 나였다. '저 차 미쳤네! 미쳤어. 급하면 어제나오지 그랬어? 그치 엄마?" 슬슬 엄마의 눈치를 보는 사이 우리는 동국대병원 앞에 도착해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뒷산에서부터 내려오는 찬 기운이 온 몸을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손으로 팔을 슬슬 쓸어내리며 떨리는 입술을 애써감췄다. 집에서 나올 때부터 나의 얇은 옷차림을 못마땅해하던 엄마에게 필시 무언가 질타를 받을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은근슬쩍 팔짱을 끼는 나의 손목을 잡으며, 눈을 흘겼다. 그러곤 웃으며 말했다. "너는 애가 왜그러니? 딸이 추우면 엄마는 두배로 추운 거야. 좀 알면 따듯하게 좀 입고 다녀!" 나는 웃으며 그런 게 어딨냐고 흘려 말했다. 


접수처에 도착해 턱관절에 관한 진료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오전 예약이 다 차 종일 기다려야 할 참이었다. 결국 빈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차를 타고 돌아오며 집 앞에 가끔 가곤 했던 치과에 내려달라고 했다. 치과에는 이른 아침에도 꽤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대부분이 예약한 사람들이었다. 내 차례는 새로운 예약자들이 당도하고서도 20분이 흐른 후에야 돌아왔는데 진료실에 들어서 의자에 눕는 순간 대학병원의 예약이 꽉 차 있던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새로 온 것인지 치과 선생님은 둥그런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내가 늘상 외모적으로 이상형으로 꼽아오던 얼굴이었다. 떨리는 마음을 애써 감추고 입을 벌리고 누웠고, 의사는 턱 관절을 이리저리 만져보며 나의 상태에 대해 진단을 내렸다. 나는 나름의 차분한 코스프레를 하며 턱관절이 흐트러져서 숨쉬는 게 곤란했다고 말했다. 의사선생은 어이없어하며 턱관절이랑 호흡은 전혀 관계하지 않는다고 타박했다. 


나는 그런 일련의 과정에서 웃기게도 치과선생과 나의 관계에 대한 정의를 마무리 지었는데, 그것은 안좋은 쪽에 가까웠다. 틴트가 희미하게 남은 입술은 분명 보기 흉했을 것이고, 벌린 입이 만들어내는 턱의 과도한 움직임은 분명 호감을 가질만한 것이 못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잠시간의 설렘은 끝이났고, 설렘의 대가로 5천원을 지불했다. 나는 추운 몸을 슬슬 쓸어대며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2015년 3월 21일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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