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렁이의 하루 Ep. 1 <수상한 나마스떼>
3년 전부터 요가를 하고 있다. 많게는 일주일에 세 번, 적게는 한 번이라도 꼭 수업을 들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서울에서 자취하다가 본가인 일산으로 거취를 옮겼을 때 만난 G 선생님은 내가 만난 요가 선생님 중 가장 다정하게 수업을 진행하곤 한다. 자세를 취하느라 한껏 구겨진 수강생들의 얼굴을 보며 눈빛으로 잘하고 있다 말을 건넬 때도 있고, 때론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채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선생님이 건넨 칭찬의 신호를 제때 줍는 날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헤실 웃음이 나오는 걸 막을 수 없다.
G 선생님이 하는 수업 중 가장 좋아하는 건 ‘아쉬탕가 요가’인데, 정해진 순서가 있어서 오래 수업을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순서를 외울 수 있게 된다. 시퀀스의 흐름에 내 몸을 온전히 맡긴 채 1시간을 보내는 재미가 있다. 3년 동안 요가를 하다 보니, 눈을 감고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동작을 자동으로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에 온전히 나의 몸과 마음을 맡기다 보면 머리는 비워진다. 요가는 딴생각에서 나를 해방시키는 하루 중 유일의 시간이다. 특히 요가 시퀀스 중 가장 마지막 단계에 하는 ‘사바 아사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사나’이기도 하다. 매트에 누워 몸을 이완시키고 눈을 감는다. 하늘을 본 채 팔을 바닥으로 길게 늘어뜨린다. 몸과 마음은 붕 뜨고 다른 차원의 세계로 도달한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렇게 10여 분쯤 보내고 나면 곧 ‘싱잉볼’ 소리에 선생님 목소리가 더해져 현실로 되돌아오게 된다. 눈을 끔뻑끔뻑 감았다 뜨면 오른편 벽면에 들어찬 전신 거울이, 정면엔 가부좌를 튼 선생님이 고요하게 앉아있는 일산의 요가원임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정신을 가다듬고 앉은 수강생들의 기척을 느낀 선생님은, 한동안 그날 수업에 대한 브리핑을 한 뒤 두 손을 모으고 말한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저는 또 매트 위에서 뵙겠습니다. 나마스떼" 나를 비롯한 수강생들의 목소리가 덧씌워진다. "나마스떼. 감사합니다"
라디오 작가라는 직업병 때문일까? 가끔은 그 멘트가 라디오 클로징 멘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오늘 함께 해줘서 고맙다는 말, 그리고 다음 시간에 또 보자는 말을 대신하는 느낌이었다. 이 생각이 직업병에서 비롯된 거라면 얼마 전 아침 요가 시간에 일어난 일은 직업병, 아니 그냥 덜렁이의 고질병일 거다.
그날도 어김없이 몸을 일으켜 요가 수업을 들으러 갔다. 이상하게 자꾸 딴생각이 들어서 요가에 집중이 잘 되질 않았다. 수업은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고 내 생각은 딴 길에 딴 길로 자꾸 새기 시작했다. '점심 뭐 먹지? 육개장? 김치볶음밥?' 속으로 군침을 꿀꺽 삼키는 사이, 그 틈을 비집고 선생님이 마무리 멘트를 하는 게 들렸다. 서둘러 상념을 털 듯 머리를 털어냈다.
곧이어 선생님의 입에서 요가 수업 클로징 멘트가 흘러나왔다. "그럼 저는 또 다음에 매트 위에서 뵙겠습니다. 나마스떼" 곧 모두가 선생님을 따라 '나마스떼' 합창을 해야 할 차례, 나도 두 손을 꼭 모으고 진중한 목소리로 외쳤다. '스미마셍-'
순간 얼굴이 달아오른 나는 휙, 휙, 소리가 나도록 주변을 살펴봤다.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 다행이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나 보다. 이럴 땐 목청이 작은 게 참 좋단 실없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곧 ‘스미마셍’의 유일한 청취자는 나는 그만 스스로가 너무 웃긴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매트를 정리하는 손길이 빨라진다. 씰룩거리는 입술이 겨우 웃음을 삼켜낸다. 정신 수련을 해야 하는 요가 시간에도 나사가 하나씩 빠져있다니. 굴러다니는 나사를 겨우 주워 학원을 나섰다. 다음 시간엔 더욱더, 꽉 조여 매야지. 음. 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 글 : 다다 (인스타그램 @ddidawn)
⊙ 그림 : 서콩 (인스타그램 @se0c0ng)
⊙ 덜렁이의 하루 (인스타그램 @dadasho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