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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Nov 06. 2024

[덜렁이의 하루] (6) : 하얀색 뉴발란스

덜렁이의 하루 Ep. 6 <하얀색 뉴발란스>


망원동에 살던 친구 ‘연’이 운동을 같이 하자고 나의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여성들을 위한 운동 센터를 발견했다며 얇은 나의 귀까지 간지럽히기 시작하자, 별수 없이 넘어가야지 뭐. 느릿느릿 운동복을 챙겨입고 나섰다. 집에서 1시간 넘게 떨어진 곳에 있는 센터였지만, 새로운 공간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넘실거렸다.

도착하자마자 연이와 누워 스트레칭부터 했다. 친절하지만 단호한 트레이너 선생님이 다가왔다. 웃는 얼굴로 우리의 몸을 진두지휘하는 선생님에게 1시간 동안 혹독히 굴려졌다. 내 몸이 내 맘대로 안 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시간이었다. 삐뚤어진 자세를 선생님은 하나하나 짚어가며 요목조목, 원인과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음, 한 쪽 다리가 조금 더 긴 편이시네요?"


선생님의 말에, 마치 도사를 보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헉 네네. 맞아요. 골반이 좀 틀어졌거든요."


나의 열띤 맞장구에, 선생님도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내 결심한 듯 말했다.


"지금, 많이 불균형한 편이니까, 운동 계속하면서 교정해 봐요. 우리"


고된 운동에 지쳐 널브러진 몸뚱아리로 선생님 말에 눈을 빛냈다. 몇 개월 뒤 꼿꼿해진 몸으로 거리를 활보할 내가 마구 상상되기 시작하자, 단숨에 기분이 좋아진다. 삐그덕거리는 몸뚱아리를 고쳐주러 온, 나의 구원자. 왕복 2시간의 결실이 이렇게 맺어지는구나. 인터넷으로 하루 체험권만 끊었던 나는, 돌아가는 길에 정기권을 끊어야겠다고 결심한다.  

몸은 어기적거렸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일산 가는 버스에 오르고 나서도 신이 났다. 한 10분 정도 갔을까, 그때, 띠링-하고 단체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하얀색 뉴발란스 신발을 잘못 신고 가신 분은 강사님 신발이오니 연락 바랍니다.]


‘엥? 남의 운동화인지도 모르고 고대로 신고 홀랑 가버렸다구?? 그 사람도 참 정신없이 사나 부네.' 

얼굴도 모르는 이의 덤벙거림에 혀를 끌끌 차며 동정하고 있던 그때. 나의 눈이 무심코 내 신발을 향했다. 묘하게 낯설고, 수상하리만큼 새하얀 운동화. 내 신발이 이렇게 깨끗할 리가 없는데, 아무리 부정해 봐도 모든 정황이 말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사는' 그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가 나라는 것을.

달아오른 얼굴로 버스의 빨간 스탑 버튼을 눌렀고, 다시 운동센터로 향했다. 다음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오는 선생님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변명만 질질 늘어놨다. "죄송해요... 제가아… 너무 정신이 없어서.. 어쩌구 저쩌구.. 색도 너무 비슷하구.. 어쩌구 저쩌구..."

선생님은 웃는 얼굴이긴 했지만 어쩐지 아까 나에게 지어주던 웃음보다는 2도 정도, 더 차갑게 느껴진 것은 기분 탓이었을까. 그랬으면 좋겠네. 기다랗게 이어진 하루 끝, 결심 하나를 지운다. 정기권은 무슨!


⊙ 덜렁이의 하루 (인스타그램 @dadashour)

⊙ 글 : 다다 (인스타그램 @ddidawn)

⊙ 그림 : 서콩 (인스타그램 @se0c0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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