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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Nov 13. 2024

[덜렁이의 하루] (7) : 축축한 제주도의 오후

덜렁이의 하루 Ep. 7 <축축한 제주도의 오후>


퇴사하고 발리, 홍콩, 싱가포르, 태국, 부산까지. 계획 없이 장소를 옮겨 길게는 한 달, 짧게는 일주일을 지내며 시간에 몸을 뉘었다. 집에 붙어있지 않은 까닭은 내가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누구의 간섭 없이 먹고 싶을 때 밥을 먹고, 발이 가는 방향을 따라 몸을 옮기고만 싶었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좀 알고 싶었다. 예정 없이 생긴 약속에 끌려다니고 싶지 않았다. 그 무엇보다 ‘나의 의지’대로 일상을 꾸려가고 싶다는 욕구가 나를 떠밀기 시작했다. 충동적으로 제주도행 비행기 티켓을 끊은 이유였다.

하지만 자꾸 전학 첫날의 기분을 느끼고 만다. 어색하고 낯설고, 잠자리도 불편하다. 게스트 하우스 1인실이 오랜만이어서 그런가, 방문 틈으로 스며드는 빛과 소음에 몸을 뒤척거리다 겨우 잠에 들었다. 그래도 며칠 뒤엔 빌라 형태의 숙소 개인실로 옮기니 그때까지만 참자. 그렇게 나흘을 보내고 성산일출봉 앞 숙소로 택시를 타고 갔다. 


새로운 숙소는 방 한쪽에 크게 유리창이 자리해 있었다. 마음에 든다. 해가 지기 전까진 방의 흰 벽지를 닮아 밝기만 하다. 넉넉한 퀸사이즈 침대도 푹신하고, 모던한 느낌의 블루투스 스피커 음질도 나쁘지 않다. 정말이지 나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마음은 변하질 않네. 


호기롭게 떠나온 일산의 자그마한 나의 방, 안락한 토퍼 위에 누워있는 나를 상상하다가 그만뒀다. 자꾸 비집고 들어오려는 생각을, 고개를 저어 털어냈다. 그래, 기왕 온 거 내가 그토록 원한 나의 의지로 어디든 돌아다녀 보자. 계획은 없더라도 그래서 생겨날 우연한 발견을 기대하자, 그렇게 다짐하며 숙소를 나섰다. 어느새 시간은 오후 2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약 2년 만에 온 제주도는 새로울 게 하나도 없었다. 여전히 물가는 비쌌고 이제는 ‘감성’이라는 이름으로 치장된 카페를 봐도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감정도, 감동도, 모두 잃어버린 사람 같아서 스스로가 낯설어졌다. 


게다가 더워도 너무 덥다. 6월인데 이렇게 더워도 되는 건가? 5분 걸었을 뿐인데 등에서 난 땀이 티셔츠를 적시고, 길들였다고 생각한 샌들이 발에 물집을 내기 시작했다. 백반을 먹고 싶다. 산뜻한 여러 종류의 나물과, 갓 구운 생선이 올라가 있고 반질반질한 흰밥이 입에서 보들보들 녹아내리는 백반 한 상 차림이면, 물집의 고통도 잊을 수 있을 거 같았다. 마침 숙소가 있는 성산일출봉 근처에 갈만한 백반집 몇개를 발견했다. 면전에서의 거절이 두려운 나는, 전화부터 건다. 

“안녕하세요. 혹시 백반 1인분도 파시나요?”


“2인부터 가능합니다~” 


미련이 없다는 듯 뚝- 하고 끊길 때도 있고 미안하다는 듯 부연 설명을 붙이는 곳도 있었다. 뭐가 되었든 한 명으로는 백반 정식을 먹을 수 없다는 뜻이군. 나 홀로 여행객의 설움이 밀려온다.

겨우 성산일출봉 근처 식당에서 순두부찌개를 사 먹었다. 밑반찬이 나쁘지 않다. 그래도 생선구이가 먹고 싶었는데 쩝. 소리를 내며, 카페로 향했다가 눈이 땡그래졌다. 감귤주스 7천 원이라니. 외출한 지 두 시간 만에 2만 원을 쓸 수는 없지. 머리로 셈을 마치고 다시 숙소로 향했다. 참 사람은 간사하다. 낯선 숙소는 외출 한 번에, ‘홈, 스위트 홈’이 되어 나를 안도하게 했다. 


해도 지기 전인데, 숙소로 돌아온 결정도 ‘나의 의지’라면 의지인 게지. 모르겠다. 몸이 힘들어지니 복잡한 생각은 저 멀리 꽁무니를 빼고 도망을 친지 오래다. 샤워로 더위를 달래고 침대에 다이빙했다. 


한참 동안 이불을 뗏목 삼아 헤엄을 치고 나니 잠깐이나마 고생한 발이 눈에 들어왔다. 물집이 아물지 않는 발바닥도, 건조해서 이리저리 갈라진 뒤꿈치도 참 안쓰럽게 느껴졌다. 항상 지니고 다니는 바셀린을 꺼내 꼼꼼히, 듬뿍 발랐다. 

기껏 바른 게 뭉개지면 안 되니까, 한 시간은 발을 공중에 띄운 채 침대에 좀 누워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바셀린 바른 것도 까먹고 돌아다닐 나의 모습이 상상되자, 나에게 삿대질도 좀 했다. 너 이번엔 절대 땅에 발 디디면 안 된다. 응? 진짜 제발 좀 지켜. 알았지? 

다섯 번 정도 타일렀으니 이 정도면 알아들었겠지. 흡족하게 웃으며 멀리 있는 충전기를 가지러 갔다. 발바닥에선 챱챱 소리가 났다. 축축한 제주도의 오후가 울상이 된 나를 지나쳐 흘러가고 있었다. 


⊙ 덜렁이의 하루 (인스타그램 @dadashour)

⊙ 글 : 다다 (인스타그램 @ddidawn)

⊙ 그림 : 서콩 (인스타그램 @se0c0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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