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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 미용실

by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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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은 꼭 머리를 자르거나, 염색하는 엄마에겐 단골 미용실이 있다. 예전에 살던 동네에 있는 ‘금영 미용실’. 집에서 나오면 코앞이었던 곳은 이젠 걸어서 30분, 차로는 10분을 가야 나오지만 그곳까지 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원하는 스타일로 알아서 척척, 머리를 잘라주는 건 물론이고 서로의 공과 사까지 나눌 수 있는 베테랑 미용사, ‘금영 이모’가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남을 때, 또는 자주 다듬지 않는 머리를 갑자기 자르고 싶을 때 나도 따라나서곤 한다.


미용실에 가면, 금영 이모가 환한 얼굴로 반긴다. 나를 미용실 의자에 앉히고는 가위와 빗, 기타 작업 도구를 꺼내면서도 함께 온 엄마와 수다 떠느라 고개는 한참 뒤로 향한다. 잠시간 저만치 밀려난 손님이 되지만 상관없다. 두 중년 여성의 수다 사이로 ‘헉, 진짜요?’, ‘우와’, ‘아이궁’ 등 조미료 같은 리액션을 첨가하는 건, 오래전 나에게 부여된 역할이었으니까.


한참을 금영 이모와 수다를 떨던 엄마가 일이 있어 집에 먼저 가면, 이번엔 내가 금영 이모의 대화 상대가 된다. 샥샥- 머리가 잘리는 동안 수다가 끊이질 않는다. 그사이 난 금영 이모의 1시간짜리 절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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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졸업 사진을 찍기 전 머리를 정리할 때도, 푸석한 머리에 변화를 주고 싶어 볼륨매직을 할 때도, 그리고 서른을 앞두고 탈색을 결심했을 때도 나는 '금영 미용실'에 갔다.


그때를 난, 이렇게 회상한다.


우연히 본 잡지에서 사진 하나를 보게 된다. 오묘한 회색빛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여성 모델에게 시선을 빼앗긴다. 눈을 반짝이며 검색에 들어간다. 그리고 마주한 머리 색의 이름은 ‘애쉬그레이’. 해석하면 ‘잿빛 회색’의 머리라니. 이름마저 멋있다. 검은 도포 자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칼을 휘두르면 바람 소리마저 가를 것 같은, ‘실눈캐’는 곧 내가 된다. 염색 경험이 별로 없던 나는, 머리에게 일탈을 허락한다. 당장 이 잿빛 회색을 머리에 들이지 않고는, 시름 앓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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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로 바로 ‘금영 미용실’로 향했다. 자기만의 미용 철학이 확고한 금영 이모는 고객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한편, 직설적인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안 어울릴 거 같거나 머리가 상할 것 같은 건 솔직하게 털어놓는 미용인이었다. 별안간 애쉬그레이 색으로 염색하고 싶다는 말에, 금영 이모는 말했다.


“하고 싶은 건 해야지. 근데 탈색하면 머릿결 상할 텐데.. 그냥 갈색으로 염색하지?”


물론 고집스러운 고개는 끄덕이는 법이 없었다. 금영 이모는 결국 약을 들고 내 뒤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면서 말했다.


“오늘은 탈색만 하고 내일 네가 원하는 애쉬그레이 색으로 덮자. 하루에 다 하면 머리에 안 좋잖아. 그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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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왔다. 금영 이모의 습관. 금영 이모는 말끝에 항상, '그치이~?' 하고 되물어보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자동응답기 같은 말이어도, 나는 꼬박꼬박 맞장구를 치곤 했다. 곧 3시간은 꼼짝 없이 자그마한 미용실 의자에 앉아, 금영 이모와 하루 절친이 되어야 하는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나와는 다른 세계를 사는 직업인의 일상을 엿보는 일이 흥미를 자아내기에 내심 기쁘기까지 했다.


수다를 떠는 사이사이, 금영 이모가 조심스레 내 머리에 약을 바른다. 잠시간 난, 비닐로 머리가 덮인 채 뜨거운 빛을 쐰다. 기다란 소파에 뒤로 눕혀지고, 머리도 감겨진다. 과정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언제 지났는지도 모르게 3시간이 흘러있다. 그 사이 이모와는 미용실 단골손님 얘기부터, 정치 얘기까지, 온갖 이야기를 끌어다 수다를 떤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미용실을 가득 채우던 드라이기 소리가 삽시간에 잦아든다. 이모가 말려준 머리를 정면에 놓인 거울을 통해 본다. 어느새 검은색 머리는 진한 노란색으로 대변신을 이룬 참이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몰골에 참담한 심정이 된다.


아, 이렇게까지 탈색모가 안 어울릴 수 있나?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애매한 표정의 나를 보고 금영 이모도 같이 애매한 표정이 된다. 곧 드라이기 선을 돌돌 말며, 입으로는 애써 위로를 건넨다.


“지금은 좀 노란 끼가 찐한데, 내일 다른 색으로 덮을 거니까 괜찮지. 그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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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고 싶다고 우긴 것이니 누굴 탓하지도 못하고 애써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미용실을 나섰다. 아, 집까지는 걸어서 30분인데 내 생애, 가장 튀는 머리를 하고 거리를 활보하려니 볼이 빨개진다. 버스에 오르자 버스 기사님도, 앉아 있던 승객들도 모두가 날 주목하는 거 같은 착각에 빠진다. 온몸에 열이 오르는 기분이다. 이러다 머리카락이 노란색이 아니라 빨간색이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집 앞 정류장에 다다랐다. 그리고 내리자마자 전속력으로 집을 향해 뛰어갔다. 헉헉- 숨을 몰아쉬며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마침 엄마는 거실에 앉아 고추를 말리고 있었다. 엄마의 고개가 나에게로 천천히 돌아온다. 잠시간 반가운 기색이 비친 것도 같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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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왔어? 왜 이렇게 뛰어왔···. 헉!”


까지 말하던 엄마가 돌연 얼굴을 굳힌다. 그리고 노란 단풍을 머리에 얹은 조금은 익숙한 이방인의 눈을 스윽- 피한다. 머리에 대변신을 허락한 딸이 어색하고 못마땅한 눈치다.


“어어, 머리 괜..괜찮네”


그럼에도 표정이 안 좋은 딸이 별안간 징징거릴까 봐 걱정이었는지 마음에도 없는 말을 덧붙인다. 나는 자존심도 없이 실토한다.


“솔직히 안 어울리지. 나 이러고 어딜 가. 회사도 못 가겠어.”


엄마가 눈을 빛내며 말한다.


“내가 너, 후회할 거라고 했지?”

“그냥 다시 덮을까.”

“응. 덮자.”

“....그래. 덮지 모..”


참, 쉽게도 내린 결론이다. 검은색이 아니어도 좋으니 갈색으로 덮을까?


만 하루도 안 되어 갈색으로 머리를 덮겠다고 번복하는 나에게 금영 이모는 반색하며 말한다.


“그치이? 그게 낫겠지?”


그쵸. 맞아요. 그게 낫겠어요. 그날도 금영 이모의 3시간짜리 절친이 되어서는 수다를 떨었다. 어두운 갈색 머리로 미용실을 나설 때쯤엔, 익숙한 안도감에 휩싸였다. 마침내 나의 탈색 일일천하가 끝이 났다.


그렇게 또 몇 년이 흘렀다.


얼마 전 금영 미용실에 갔을 땐 오랜만에 매직을 하느라 또 3시간을 넘게 그곳에서 보냈다. 금영 이모는 며칠 전 다녀온 ‘콘서트’ 얘기를 하며, 들뜬 얼굴로 11만 원의 푯값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최근 다녀온 여행 이야기와 자식 이야기, 친구와 있었던 일화에 대해 떠들었고, 잠깐 머뭇거린 뒤엔 조금은 내밀한 고백을 이어갔다.


“이제 일 하는 시간 좀 줄이려구. 나도 나를 위해서 좀 살고 싶어. 아이들도 다 키웠고 제 밥벌이는 알아서 하는데 뭐. 그래서 신랑이랑 그리 생각했지. 여행도 좀 다니고 돈 때문에 아등바등하지 말자고. 참 이게 사람 사는 건데. 그치이?”


금영 이모는 스물이 넘게 차이 나는 나에게 평소라면 하지 않을 이야기도 건넸는데 그중에는 이런 얘기도 있었다. 스무 살 초반 무렵의 내가 썼던 518 민주항쟁에 관한 글 얘기였다. 갑자기 등장한 단어에,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그건 어떻게 보셨어요?”

“네 엄마가 보여줬지. 우리 남편이 광주에서 시민군으로 싸웠거든.”


그제야 납득이 간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금영 이모를 본다. 이모는 남편에게도 보여줬다며, 그때 남편이 한참 동안 활자를 바라보기만 했다고 했다. 그 모습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고.


잠시간 침묵 뒤, 이모가 말을 고른다.


“처음 시댁에 인사하러 갔을 때 우리 남편이 나 데리고 금남로에 갔다? 걸으면서 하나하나, 그날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는 거야. 그때 처음 알았어.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게 너무 생생하고 무서워서 한참 울었지 뭐.”


침묵이 이어진다. 금영 이모의 회상이 이어진다.


“참···. 어떻게 그런 일이 다 있을 수 있었을까. 그치이?”


항상 듣던 금영 이모의 '그치이?'라는 되물음이 그날따라 너무 슬프게 느껴졌다. 어느새 눈을 글썽거리는 나를 보며 이모가 덧붙였다.


“그게 불과 50년도 안 된 일이야. 정말 얼마 되지 않은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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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 앉은 나, 그리고 내 머리를 쥔 채 약을 펴 바르며 조용조용, 회상하듯 말하던 금영 이모. 이따금 창밖을 지나던 자동차 바퀴 소리.


어떤 순간은,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게 한다. 그날 ‘금영 미용실’에서의 한순간이 나에겐 그랬다.


그 후로도 몇 번을 더 금영 미용실에 갔다. 어떤 날엔 그저 심심해서 엄마를 따라가기도 했고, 금영 이모가 사둔 엄마의 선물을 가지러 가기도 했다. 나의 볼 일이 무엇이든, 금영 이모는 갈 때마다 웃는 얼굴로 나를 반긴다. 뒤편에 있는 기다란 소파가, 수없이 오가는 사람들로 인해 폭 찌그러졌다가 다시 원래의 모양을 갖춘다.


사람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 웃음이 있고, 머리를 아주 잘 잘라주는 훌륭한 미용사가 있는 곳이다. 절대 사라지지 않았으면 바라게 되는, 이제는 나의 단골 미용실이다. 언제든 들러 금영 이모의 말마다 따라붙는 ‘그치이’란 물음에 온 마음을 다해 맞장구를 치고 싶다.


⊙ 글 : 다다 (인스타그램 @ddidawn)

⊙ 그림 : 서콩 (인스타그램 @se0c0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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