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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암동 Street mark

by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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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암동에서 일하면서, 점심시간에 가장 많이 마주치는 건 전단지를 나눠주는 중년 여성들이다. 헬스클럽 홍보 전단지부터 병원, 필라테스, 신장개업한 식당까지. 거리 곳곳이 일터가 되는 이들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세상엔 분명 존재하지만 명확한 이름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 직업이 꽤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난 그들을 ‘Street marketer’라 부르기로 했다.


가끔 한가로운 날엔 길을 가다 서서 그들을 관찰한다. 머뭇거리며 손을 뻗었다가 거두는 건 초보 Street marketer, 그리고 누군가가 지나치든 말든 쭉쭉 손을 뻗어내는 건 베테랑 Street marketer다. 사람으로 붐비는 그곳을 지나며, 나는 사은품을 받듯 전단지를 수거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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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고 또다시 회사에 들어갈 때도 마찬가지다. 마치 처음 받는 듯이 전단지를 받으면 몇 걸음 앞에서 종이를 나눠주고 있는 스트릿 마케터도 나에게로 손을 쭉 뻗어온다. 그렇게 받은 종이들로 나는 별을 접거나 하트를 접는다. 그런 뒤 그것들은 식당의 휴지통에 버려지기도 하고 회사의 종이 분리수거함에 넣어지기도 한다. 먼 훗날 가방 깊숙한 곳에서 발견되는 건 다행인 축에 속한다. 바지 주머니에 들어있는 것도 모른 채 빨래와 함께 세탁기에 돌렸다가 낭패를 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스트릿 마케터들의 열띤 홍보 행위에 동조하게 되는 건, 20년 전 했던 전단지 알바 경험 덕분이다. 중학교 3학년 때 학교 개교기념일이었을 거다. 3천 원의 용돈으로 일주일을 살아야 했던 청소년 다다는 용돈벌이를 위해 집을 나선다. 마을버스를 타고 주엽역에 도착해 쭈뼛거리며 교복 가게에 들어간다. 알바 자리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사장님은 아무래도 소심해 보이는 중학생을 아래위로 훑어보곤 의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한다. “전단지 알바를 구하긴 하는데, 할 수 있겠어요?” 자신감 없는 대답에도 한 번 믿어보겠단 아량을 베푼 사장님을 따라, 근처 중학교 정문 앞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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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또래의 전단지 알바생을 친구들은 이상하게 쳐다봤다. 뭐지, 우리 또래 같은데 알바하나? 소곤소곤. 웅성웅성. 동갑내기 일지도 모르는 친구들의 눈초리에 쭉 뻗어내던 손을 다시 제자리로 돌리길 몇 번, 근처에서 지켜보던 사장님의 한숨 소리가 귀를 뚫고 심장까지 전해져왔다. 흑. 망했다. 오늘 한 거 돈은 주려나? 뻔뻔한 중3은 그런 생각이나 했다.


그렇게 다 돌리지도 못한 전단지를 쥐고는 다시 교복 가게로 향했다. 사장님은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하얀 돈봉투를 건넸다. 그 안에 얼마나 들어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노동 후 받은 보상보다 더 컸던 그날의 무안함과 난처함만이 기억에 남을 뿐이다. 거절이 무서운 중3은 거절이 무서운 서른 중반으로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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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한두 시간이라도 해본 경험이라고 거리를 지날 때면 Street marketer들의 난처함을 나의 것처럼 헤아리게 되는 것이다. 또 헤아리게 되는 어려움 중엔 이런 것도 있다. 거리에선 날씨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따듯한 봄과 선선한 초가을을 빼고는 모든 날씨는 방해꾼이 된다는 걸 약간의 경험으로 알게 됐다. 무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 Street marketer의 귀가시간이 빨라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상암동, 음식점이 가득한 길을 지나며 손을 뻗는다.


작년 여름이 떠오른다. 실업급여 서류를 제출하러 영등포 구청역에 있는 남부 고용센터에 갔다. 센터 앞에서 60대가 넘어 보이는 여성 한 분이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거절당하는 모습을 한 차례 지켜보고 굳이 정문을 돌아, 그녀에게 갔다. 웃으며 받아 든 전단지에는 AI 과정이 적힌 수업 홍보 글귀가 적혀 있었다. AI와 전단지라니 참 이질적이라는 딴생각을 하며 가방에 고이 접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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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일을 마치고 고용센터를 나서자, 이번에도 전단지를 건네는 중년 여성의 손이 나를 향해 뻗어왔다. 좀 전의 그녀다. 또다시 받아들며 말했다. "아까 받긴 했는데 또 받아도 될까요?" 그러자 전단지를 건네주던 분이 웃었다. 나도 따라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이 너무 쉽다. 웃음은 이리 쉽게도 서로의 마음을 오간다. 곁에 선 이들과 쉬운 웃음을 매일 쉽게 주고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같은 시간을 사는 노동자 1, 노동자 2로서 우리가 우리에게 조금만 더 다정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거리에서 또다시 손을 쭉 뻗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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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다다 (인스타그램 @ddidawn)

⊙ 그림 : 서콩 (인스타그램 @se0c0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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