궂은날 아홉, 반짝이는 날 하루

by 무연


저는 궂은날 아홉에, 반짝이는 날 하루를 삽니다. 모든 것이 부서져 내린 날 아홉에, 작게나마 숨이 트이는 날 하루.


이상하게도, 아주 가끔, 정말 아무렇지 않은 날에 저는 미세하게 반짝이는 순간을 마주하곤 했습니다. 누구의 다정한 눈빛이나, 카페에 앉아 마시는 아이스아메리카노, 키우는 고양이가 내 다리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온기 같은 것들. 너무 작아서 스쳐 갈 수도 있었을 그 조각들은 나를 어딘가에 잠시 붙잡아두었습니다. 그 하루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 하루는 고통이 “조금 덜했기 때문에” 특별했습니다.


나는 아홉 날을 무너지고, 하루를 숨 쉬었습니다. 그 하루는 삶의 회복이 아니라, 다음 아홉 날을 버티기 위한 작은 숨구멍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그 하루가 있잖아. 그 찰나가 있잖아.”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나의 하루는 빛이 아니라, 숨이라는 것을. 제가 그 하루를 붙잡은 건 살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지 않기 위해서 였다는 것을.


사람들은 말합니다. “빛이 있으니 희망도 있을 거야.” 하지만 저는 다릅니다. 저는 빛으로 걸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빛이 꺼지지 않기만을 바라보며 어둠 속에 주저앉아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하루는 그래서 더 소중했습니다. 그것이 나를 구원하진 않았지만, 아주 잠깐 멈춰 설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


그래서였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렇게 제게 예고도 없이 다가오는 반짝이는 하루가 오히려 무서웠습니다. 그 하루가 눈물겹게 눈이 부셨지만, 동시에 저를 시험하는 일종의 함정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꾸역꾸역 견뎌낸 아홉 날 끝에, 제게 어쩌면 다시 숨을 쉴 수 있다는 착각을 안겨주는 하루. 하지만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 하루는 결코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 오히려 그 하루 때문에 다시 궂은날로 돌아갈 때의 충격이 더 깊고, 더 길게, 더 무겁게 다가올 것이라는 것을요.


저는 어쩌면 반짝임보다 그 반짝임이 끝나고 나서 찾아오는 어둠에 더 익숙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행복한 순간이 오면 그것이 기쁨이 아니라 “내가 곧 다시 무너질 것”이라는 예고처럼 느껴졌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희망, 위로, 좋은 일들. 그런 것들이 저에게는 다 너무 가혹했습니다. 마치 저를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너도 이렇게 웃을 수 있잖아.” “근데 왜 이렇게 오랫동안 무너져 있었던 거야?”


그런 말들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고, 저는 혼자 그 말을 만들어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 소리는 제 안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쁨 앞에서 저는 조용히 몸을 굳혔습니다. 그 반짝임이 거짓말처럼 느껴졌고, 그것에 기대는 것이 너무 위험하다고 본능적으로 느꼈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 동안 생각했습니다. 혹시 내가 나쁜 사람이라서, 혹은 내가 스스로 아픔을 붙잡고 있으려 해서 이런 걸까. 기쁘지 않으려 애쓰는 나, 기쁠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나.


그런 날엔 아무도 없는 방 안 벽에 기대고 앉아 혼자 쓴웃음을 지은 뒤, 갑자기 목이 꽉 조여오는 듯한 느낌에 고개를 떨구고 말았습니다. 손끝에 남은 온기 하나가, 누군가의 짧은 다정한 말 한 줄이, 나를 구원하는 대신, 나를 더 깊은 곳으로 떨어뜨리는 낙하점이 되곤 했습니다.


그 하루가 끝나고, 다시 궂은날이 시작되면 오히려 전보다 더 무거워졌습니다. 나는 방금, 세상이 조금 따뜻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는데 다시 그 따뜻함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너무 확실하게,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저는, 반짝이는 하루가 있을 때보다 차라리 매일이 궂은 날인 것이 더 마음이 편하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기쁨을 잃는 슬픔보다, 아예 기쁨이 없는 쪽이 덜 아팠으니까요. 반짝이는 하루는 어쩌면 제게 선물이 아니라, 제가 아직도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일종의 형벌처럼 느껴졌습니다.


아직도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 아직도 무언가에 마음을 흔들렸다는 것, 그것이 다시 무너질 땐 두 배의 통증이 되어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그 하루는 결국, 저에게 “조금만 더 버텨봐”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건 잠깐이야, 다시 돌아갈 준비해”라고 조용히 속삭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하루조차 완전히 온전히 누리지 못한 채, 언제 끝날지 모르는 눈치만 살피며 조심조심 앉아 있었습니다.


어쩌면 저는, 반짝임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 채 벌처럼 느끼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나의 하루는 반짝이지 않는다.

다만, 꺼지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다시 궂은 날 속으로,

아주 작은 숨을 안고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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