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의존

by 무연


보통의 사람들처럼 나는 술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편도 아니었다. 일부러 찾아 마시진 않았지만, 어쩌다 마실 기회가 오면 분위기에 맞춰 마실 수 있을만큼 주량은 있었기에 친구들과의 오랜만의 해우나 더운 여름, 가족들과 가벼운 맥주 한 캔, 즐거운 모임 장소에서 한 두잔 정도는 평범한 일상이었다.

인생을 살다 보니 어렸을 때는 미처 마셔보지 못했던 술을 접해볼 기회가 늘어갔다. 특히 유학이라는 환경에서 나는 정말 다양한 술을 접할 수 있었는데, 술을 이렇게 맛으로 즐길 수 있구나를 처음 깨달았던 시기였다. 그중에서도 내 입을 사로잡은 건, 주로 40도가 넘어가는 독주들이었다.

독주를 마셔보니 신세계가 따로 없었다. 목구멍을 태우는 이질감은 곧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왔고, 뜨끈하게 속을 데우며 몸 곳곳에 퍼지는 느낌은 이내 나를 현실에서 붕 뜨게 만들었다. 손끝이 간질거리는 것이 기분이 매우 좋았다. 실성한 사람마냥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매 순간 힘겹게 버티고 있는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순간이었다.


견딜 수 없는 날이 나를 찾아올 때면, 나는 습관처럼 어김없이 술을 마셨다. 관계의 문제로, 아니면 그냥 알 수 없는 감정의 문제로, 마음의 먹구름이 끼어버려 기분이 저조할 때마다 나는 그런 나를 살릴 수 있는 특약은 술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술을 마시면 찌질했던 내 자신이 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뭐든 해낼 수 있는 기분도 들었다. 다 좋다. 다 필요 없고, 그냥 이런 거지 같은 기분을 집어치워 버리고 싶었다. 기분 좋음, 행복감, 환희. 나는 그 감각을 찾아 어떻게 해서든 살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이성 없는 몸에 무모한 상처는 늘어갔고, 처음 술을 마시며 좋았던 기분은 어째서인지 다시금 바닥을 헤맸다. 술에 취해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며 겨우 침대에 누운 나는 한탄의 한숨으로 밤을 지새웠다. 여전히 죽을 용기는 없었고, 나를 감싼 현실은 술로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나를 잠식해버린 술이었다.


내가 절정으로 술을 있는 힘껏 몸에 퍼부었을 때는 나의 모든 것이 망가져 더 이상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태에 다다랐을 때였다. 그때의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세상과 나를 완벽히 단절시킨 채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은 고립무원의 상태. 나는 마음의 벽이 더는 영업하지 않겠다, 제멋대로 폐업을 선언해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경험했다. 하얀 공간에 갇혀 죽은 눈을 한 채 오직, 본능에 의한 자극. 도파민을 느끼지 못하는 내 뇌를 찔러줄 자극만을 급급하게 찾아 헤매고 있던 때였다. 지속되는 무감각에 모두 죽어버린 공허로 가득한 내 구미를 유일하게 당긴 건, 공부하느라 한동안 손에 쥐지 않았던 술이었다.


내 안의 공허가 너무 커서,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사람처럼 나는 끝없이 마셨다. 처음엔 한 병으로 시작했던 것이 곧 두 병, 나중엔 아무렇지도 않게 소주 네 병을 30분 만에 들이켰다. 아주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는 이성의 한끝이 그것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더한 갈증과 욕망을 불러온다는 것을 알았지만 멈추기엔 이미 늦었다. 방 안에는 버리기 귀찮아 쌓아놓은 소주병만이 즐비해져 갔다.

술을 마시면 어떤 것에도 미동하지 않던 뇌가 머릿속에서 파티를 열고 미쳐 날뛰었다. 더 강한 자극을 달라고 뇌는 나를 강하게 흔들었다. 삶의 어떠한 사건도 그렇게까지 뇌를 자극 시킬 수 없었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내가 술에 절어 사는 이유가 충분하다고 믿었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무감각의 바다 한가운데, 유일한 삶의 희락.


술이 주는 공허는 더 큰 공허를 부르고, 망가질 대로 망가진 인생을 더한 나락으로 이끌었다. 술이 반짝 깨는 낮에는 그걸 인지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밤이 되면? 나는 어김없이 술을 사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자의적으로 끊어낼 수 없는 굴레가 하나 더 생겨버린 셈이었다.

떨리는 손과 허덕이는 호흡을 겨우 달래가며 나는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아직 도파민에 절여지지 않는 머리 한쪽에서,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내 멱살을 부여잡고 울부짖었다.


“우리 살자. 우리 이제는 좀 살자.”


‘우리, 살아서 뭐 해. 우리, 살 수 없어.’

차마 떨어지지 않는 말이었다.


휴대폰을 꽉 쥐었다. 내가 간신히 짜내 할 수 있는 생존 신호를 과연 어디에 해야 하는 지 돌아가지 않는 머리가 헤맸다.

술을 끊고 싶지 않은 쪽과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쪽의 싸움이 죽어 있는 마음 안에서 시작되었다. 짧은 순간에도, 치열한 싸움이었다. 싸움의 행방이 어느 쪽으로 끝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주체를 잃은 지 오래된 나는 어느 쪽도 응원할 수 없었다.


나는, 아무래도 살고 싶었나 보다. 본능이 만족하지 못할 술을 찾았지만, 그 본능이 나를 구했다. 이 본능과 그 본능이 같은 본능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둘 다 본능인 건 확실했다.

늘, 고비 끝에 살았던 나는 이번에도 간발의 차로 술이라는 깊은 늪에서 밖으로 꺼내졌다. 알코올 향이 덕지덕지 묻은 내 몸은 처참했다. 어떤 때보다 죽어가는 몸뚱이였고, 움직이지 않는 마음이었다.

그날 이후 술은 끊어냈지만, 마시고 싶은 충동은, 아마 평생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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