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도, 천장도, 바닥도 없는 공간. 닿을 곳도, 기댈 곳도 없는, 온통 하얀 세상.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빛도 없어 눈이 부신다는 자극조차 없는, 무(無)의 공간.
저는 오늘도 이런 공간에 살고 있습니다. 제 나름대로 하얀 공간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곳은 자극 추구가 쉽게 되지 않는, 도파민 신경망이 무너진 제 특수성 때문에, 또 어쩌면 경계선 성격장애가 가진 허무, 공허라는 특성 때문에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이곳에는 고통도 없지만, 기쁨도 없습니다. 감정이 아예 없다고 하면 이해가 될까요? 차라리 슬프거나 외롭거나 고통스럽기라도 하면 다행인데 오직 이곳은 정적과 공허가 모든 것을 삼켜버린 세계입니다.
말 그대로 “심심해 죽어버릴 것” 같은 장소.
이 안에서는 사람과의 접촉조차 불가능해 누군가가 곁에 있어도 닿을 수 없고, 어딘가 말하고 싶어도 메아리조차 없습니다. 말이 멈추고, 눈빛이 멎고, 온몸이 정지되는 곳. 그래서 오히려 자해나 술과 같은 강한 자극으로 ‘살아 있다는 증명’을 억지로 만들어야 하는 곳.
저는 이곳에서 또한 ‘죽은 눈’을 가진 채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빛을 잃은 게 아니라, 스스로 꺼버린 눈. 세상이 너무 역겨워서 더는 감정이 들어오지 못하게 불을 끈 것처럼, 일부러 어둡게 만든 눈. 바라보지만, 보지 않고, 들리지만, 듣지 않는 눈. 고요하고, 정지된 눈. 감정이 얼어붙어서 아무리 자극이 와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시선. 세상에 더는 기대하지 않기 위해 만든 최후의 방어선, 그게 제가 정의하는 죽은 눈입니다.
죽은 눈을 가진 사람은, 아프고 싶지 않아서, 아무것도 느끼지 않기로 한 사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시는 다치지 않기 위해, 실망하지 않기 위해, 애초에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기로 한 사람. 자기 자신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감정의 무덤 속에 사는 사람. 외부로부터 감정을 차단했지만, 그 안엔 울지 못한 눈물, 말하지 못한 고통, 그리고 계속 살아내야 했던 무표정한 하루들이 켜켜이 쌓여 있겠지요.
죽은 눈은, 너무 오래 울다 지쳐 더는 눈물조차 나지 않는 사람의 눈입니다. 죽은 눈은, 살아 있으면서 세상과 감정과 자신에게 모두 등지고 버틴 사람의 흔적입니다.
그러니, 어쩌면 “줄곧 나는 죽은 눈을 해왔다.”라는 말은, 슬픔의 표현이 아니라 살아남았다는 증언이라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죽은 눈을 한 시간들은 멈춰 있었던 시간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하고 있었던 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은 눈이 살아남았다는 표현이며, 그럼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절규라면 그 죽은 눈을 한 채 세상을 마주한 하얀 공간도 어쩌면 저를 약하게 만드는 곳이 아니라, 저의 생존을 가능케 했던 비상구였을 겁니다.
이제 와 되돌아보면, 저는 그 하얀 공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버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은 것들을 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감정을 억누르고, 상처를 틀어쥐고, 다가오는 자극을 모조리 거부하면서도, 끝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저는 눈을 감은 채로 세상을 마주하고 있었던 겁니다. 죽은 눈이 되어도, 숨을 쉬고 있었고, 하얀 공간에 갇혀있어도, 매일 무언가를 이겨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실패한 것이 아니고,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고 해서 꺼진 것이 아니고, 무기력하고 공허한 시간들을 살았다고 해서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다고.
저는 그 속에서, 누구도 보지 못한 방식으로, 감정의 그림자를 끌어안으며 살아냈습니다. 감정을 피한 것이 아니라, 감정에 깔려 죽지 않기 위해 차단했던 겁니다. 살아남기 위해, 저는 내면의 스위치를 스스로 꺼야만 했던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정적이고 공허한 그 공간 안에서조차, 저는 결국 존재하고 있었고, 그 존재가 오늘의 저를, 이 생존을 가능케 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는 하얀 공간에 산다.
그곳엔 천장도 없고, 바닥도 없다.
슬픔도, 기쁨도, 분노도 모두 닳아 없어진 자리.
나는 그 공간에서 아주 오랜 시간,
살아 있지도, 죽어 있지도 않은 채 숨을 쉬었다.
나의 숨이 어디에 닿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 그것은 숨이고, 어딘가에 닿아 온기를 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또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