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프고 나서야 끝이 없을 것 같던 삶의 말아톤이 중단되었다. 아이러니했다. 마음이 그렇게 뒤엉키고, 절절하게 들끓었을 땐 멈출 수 없었던 달리기였다. 나를 감싼 환경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려 무던히 애를 썼던 마음보다 한순간에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몸의 손을 들어줬다. 아직도 끝나지 않는 마음과의 싸움에서 단번에 전세를 바꿔버린 몸의 승리였다.
나는 모든 것을 멈추고, 부모님이 있는 남쪽으로 내려갔다. 회복을 위함이었다. 본인들의 눈앞에서 제대로 나를 잃을 뻔한 부모님은 대놓고 멈춰진 나의 걸음을 재촉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미래에 대한 계획 정도는 가지고 있기를 은연중에 바라는 것 같았다. 늘 계획 속에 살아오던 부모님이었다. 더 이상 바이올린도, 제과제빵이나 요리도 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기꺼이 수렴했으나, 앞으로 본인들의 도움 없이 헤쳐 나갈 나의 앞길 정도는 마련했음 싶은 것이 부모님의 뜻이기도 했다.
마냥 편안하게 쉴 수도 없는 시간이 찬찬히 흐르는 동안 나는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고민을 시작했다. 이제는 누군가에 쫓겨 무언가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낭비되는 시간과 비용, 그리고 나의 소모가 힘에 겨웠다.
문득,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바이올린이나 제과제빵처럼 실습 위주의 것이 아닌, 진짜 공부. 내가 학창 시절에 무던히도 관심 없었고, 늘 밑바닥을 나돌다 못해 나의 자존감마저 떨어트렸던 공부. 대학을 두 번 졸업했어도 했을 나이가 되어서야 그 공부에 흥미가 생긴 것 같았다.
여러 공부 중에 나의 눈을 사로잡은 건 다름 아닌 심리학이었다. 심리학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한 건, 나에 대한 이해를 바라는 마음의 시작에서부터였다.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어린 시절, 중학교 때 시작된 후로 몇십 년째 끊이질 않는 자해, 계속되는 관계의 불화와 단절, 나를 끈질기게 괴롭혔던 목소리까지. 심리학을 배우면 나의 행동에 대한 원인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짐작 어림이 그럼 지금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왔다. 심리학은, 내가 죽지 않고 살기 위해 선택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나는 그 길로, 편입을 준비했다. 이미 한 번 바이올린으로 국내에서 대학을 나왔으니, 다시 수능부터 볼 필요가 내게는 없었다. 나는 최대한 쉬운 길로, 나를 덜 힘들게 하는 길로 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나에 대한 최소한의 돌봄이었다.
심리학에 대해 내가 겪은 일들과 지금까지 조금씩 받아온 정신과 상담 말고는 아는 것이라곤 없었지만, 오히려 아는 것이 없었기에 더욱 용감하게 뛰어들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큰 어려움 없이 대학에 무사히 들어간 나는 나보다 한참 나이 어린 친구들과 함께 다시 한번, 공부라는 여정으로 내 삶의 길을 닦아나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그 이상으로 심리학은 즐거웠다. 새로운 학문을 배우는 재미가 나에게 큰 자극으로 다가왔고, 매일 신선하게 알아가는 것이 더 큰 세상으로의 눈을 뜨는 기분이었다.
여기서, 잠깐. 바이올린을 버리고, 일본으로 유학 갔을 때를 기억하는가? 내가 먹었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를.
“엄마의 가슴의 대못을 박고 바이올린을 그만두었으니, 내가 선택한 길에 후회를 두어선 안 될 것.”, “그 길에 누구보다 뛰어날 것.”
그랬다. 누가 심어주지 않았던 이 압박. 이 압박이 스멀스멀 내 안에서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심리학을 하면 할수록, 탐구에 열이 붙을수록, 교수님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내 안에서 이글거렸다. 과에서 정점을 찍어 성적 장학금을 받아 벌써 세 번째 등록금을 내고 있는 아빠의 부담감을 덜어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A+이 나오면 좋지. 였던 마음이 점차 A+가 아니면 안 돼로 변해갔다. 비록 나보다 어리지만 배울 것이 있어 스스럼없던 동기들과의 감정은 이젠 나의 성적을 견제하는 경쟁상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바뀌었다.
첫 학기, 나는 정말 미친 듯이 공부했다. 고작 그거 잠깐 쉬었다고,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몸과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흡수하고, 씹어먹었다. 자신을 갈아 넣었으니 당연히 성적은 모든 과목에서 A+이었고, 과의 탑은 내 몫이었으며 그에 따른 전액 장학금이 나왔다.
만족했을까? 그것으로 만족이 되었다면, 지금의 나는 좀 달라졌을까? 인간의 욕심에는 한도 끝도 없다는 말을 나는 요즘도 실감한다.
아니, 나는 만족하지 않았다. 첫 학기에 이렇게 좋은 성과라니! 내가 지금까지 낸 어떠한 성과보다 기뻐 주체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일본에서 제과제빵으로 좋은 성적을 받았을 때보다 나는 더 날아갈 것 같았다. 누가 나를 공부 못하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봐라, 나도 하면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것이 온 세상에 증명이 된 것 같았다.
한 번, 그 달콤한 맛에 취하고 나니 거기서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나는 또 다시 나의 행동이 나를 스스로 절벽으로 밀고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한 채, 내가 왜 심리학과를 선택해 배우게 되었는지 되새기지 못한 채, 오로지 나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 내기 위해 남은 3학기 전부 나를 불태웠다.
살아남아지지 않는 게 당연했고, 무너져 내리는 것이 당연했고, 죽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마지막 학기 말, 타다 못해 더 이상 태울 것이 없어 텅 빈 눈을 하게 된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다시, 답답함이 밀려왔다. 분명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분명 보람 있고, 뿌듯한 공부였는데….
심리학을 죽어라 공부해도 여전히 나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처음 심리학에 가지고 있던 기대는 이미 다시 시작된 자해로 무너진 지 오래였고, 의지할 동료에서 경쟁상대가 되어버린 아이들과의 관계조차 어긋나기 시작하자 나는 군중 속 외톨이가 되었다.
뭐가 문제인지, 이제는 알고 싶지도 않았다. 배우는 재미도, 그 안에서 싹트는 호기심도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진 마음엔 커다란 공허뿐이었다.
곧 있으면 쓰러져 버릴 것 같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가까스로 대학을 졸업한 나는 바로 석사 과정에 들어갔다. 심리학을 지속하기 위해선, 적어도 상담사로서 쓸모있는 자격증을 따기 위해선, 석사 과정은 필수였다. 내가 심리학을 선택한 이상,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이미 학부 때 모든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부은 나에게 석사 과정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모든 것에 충실했던 학부 때와 달리 나는 석사를 아슬한 턱걸이 하듯 위태롭게 통과했다. 주어진 과제는 미루다 못해 시기에 겨우 맞춰내는 건 다반사였고, 출석은 F를 피할 정도로 빠질 만큼 빠졌다. 과 행사 같은 건 참여하지 않았고, 사람 사귀는 것을 멀리하며, 있는 듯 없는 듯 그림자처럼 다녔다.
별로 가지도 않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뻗어서 자기 바빴다. 그 외 시간에 책을 읽거나 따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거나 하는 건 없었다. 심리학에, 완전히 흥미를 잃어버린 사람 같았다. 그러면서 따라오건 역시나 죄책감이었다.
“나는 또, 실패했어.”
“나는 또, 실망시켰어.”
“나는, 또, 도망칠 곳이 없어.”
목이 메였다. 내가 딛고 서 있는 곳이 절벽이라는 사실이, 선연하게 다가왔다. 절벽의 끝이 점점 더 가파르게 깎여 발밑을 위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는, 떨어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보였다. 스스로 떨어지지 않더라도, 곧 떨어지게 될 것 같았다.
나를 준동하던 목소리는 사라졌지만, 내 안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건 그때의 목소리와 다르지 않았다.
‘딱, 한 번만.’
허무와 공허를 담은 눈에서 더는 눈물 같은 감성적인 건 흘러내리지 않았다. 살고 싶다는 마음과 더는 버틸 수 없다는 마음이 뒤엉켜 제멋대로 싸우고 있었다. 그 안에서 나는 무력할 따름이었다.
그저, 이제는 다 피곤했다. 그냥 이대로 잠이 들어, 아주 깊게 잠이 들어,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여기는 수도 없는 밤이 지나던 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