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부터 대학에 입학한 직후까지 꾸준히 다녔던 정신과는 그저 하나의 스케쥴에 불과해졌다. 처음엔 누가 나의 말을 들어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뻤던 감정이 무슨 말을 해도 변하는 건 없다는 현실 속에 차츰 무뎌지기 시작했다. 나는 점점 의사 앞에서 나를 감추는 것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50분가량의 긴 상담 동안 내가 하는 말의 수는 짧아져 갔다.
내가 처음 만난 정신과 의사는 아동 청소년 전문이었다. 2번의 자해와 바이올린에 대한 분노, 그로 인한 우울이 주요 증상이었던 나에게 의사는 ADHD라는 진단을 내렸다.
요즘에서야 ADHD가 누구나 한 번쯤은 의심해볼 만한 증상으로 떠오르지, 당시만 하더라도 그런 진단명이 생소하던 시기였다. 엄마는 의사에게 이해를 원했지만, 의사는 그저 넉살 좋게 웃으며 청소년기 아이들에게 흔하게 나타나는 징후이며 내가 좀 더 크면 곧 문제는 사라질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건넸다. 정신의학에 문외한이었던 엄마는 의사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의사가 거짓말을 했다고 여기진 않는다. 나도, 엄마도 애써 증상을 숨기려고 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냥 운이 없었다고 생각할 뿐이다. 처음 만난 의사가 실력이 형편없었음에. 물론, 나의 증상이 ADHD로 보였을 수는 있을 것이다. 심리검사를 했을 때, 그다지 집중하지 않았고, 정신 산만한 모습을 보였으며…. 그 외로는 판단 이유를 잘 모르겠다.
의사는 더욱이 내 편에 서 바이올린을 그만두게끔 엄마를 설득해주지도 않았다. 그 의사와의 기억은 나의 집중력을 올리겠다며 쓸데없이 머리를 써야 하는 보드게임을 주구장창했던 기억뿐이다.
끝내 견디다 못한 내가 부모의 버림을 받을 각오까지 하고서 내 스스로 바이올린을 그만두겠다 선언을 하고, 최소한의 협상 끝에 음대에 들어가 잘 적응하는 것으로 내 생애 첫 정신과 의사와 나는 이별했다. 그 의사가 나에게 결과적으로 영향을 미친 건, 글쎄, ADHD 약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살이 굉장히 많이 빠졌다는 거?
두 번째로 정신과를 찾아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그로부터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이후였다. 그 6년은 음대를 졸업하고, 유학을 두 차례 다녀오고, 인턴쉽을 마치고 돌아와 이탈리아 가게를 하기까지의 시간이었다. 그 사이 수도 없는 자해와 자살충동, 처음 정신과를 갔을 때보다 더 날뛰는 감정 기복과 회복 되어지지 않는 관계들. 나는 전문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 정신과는 미성년이라 엄마가 필요했던 첫 번째와 달리 나 혼자서 할 수 있었다. 주변 사람을 통해 알게 된 두 번째 의사에게 나는 차분하고 침착하게 내가 겪는 불편함을 이 의사는 제발 해결해주리라 믿으며 털어놓았고, 여러 번의 만남 끝에 의사가 내린 나의 진단은, 조울증이었다.
적어도 이 의사는 어렸을 때 만났던 의사보단 형편이 나았다. 많은 부분에서 전문적이었고, 때론 날카롭게 나의 문제를 지적하며 인지적으로 내가 나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한 가지 약물만 먹었던 청소년기 때와 달리 나는 이 의사를 꾸준히 만나며 상황에 맞춰 약물을 이것저것 시도했다. 어떤 날은 부작용이 심하게 와 견딜 수 없어 하루 만에 다시 가는 때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꽤 잘 맞아 한동안 편안하게 지내던 때도 있었다.
문제는 그렇게 약이 잘 맞는다고 생각할 때 벌어지곤 했는데, 약 때문에 내가 나아졌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며 이제는 정신과가 필요 없겠지라고 스스로 판단해 발걸음을 자꾸만 끊었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약을 먹어야 그나마 증상이 약화되는 사람, 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몸의 병처럼 증상이 완화가 되면 약을 끊어도 자연스레 병은 나아질 거라 여겼다. 대단한 착각이었다.
그런 착각은 결국 나의 목소리를 탄생시켰고, 수많은 자해의 흔적을 남겼으며, 병이 더 짙어지는 결과만 낳았다.
두 번째 정신과 의사하고는 큰 불만이 없을 정도로 합이 잘 맞았지만, 나는 여전히 문제에 머물러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내가 조울증이 맞는지에 대해서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조울증이라면 두 번째 의사가 주는 약이 맞아야 하는데, 어째 상황은 반복되고, 점점 커지는 것처럼만 느껴졌다. 세 번째 의사가 필요했다. 진짜 나의 문제를 진단해줄 사람.
세 번째 의사와는 나의 의사로 만난 것도 아니고, 긴 시간 마주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때 나는 심리학에 지쳐 공허한 눈에 휩싸여 있었고, 좀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학부 마지막 학기 말, 아마 기억하기론 더는 내 꼴을 보기가 힘들었던 엄마가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과의 상의 끝에 나를 대학병원에 데려가 종합심리검사를 의뢰했던 것 같다. 한 평보다 조금 큰 방 안에 심리검사를 진행하는 의사를 마주하며 5시간이 넘도록 나는 검사를 받았다. 지치고, 힘든 시간이었다.
그러나 역시 대형 대학병원이어서였을까, 며칠 뒤 A4용지 여러 장에 걸친 종합심리검사 결과는 이제까지의 나의 행동을 단번에 이해시키는 데 충분하고도 남았다.
경계선 성격장애. 감정 기복이 극단적이고, 대인관계에서 파괴적인 양상을 반복하며 자해나 충동적인 행동으로 고통을 표현한다. 버려질 것 같은 불안 속에서 관계를 망치고 다시 매달리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탓에 제대로 된 관계를 맺는 것이 힘들다.
대충 이런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이 짧은 문장에 나를 다 담은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속이 시원하진 않았다. 앞서 말했듯 내가 아픈 사람이라는 건 변하지 않았으니까. 문제를 진단했으니, 해결은 지금부터 시작이었으니까.
이토록 지치고 지쳐 쓰러진 채 겨우 왔건만, 다시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나로선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