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지 않는 흔적

by 무연


만약 나의 신체가 나에게 말을 걸 수 있다면, 분명 왼팔의 목소리가 가장 클 것이다. 왼팔은 아마도 나에게 제발 이제 그만, 이라며 절규 속에 나에게 매달리지 않을까.

수많은 자해의 흔적 중 대부분이 왼팔에 쏠려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오른손잡이이기 때문이다. 이성을 잃은 상황에서 불편한 팔로 세심하게 예술을 할 여유는 없다. 슬슬 차오르는 숨 막힘에 다음엔 여기에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있어도, 막상 폭발해버린 상황이 닥치면 계획 따윈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바이올린이라는 올가미로부터 옴짝달싹 목이 메여 캑캑거리고 있을 때, 나는 공구 상자 안에 들어있던 송곳으로 손등을 찢었다. 찢어진 손등에서 피가 한두 방울, 맺혀 이내 책상 위로 떨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크게 안심했다. 누구도 봐주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이거면 살 수 있겠다.

그 말도 안 되는 안도감은, 그날 이후 끊어지지 않는 내 삶의 짙은 일부가 되었다.


나는 단 한 번도 죽고 싶어 내 몸에 상처를 내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살기 위한 행동이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에 휩싸일 때면 나는 늘 날카로운 것을 들었고, 스스로를 헤치고 나서야 막혔던 숨이 탁 터지듯 죽음이라는 욕망을 겨우 밀어낼 수 있었다.

그건 차라리 삶에 매달리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말이 되지 않아도 그랬다. 다친 자리에서 나는 심장이 마구 뛰고, 혈관이 찢어져 피가 흐르고, 통증에 몸이 욱신하는 것을 보며 비로소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잔인한 이 행위는 곧 나의 언어였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감정들, 삼키고 또 삼켜도 소화되지 않던 감정들은 상처라는 형태가 되어서야 가장 솔직해졌다.

울음조차 멈추고, 감정이 모두 사라진 밤, 말이 막히고, 몸이 얼어붙을 때, 나는 상처를 통해 나를 열어젖혔다. 그건 세상을 향한 비난이나 외침이 아니라,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쓴 마지막 문장 같은 것이었다.

상처를 내면 당연히 아팠다. 그러나 아픔은 곧 묘하게 기분 좋음으로 변해갔다. 쾌락 없는 뇌에 강한 자극 한 자락 선물한 느낌이었다. 나는 가능하면 상처가 더디게 나을 수 있게, 이성 없이 저질렀던 첫날과 달리 세심하고 섬세하게 상처를 덧나게 만들었다. 죽음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내 마음을 대변하는 상처를 이렇게 빨리 낫게 해선 안 됐다. 몸이 아파야 나는 살았다. 그건, 굳은 믿음이었다.

아무리 상처를 괴롭히려 애를 써도 애속하게도 시간이 흐르면 상처는 아물었다. 벌어진 입을 여문 상처는 이내 흉터라는 흔적으로 내 위에 남았고, 한 번 새겨진 흔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떤 것은 옅게, 어떤 것은 짙게, 몸 곳곳에 남은 흔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반팔이나 민소매를 입는 여름 같은 경우엔 나의 흔적은 여실 없이 밖으로 드러났다. 대중목욕탕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가끔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묻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겪어온 역사가 긴 탓에 귀찮은 나머지 그냥 요리를 하다 오븐에 데인 자국이라고 설명하고 만다. 거의 모든 사람이 거기서 말을 닫지만, 납득은 잘 가지 않았을 것이다. 오븐에 데였다기엔 흔적이 너무 많았으니까.


“너는 네 팔이 불쌍하지도 않니?”

엄마의 말이었다.

불쌍하다라…. 아니, 한 번도 그렇게 느낀 적 없다. 오히려, 나는 나의 흔적이 자랑스러웠다. 수탄 전장에서 패잔병이었을지언정 끝까지 살아남은, 나의 흔적이여.

가끔, 잠이 오지 않는 잔잔한 밤에 나는 나의 흔적을 세어보곤 한다. 병원을 가야 할 정도로 심각했던 상처나 특별히 독특하게 남은 흔적 말고는 왜 하게 되었는지, 그때 무슨 상황이었는지 애써 떠올리려 해도 기억이 희미해진 흔적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달라지는 건 없다. 나는 그 산을 넘어 지금 숨을 쉬고 있다.


그러나 엄마의 말처럼, 나의 이런 행동을 이해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건 전문가도 마찬가지였다. 살기 위해 숨구멍을 내는 행위가 그들에겐 목구멍을 막는 것으로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끈질기게 나의 삶의 방식을 설득했지만, 이해되어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더욱이 그런 나의 행동 패턴이 경계선 성격장애의 일부 특징이라는 틀에 갇히게 되자 살고자 선택했던 나의 방식은 치료해야 할 것으로 낙인되었다.


하지 말라고 하니까, 더 하고 싶은 금쪽이 같은 심리였을까? 아니면 이제는 뇌가 너무 강력하게 기억해버린 탓에 더는 선택지가 없어졌기 때문이었을까?

언제부턴가 내 삶의 모든 해결책은 자해 하나로 일축되었다. 자해를 대신할 방법들을 아무리 연구하고, 시도해보아도 나는 결국 끝에 가서 피를 봐야만 속이 뚫렸다.

대체 왜? 라는 질문 앞에 내 입은 굳게 닫혔다. 술보다 더 독하게, 더 오래 몸에 박혀버린 이 습관에 대한 해답은 나에게 없었다.


나의 자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만두기 위해 수탄 전문가들과 갖갖은 방법을 시도해보았고, 노력했지만 아직까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죽게 하지만 말자, 라는 약속과 함께 어쩌면 이건 내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숙제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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