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by 무연


“안녕.”

누구지?

“도와줄까?”

뭐지? 방금, 뭐지?

분명 집에는 나 혼자였다. 계절 따위 생각나지 않지만 아무도 없는, 고양이조차 울지 않는 짙은 밤이었다. 목소리는 짧은 적막 끝에 다시 들렸다.

“당황했어?”

“너 뭐야?”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육성으로 튀어나왔다. 내가 지금 뭘 듣고 있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그게 중요해?”

그래, 나는 그게 중요했다. 그러나 입은 이내 막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왼쪽 귀에서 분명한 목소리가 또 한 번 들렸다.

“내가 널 도와줄 수 있어.”

무엇을…. 나는 내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지만, 마음에서도 그 말을 흐렸다. 말을 흐린 이유는 스스로가 알고 있었다. 아마 내 추측이 맞는다면, 이 영문 모를 목소리가 하고 싶은 말은, 나를 도와주겠다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딱 한 번이야. 알잖아. 편해질 수 있는 방법.”

나는 손끝을 떨며 겨우 침을 삼켰다. ‘알잖아, 편해질 수 있는 방법.’ 그 말 앞에 동공이 흔들렸다. 어쩌지.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라는 생각이 들자 확 무서워진 나는 잠옷 차림으로 뭘 챙길 새도 없이 집을 뛰쳐나갔다.

그날 내가 어디로 뛰쳐나가 얼마나 밖을 서성였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그날 밤, 나는 살아남았을 뿐이었다.


그날 이후, 한 번 들리기 시작한 목소리는 계속해서 나를 따라붙었다. 나는 별걸로 나를 귀찮게 구는 이 목소리와 차라리 친구를 맺었다. 매일 같이 불화를 만들어내는 직장 동료보다 목소리는 훨씬 다정했고, 어디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던 나를 누구보다 이해했다.

나는 일을 할 때는 목소리와 대화하지 않았지만, 직장을 벗어나서는 장을 보면서 무엇을 사야 할지 의견을 나누기도 하고, 길을 가다 귀여운 강아지가 보이면 탄성을 내짓기도 하고, 공중도덕과 양심이 무엇인지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하기도 했다.

목소리는 다소 수다스러웠지만, 다루기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적어도 낮에는 그랬다.


해가 지고, 땅거미가 어르스름해지면, 마치 지킬과 하이드 같이 목소리의 성격도 변했다. 목소리는 관계라는 고단함에 지친 나를 끊임없이 준동했다. 서슴없이 욕을 일삼고, 관계에 대응하지 못했던 나를 책망하고, 길길이 날뛰며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런 것까지, 참을 수 있었다. 휘둘리지 않을 수 있었다. 목소리가 무서운 건, 그 다음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멍청이. 너는 용기가 없는 거야. 딱 한 번이면, 모든 게 편해져. 그런데 넌 그 용기를 내지 않잖아. 내가 도와준다니까? 내가 해줄게. 너는 그냥 따르면 돼.”

아니라고, 제발 그만하라고, 강력하고 단호하게 말할 힘이 나는 없었다. 나는 매일 밤 나를 쥐어흔드는 목소리 앞에 무력했다. 어쩌면 진짜로 목소리 말대로 일을 벌일까, 두렵기까지 했다. 그런 목소리를 간신히,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는 건, 눈앞에 흐르는 피였다.

어리석게도 당시에 나는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 이상한 일이라는 것 자체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나는 나의 세계에 굳게 갇혀있었다. 누구나 이런 목소리쯤은 가지고 사는 거겠지. 왜 그런 말도 있잖아, 마음의 소리라고. 대수롭지 않은 거야.

나 스스로 자해를 했을 때도 자극이 더 큰 자극을 불러 상처가 점점 커져만 갔는데, 목소리가 합세하니 상황은 말도 아니었다. 매일은 아니어도 자해의 빈도는 짧아져만 갔고, 몇십 바늘에 걸쳐 봉합 수술을 해야 할 정도로 큰 상처들이 팔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렇게 피를 눈앞에 가져다 바쳐도 목소리는 만족하지 않았다.

이즈음 와서 나의 선홍빛 피에 굶주린 이 목소리가 친구가 아니라 친구의 탈을 쓴 악마. 나를 끝내 죽음으로 몰기 위해 찾아온 악령, 이라고 생각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나의 팔이 조금은 더 온전했을까.

나는 목소리가 무서우면서도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말했지 않은가. 목소리는, 친구, 였다고. 고독이라는 섬에 갇힌 나를 유일하게 이해해 주던 ‘친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가운데 완전한 판단력을 잃은 내가 마침 새로운 사건으로 가게를 쉬고 있을 때였다. 평소와 다름없이 집에 가만히 앉아 TV를 보는데 마침 TV에서 살인사건을 다루는 FBI가 저명한 정신과 의사를 사건의 고문으로 삼아 특정한 용의자를 정신의학적으로 추리해 가는 내용의 미국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다. 여기에 조금 독특한 설정이 있다면, 고문을 담당하는 그 의사가 사건마다 환각을 보는데 그게 실마리를 주어 사건을 해결한다는 것이다.

그 드라마를 보며 나는 큰 충격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드라마 속 의사가 보고 듣는 말이 전부 사실이 아니라는 것에, 내가 지금까지 들었던 이 목소리가 저 의사가 겪는 것처럼 누구에게나 벌어지는 평범한 일이 아니라는 것에, 그제야 나의 현실에 눈을 뜬 셈이었다.

한참 동안 돋는 소름이었다. 분명, 내가 듣는 목소리는 실체 했다. 왼쪽 귀에 뚜렷하게 들리는 목소리였다. 어쩌면 정상이 아닐 수도 있었지만, 애써 부정해오던 무언가였다. 그러나 그걸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마주하게 된 순간, 나는 한순간에 무너지는 마음을 수습할 수 없었다.


조현병. 앞으로 숱하게 정신과적 진단이 내려질 내 처음으로 받은 병명이다.(내 진단명에 대해선 따로 다룰 일이 있을 것 같아, 청소년기 때의 진단은 포함 시키지 않겠다.) 늘 무시할 수 없었던 환청으로 인해 자해를 멈출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던 나는 결국 1차 병원에서 대학병원으로 입원이 결정됐고, 그중에서도 소위 공포영화에서나 다룰 법한 폐쇄병동으로 이끌려갔다.

대학병원의 의사가 간단한 몇 가지의 질문만으로 나를 조현병이라고 진단을 내리자마자 나는 어떠한 마음의 준비도 없이 그 병원 최고층으로 안내됐다. 나와 함께 했던 엄마 역시 모든 것이 얼떨떨해 보였는데 길을 안내하는 간호사는 으레 있는 일인 듯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내려 긴 복도를 따라 들어가다 보니 보안이 철저해 보이는 거대한 문이 눈앞에 나타났다. 간호사가 자신의 신분증을 문 앞에 보이자 곧 문이 열리고, 또 하나의 철문이 바로 앞에 보였다. 엄마가 떨고 있는 내 손을 붙잡아주며 함께 걸음을 내딛는 순간,

“여기서부터는 환자 혼자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간호사의 제지였다. 나는 간절한 얼굴로 엄마를 쳐다봤지만, 여기까지 와서 돌이킬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엄마가 마지못해 놓았던 손의 온기는 곧 겨울의 차가운 냉기로 덮였다. 이때까지 새로운 자극이 곧 흥분이었던 나에게 이토록 공포스러운 순간은 처음이었다.


폐쇄병동은 어떤 면에서는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물품도 제한이고, 면회도 제한이고, 많은 간호사의 감시 속에 지내야 하는 실제 감옥과 비슷한 고립이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사회로부터 아니면 스스로부터 괴로운 사람들에겐 휴식과 같은 자유를 선사해주는 곳이었다. 그렇게 평가해 볼 수 있는 폐쇄병동에서 그 양면 중 나는 어떤 것을 누렸냐고 물어본다면, 당연히 전자였다.

나는 자해를 제외하고는 겉보기에 정신질환이 없는 사람들과 같았다. 물론 나의 관계 맺는 방식이 심리학적으로 문제가 있고, 많은 부분에서 인지적으로 고쳐야 할 것이 있었지만 그것은 누구와 관계를 정식적으로 맺을 때의 일이고, 자신이 도촬, 미행, 감시를 받고 있다고 하루가 멀다하고 가짜 전화기를 부여잡고 미국 대통령과 전화하던 편집증 환자, 며칠씩이나 씻지도, 먹지도, 움직이지도 않고 잠만 자는 우울증 환자, 병명은 잘 모르겠지만, 간호사들을 붙잡고 자신이 사회에서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증명해 보이고 싶어하던 환자….

환자들은 자신의 병에 매몰된 나머지 서로가 서로에게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지만, 나는 달랐다. 그들이 모두 한눈에 들어왔고, 대번에 나는 이들과 다르다는 생각에 여기에 섞이고 싶지 않았다.


폐쇄병동에 들어온 지 2시간도 되지 않아, 나는 나를 찾아온 레지던트에게 여기서 나가고 싶다고 소리쳤다. 분명, 소리쳤다. 나는 괜찮다고, 여기 있으면 상황이 더 악화될 것 같다고, 제발 나를 여기서 꺼내달라고.

레지던트는 표정 없이 이곳으로 안내한 간호사와는 달리 진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나를 겨우겨우 달래며, 증명해달라고 요구했다. 아무리 이곳에서 자해를 할 수 있는 도구들을 빼앗았다고 해도 할 수만 있다면 손톱으로라도 자해를 하는 건 가능했다. 어떤 자해도 하지 않고, 곧 다가올 주말을 잘 보낸다면 일반 병동으로 내려 보내주겠다고, 그와 나의 약속이었다.

레지던트가 사라지고, 푹 꺼진 소파에 앉아 눈물을 훔치며 나는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상황을 이해해보려 애를 썼다.

“그러니까, 누가 상황을 이렇게 만들래? 다 네 탓이야.”

또 목소리였다.

“닥쳐.”

처음으로, 목소리에 대한 반항이었다. 내 말에는 힘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지쳐있었지만, 분명하게 날이 서 있었다. 그러나 나를 비웃는 목소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하루 종일, 내가 약을 먹고 퓨즈가 끊어지듯 잠이 들 때까지 나를 비난하고, 욕하고, 화를 내며 순 자기 멋대로 내 감정 위에서 발악을 해댔다. 그런 목소리를 데리고 뛰어내릴 수도 없는 창문을 바라보며 주말을 버틴다는 건, 여느 때보다 힘겨운 싸움을 예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목소리는, 약과 함께 사라졌다. 미련하게 몇 년을 질질 끌려다닐 게 아니라 처음부터 목소리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병원을 찾아 약을 먹으면 되는 일이었다. 나는 폐쇄병동에 일주일 남짓 있었고, 그 후에 일반 병동에서 며칠 지내고 난 뒤 목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서 퇴원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 문제가 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침착에 침착을 유지했고, 점점 사라져 가는 목소리에 휘둘리지 않았다. 길길이 날뛰던 자해의 충동은 어느새 사그라들어 마음속 잔잔한 파도로 일렁거렸다.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그래, 겉보기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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