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님

by 무연


죽음의 멍에를 지고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대는 나를 엄마보다도 먼저 알아봐 준 사람이 있었다. 지금 내가 그 어떤 사람보다 의지하고, 지혜를 구하며, 진심어린 위로받고 싶을 때마다 연락하는 사람. 그런 나의 연락을 마다하지 않고, 따스한 목소리로 기꺼이 받아주는 사람. 은사님이다.

은사님은 내가 심리학 학부를 다녔을 때 처음 만났던 나의 대학 교수였다. 그는 교수라고 하면 솔직히 단정한 옷차림에 정돈된 머리, 똑똑해 보이는 인상이 기본이지 않을까, 싶은 나의 생각을 깬 사람이었다. 자다 왔나? 교실 안을 정신 없이 들어온 은사님을 본 첫인상이었다. 마구잡이로 휘날리는 머리카락, 삐뚤어진 안경, 헐떡거리는 숨, 뭘 그렇게 들고 있는지 무겁게 가져온 서류들. 내가 과연 저 사람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대학에서는 두 부류의 교수가 있었…. 다고 하기엔 이 은사님 말고는 다 한쪽에 치우쳐져 있음을 인정해야겠다. 한쪽은 오늘 배울 것이 무엇인지 목차부터 차근차근 살피며 각 잡고 네모진 틀 안에서의 강의를 반듯하게 나가는 쪽이었지만, 이 은사님은 그런 것 따윈 없었다. 강의를 하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비틀고, 또 비틀고. 차곡차곡 젠가를 쌓아 올리는 게 아니라 마구잡이로 본인이 알고 있는 지식을 쏟아내는 느낌이었다. 그런 은사님이 항상 수업에 들어와서 하는 말은,

“얘들아, 내가 오늘 아침까지 내용을 수정했는데….”

였다. 그 은사님 역시 머릿속에 생각이 많았고, 알려주고 싶은 것이 많아서 였을 것이다. 정리가 되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는 은사님의 한계 같은 것이었나 보다.

그런데 재밌는 건, 생각보다 나는 이 은사님의 강의에 푹 빠졌다는 것이다. 물론, 정신없는 쪽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나는 은사님의 열정이 마음에 들었다.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마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이 시간에 더 많이 주고 싶은 진심. 내가 엉망으로 쌓인 젠가 속에 본 은사님이었다.


나는 그런 은사님과 친해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은사님이 주는 과제와 시험을 잘 봐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하, 한숨부터 나왔다. 강의 스타일만 다른 것이 아니라 시험 스타일까지 이 은사님은 다른 교수들과 달랐다. 어렵다고 하기엔 난해했고, 풀 수 없다고 하기엔 또 몇 자 끄적여 볼 만했지만, 성적이 어떻게 나올지는 미지수였다. 아마 제일 마을 졸였던 과목이 아니었을까.


은사님과 나는 매 학기 마주하며 자연스레 친해졌다. 나는 쉬는 시간을 통해 자연스레 나의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놓았고, 은사님이 심리학을 공부해서였는지 아니면 원래 품이 넓었던 것인지 차츰 감춰져 있던 내 안 깊은 곳에 자리한 어둠을 보기 시작했다. 은사님도 대놓고 티를 내진 않았지만, 알았을 것이다. 내가 언젠가는 자신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내가 그런 은사님에게 간절한 도움의 손길을 보낸 건, 나의 아픔이 최고조로 정점을 찍었을 때였다. 마지막 학기 말 말이다.

나는 더 이상 정신과로도 되지 않는 나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엄마에게 은사님을 마주하게 연결했다. 당시에 나는 어쩌면 정신과 상담보다 심리상담을 받는 것이 나를 이 고통으로부터 해방 시켜주지 않을까에 대한 어렴풋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엄마는 한참 동안 은사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은사님이 엄마를 설득해주길 바랐다. 그래야만 이 길고 긴 굴레를 끊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은사님이 어떤 위로를 전했는지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나는 알 수 없다.

엄마가 방에서 나왔다. 울었는지 엄마의 눈은 붉게 부어있었다. 엄마는 은사님이 나의 상황에 맞는 상담사를 알아주기로 했다는 말을 전했다. 드디어 한 발, 삶을 버티는 순간이 찾아왔다.


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은사님에게 전화가 왔다. 괜찮으면 밥을 해 먹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어리둥절했지만, 나는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마냥 편한 건 아니었지만, 나를 아픔을 알아봐 주는 사람의 손을 나는 간절히 붙잡고 싶었다.

그 어렵다는 교수님 집 방문이라니, 떨렸다. 대문 앞에 서서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뒤 문이 열리고, 소소한 차림(학교에서보다 더)의 은사님이 환한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한 사람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고 있던 은사님의 또 다른 모습을 본 순간이었다.

건강한 것을 먹이고 싶다는 은사님은, 그날 이후로도 종종 나를 불러 밥을 해 먹였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내가 은사님 댁에서 스테이크를 구운 적도 있었으며, 아예 밖에서 스테이크를 사 주신 적도 있었다.

은사님은 또한 내가 괜찮게 들을 만한 심리 관련 세미나 혹은 강의 들을 추천해주었고, 함께 듣자며 부끄러워하는 나를 꼬셨다. 나는 그런 은사님의 나를 챙김이 몸 둘 바 모르게 감사했다. 내가 무엇을 하면 아주 조금이라도 그에 대해 보답할 수 있을지 아마 되지도 않을 것이다.


“00아, 하고 싶지 않은 건, 하지 않아도 돼.”

은사님의 말이었다.

어느 날, 건강한 음식을 먹고 후식으로 과일을 먹고 있는데, 한창 내가 힘이 들었던 날들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내 이야기를 듣던 은사님은 나의 말을 잠깐 끊으며 저 말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구차하게 나를 설명하기 위해 들고 있던 손이 떨렸다. 목소리가 애달프게 변했다. 눈시울이 붉어지며 한두 방울, 눈물이 떨어졌다. 남 앞에서 죽기보다 보여주기 싫었던 우는 모습을, 은사님 앞에 보여지는 것이 창피하면서도 나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하고 싶지 않은 건, 하지 않아도 되는 거였구나. 그런 거였구나….


내가 이후, 은사님에게 이 말이 지금의 나를 얼마나 지탱해주고 있는지 아냐고 물으면 은사님은 고개를 갸웃거리신다. 장난인지 뭔지 잘 모르겠다. 그러다 은사님은 곧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그 말을 잡은 거야. 나는 수많은 말을 했지만, 그 말을 잡은 바로 너야.”

은사님은 여전히 나에게 큰 산이다. 위기가 왔을 때, 위로가 필요할 때, 호흡이 필요할 때, 지식이 필요할 때, 도움이 필요할 때, 나는 전화 한 통이면 나의 말도 안 되는 때를 받아주는 은사님 덕에 오늘을 산다.

내 안에 한 발이라는 공간이 있듯, 은사님 역시 사람으로 있는 나의 또 다른 한 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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