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공부를 시작하고 나니, 이제까지 정신과에서 받았던 건 제대로 된 상담이 아니라 증상의 치료를 위한 질의응답에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심리학을 진로로 삼고, 상담사를 목표로 하며 공부에 매진하던 나는 문득, 진짜 상담이 무엇인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고, 어쩌면 상담이 이제까지 절벽 끝에 간신히 매달려 버둥거리던 나의 삶을 해방 시켜줄 열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상담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엄마를 설득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그 역할을 은사님에게 맡겼다. 상담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는 건, 나보다 더 전문가인 은사님에게 맡기는 것이 더 낫겠단 판단에서였다. 때마침 적절한 시기에 은사님과 만나게 된 엄마는 나의 기대대로 내가 상담 받는 것에 동의했다.
오랫동안 굳혀진 습관을 바꾸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에 대한 예는 쉽게 담배로 들 수 있다. 어리면 어릴수록 담배를 피어온 세월이 긴 사람이 담배를 끊는 일은 쉽지 않다. 나는 말하자면 그런 것과 비슷했다. 아주 옛날부터 내 몸에 배어버린 습관들. 자해, 인지 왜곡, 자동적 사고, 흑백논리. 전부 내 의지보다 먼저 툭, 튀어나오는 것들이었다. 관계를 해치고 끝내 나를 해치는 것들이었다.
재빨리 움직여준 은사님의 연결 덕에 학부를 졸업하자마자 상담은 시작되었다. 나는 상담사가 마주하는 사람 중에서 우호적인 편이었다. 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으니까.
이때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쭉 하면서 자각할 수 있는 불편한 것들을 말하는 나를, 상담사는 적절한 눈맞춤과 함께 짧은 감탄으로 호응하며 나의 말에 집중했다. 세기 힘든 자해의 흔적을 보여주며 이 문제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나의 오래된 습관이라 고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낼 때, 나는 머뭇거렸으나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곤 나는 긴장을 감추기 위해 물을 한 입 마셨다. 그 다음에 듣게 될 말에 겁이 났다.
“저는 00씨의 자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옅은 미소의 상담사가 조용하게 말했다. 그 말이 너무도 부드러워 마치 잘 만들어진 라떼 위에 얹어진 폭신한 크림 같았다.
“자해를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라고 권장하는 입장도 아닙니다. 하지만, 살기 위해 자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00씨의 아픔을 이해해보고 싶습니다. 00씨는 이걸로 그 누구에게도 비난받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말, 아니 위로였다. 이제까지 어떤 정신과 의사도 나의 자해를 보면 기겁을 하고 다시는 하면 안 된다, 으름장을 놓았지, 이런 방식으로 나를 대한 적은 없었다. 상담사는 자해를 하는 습관이 예를 들자면 잘 닦인 8차선 아스팔트 고속도로 같은 것일 뿐이고, 그 외의 새로운 방식의 길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색한 것이라며 지금부터라도 자신과 함께 풀을 베고, 돌멩이를 치우며, 새로운 8차선 도로를 닦아가 보지 않겠냐고 손을 내밀었다. 말 그대로, 구원의 손길이었다.
그날로부터 내 자신과의 싸움에 든든한 우군을 얻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정말 모든 것을 상담사에게 털어놓았다. 일상에 소소한 것부터 큰 사건들까지. 상담을 하는 기간 동안 자해가 기적처럼 멈춘 것은 아니었지만, 그 빈도가 눈에 띄게 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주로 스스로 처리되지 못하는 감정의 방향에 대해 상담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속상했던 감정, 열이 나 죽어버리고 싶은 감정, 너무 미워 죽여버리고 싶은 감정, 수치스러운 감정, 감당할 수 없는 공허와 허무 속에 갇힌 감정.
시간이 흐를수록 단단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 상담사는 다양한 질문을 통해 내 감정의 원천에 집중했다. 상담사는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는 상담실로 가져오지 않았다. 현재 내가 느끼는 것이 중요할 뿐이었다.
나는 종종 상담사와 상담을 이어가며, 내가 만약 상담을 하면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를, 현장에서 배워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내담자를 존중해주고, 이런 질문들로 내담자의 생각과 감정을 다뤄주고, 때로는 위트있는 농담과 적절한 조언 사이에 균형을 맞춰가며, 내담자를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 학교에서 책으로 경험할 수 없는 생생한 현장 체험이었고, 상담사가 되기 위한 중요한 자양분이었다.
그러나 상담사의 노력에도 이미 오래전부터 상당히 많은 부분, 곯아버린 나는 쉽게 회복되어 지지 않았다. 상담은 마치 나선형의 회전을 반복하는 것 같았다.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아 보이면, 다시 내려가고, 또 나아지는 것 같으면 더 밑으로 내려갔다. 답답함이 밀려왔다.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했던 상담마저 도움이 들지 않는 불안감에 떠는 나날이었다.
나는 목적 없는 불안을 상담사 앞에서 애써 숨기지 않았다. 내가 어떤 모습을 보여도 이 사람 앞에서는 괜찮아, 라는 믿음이 생겨버린 지금, 유일하게 그 앞에서 할 수 있는 토로였다.
나의 내면 깊은 곳의 절박함을 알고 있는 상담사는 한순간도 먼저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상담을 받는 것이 무뎌진 하나의 일상이 되어버렸을 때도 상담사는 나의 헤진 마음을 먼저 살폈다. 이 정도면, 포기하겠지. 이 정도면, 당신도 나를 놔버리겠지. 모두가 그랬으니까. 그러나 계속된 상담사와의 씨름에서 승자는 늘 상담사였다.
2년 8개월. 나는 오늘도 상담사와 싸우고, 질문하고, 하소연하고, 자랑한다. 상담사는 여전히 나의 든든한 아군이다. 나를 평가하지도, 판단하지도 않는다. 하염없는 걱정과 함께 있는 그대로 나를 바라봐주는 한 사람으로서,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나는 다만 바란다. 나선형의 순간에서도 회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상담사가 심었던 씨앗이 건강하게 자라고 자라 돋은 열매를 달게 먹는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