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내가 가진 신앙의 여정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5대째 기독교를 믿는 집안에 태어나 내가 선택이라는 것을 할 수 있기 훨씬 전부터 교회와 익숙한 사이가 되었다. 외할머니는 성경책 위에 어떠한 것을 올려놓는 것을 하나님에 대한 불경으로 생각할 정도로 믿음이 충만했고, 아파서 죽기 전이 아니고서야 주일날 교회를 가지 않는다는 건 우리 집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엄마는 잘 모르겠으니 할 말 있으면 하나님한테 해.”
엄마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불평하던 내게 종종 하던 엄마의 말이었다. 그 말을 들으면 뭣도 모르는 5살의 꼬마는 쪼르르 방에 달려가 무릎 꿇고 앉아 기도를 시작한다.
‘하나님, 내 말을 잘 듣는 엄마로 바꿔주세요.’
바이올린에 대한 신음이 커질수록 하나님을 향해 울부짖는 나의 목소리도 커져만 갔다.
‘하나님, 제발 바이올린만 그만두게 해주세요. 제발, 바이올린만 그만두게 해주세요. 그거면 살 것 같아요.’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들려오는 응답은 없었다. 응답은 없었어도 나는 치열하게 하나님과의 싸움을 이어갔다. 형 에서와의 만남을 앞두고 뜬금없이 자신과 싸움부터 시작하다 못해 엉덩이뼈를 차인 야곱처럼 나는 누가 이기나, 끈질기게 하나님의 바짓가랑이를 붙들었다.
1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바이올린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것이 진짜 응답이었는지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 다음에 선택한 길 역시 나에겐 나락의 구렁텅이였으니까. 나와 하나님의 싸움은 지금부터였다.
자해의 날이 많아질수록 흐르는 눈물 또한 진해졌다. 도움을 청하던 목소리는 이내 원망으로 바뀌었다. 원망의 대상은 하나님으로 고정되었다. 당신이 나를 만들었으니 책임지라고,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배게 잎을 부여잡고 목놓아 울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하나님’을 읊으면 주르륵 눈물부터 흘러나왔다. 심장이 찢어질 것 같은 아픔이 나를 덮쳤다. 그토록 절절대는 내게 하나님은 그저 하염없이 버티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 말이 무책임하게만 들렸다. 그래서 더한 반항심으로 나를 괴롭히고, 관계를 망쳐놓기도 했다. 보란 듯이.
나는 내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었다. 하나님은 나를 죽음의 문턱에서 기어이 살렸다. 누군가는 그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확신할 수 있다. 그건 하나님 말고는 아무도 하지 않았다고.
중환자실에 실려 갔을 때, 모두가 급박했다. 급박한 순간에 누가 나에게 다가와 지금, 이 순간 기도해줄 목사가 필요하냐를 묻기도 했다. 나는 그것이 죽기 전 마지막 기도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조금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
견디다 못해, 이제는 끝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죽음에 이르는 길로 뛰어들었을 때도 나는 살았다. 나는 내가 죽음 직전까지 갔음을 알았고 조금만 더 늦었으면 그대로 죽었을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이 하나님은, 나는 늘 끝에서 살려놓았다.
이제는 내가 지쳐 이 싸움을 헤쳐 나가고 싶지 않아졌을 때, 술에 취해 방구석에 털썩 주저앉은 나는 온몸의 힘이 다 빠진 채 공허한 눈빛으로 아무것에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곁에는 아무도 없었고, 나의 고통을 알아주는 이도 없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겨우 버티고 있던 날이었다. 나는 그날, 특히 더 무리해서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아픔이었다.
내가 바닥인지, 천장인지 구별도 안가는 느낌 속에 술에 절은 한숨이 위로 문득, 물방울 하나가 내 어깨에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비가 새나? 드디어 집도 맛이 갔구나. 하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 느낌은 한 번 더, 이어졌다. 나는 간지러운 느낌에 어깨를 툭 쳤다. 그런데 분명 손끝에서 느껴져야 할 물이 느껴지지 않았다. 진짜 취할 만큼 취했구나 싶었어도, 묘한 느낌이었다. 나의 시선이 자연스레 천장을 향했다. 빙글 도는 천장은 눈을 비벼도 멀쩡해 보였다. 그렇다면 내가 느낀 이건, 뭘까.
심장에서 갑자기 아릿한 것이 느껴졌다. 애달프게 매달리는 이 감정은, 안 그래도 서러운 감정에 불을 붙였다. 벽에 머리를 박고, 한 손에 술을 들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드는 내 입에서 다시 ‘하나님’ 소리가 흘러나왔다. 흐느끼는 애절함이었다.
‘여기 있노라, 내가 너의 아픔을 다 아노라. 너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다. 나의 딸아.’
가슴 깊은 곳에서 울리는 하나의 메시지였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운다는 것은, 믿기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나에 대하여 무정하고, 메마른 존재였다. 그는 나를 절벽으로 미는 존재였다. 그런 그가 나의 아픔에 나보다 더 가슴 아파하며 울고 있었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받을 수 없는 거대한 위로가 결국 그의 손에 달려있음을 알았다. 나의 해방이 그로부터 시작됨을 알았다.
하나님하고는, 내가 짊어진 고질병처럼 아마도 평생 질긴 싸움을 해 나가야 할 것 같다. 다만, 그와의 싸움에서 바라는 것이 하나 생겼다. 죽일 거였으면 진작 죽일 수도 있던 이 목숨을 그가 구한 게 맞다면, 적어도 나의 상처가 나의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한 삶이 되기를, 나는 이렇게 상처투성이가 되었지만, 적어도 누군가는 그렇게 되기 전에 막아줄 수 있는 보호막이 되기를.
나의 한 발이, 누군가의 한 발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