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이 막힌 케이지 안에 가둬놓고 지속적인 전기충격을 가한 개의 다수는 이윽고 케이지를 열어줘도 나가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학습된 무기력이다.’ 유명한 실험이니, 한 번쯤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실험의 이면도 알고 있는가?
긍정심리학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마틴 샐리그먼은 이 실험에서 소수의 개가 여전히 힘을 내어 전기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린 케이지를 빠져나가는 것에 집중했다.
무기력이 학습되듯 벗어나는 힘 역시 우리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나는 앞으로 다가올 나의 길에 꽃길만으로 가득하길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벗어날 힘없는, 아직은 전기충격에 무기력하게 뻗어있는 작은 강아지다. 다음에 올 전기가 부디 미약하게 지나가길 바라며, 문은 이미 열려 있다는 것은 인지하지 못한 채. 그건, 아무리 나를 끌어당기고 열려있다 외치고 가자 가자, 해도 되지 않는 것이다.
설령 내가 지긋지긋하게 나를 괴롭힌 전기가 어느 날은 한참 동안 오지 않아, 이제는 끝인가, 라는 미련 속에 케이지 밖과 안쪽의 경계를 서성인다고 해도 조그마한 소리에도 깜짝 놀라 다시금 케이지 구석 안으로 도망가버리는 나는 여전히 케이지 밖을 나갈 용기가 없다. 용기는 없는 주제에 불만은 많고, 스스로 할 수 없으니 누가 케이지를 부숴주지 않나를 기다린다.
그러나, 나는 명확히 알고 있다. 아무도 나를 여기서 꺼내주지 못한다. 꽃길은, 내가 가꿔가야 할 나의 몫이다. 나에게 주어진 길이 가시밭과 모난 돌의 연속선상에 있다면, 그것을 뿌리 뽑고, 제초제를 뿌리고, 다듬고, 돌보아, 씨를 뿌려 새 새싹이 돋아나게끔 해야 하는 것은, 나의 일이다.
지금 당장은, 케이지를 벗어나는 건 무리일지도 모른다. 너무 오래, 이곳에 있었다. 아파도, 나에겐 익숙한 곳이다. 벗어나는 것은 두렵다. 그러나 꽃길을 만드는 것이 내 손에 달려있는 것처럼, 한 번쯤은 내 의지대로 이곳에서 나가 자유를 만끽하는 날이 오기를 나는 어렴풋 꿈꿔본다.
한차례 전기충격이 지나간 잠잠한 케이지 안에서 몸을 잔뜩 웅크린 나는 찬란하게 넘실대는 노을에 눈을 빼앗겨 버린다. 다행히, 케이지 밖도 안도 노을은 공평하게 나에게 빛을 전한다. 노을이 반짝거리는 황금빛은 따뜻하다. 부드럽다. 몽글거린다.
노을의 빛을 통해 삶에 지친 나는 하루를 견디고, 위로를 받는다. 내일은 또 어떤 전기충격이, 어떤 강도로 다가올지 모르지만, 오늘 하루, 오늘 하루만큼은 잘 버텼다고. 오늘도 살아내느라 수고 했다고.
어느 날인가. 그날이 오면, 찬란하게 나아가길.
<궂은날 아홉, 반짝이는 날 하루>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