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차를 타고 거제를 내려가는 내내, 나는 궁시렁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몸은 차에 실려 가고 있었지만, 마음은 아직 강남 한복판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이런 상태라면 분명, 내려가서도 거제와 친해지기 힘들 거라고 확신했다.
“너, 우리 아파트가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 줄 알아?”
아빠의 목소리엔 자부심이 3스푼, 약간의 으스댐이 첨가돼 있었다.
“그래, 없는 게 없어.”
엄마가 옆에서 거들었다. 어쩐지 부동산 홍보영상 같은 톤이었다.
흥. 가봤자 시골이지. 뛰어봤자 산골이고.
내 귀에는 부모님의 말이 ‘이 아파트는 공기 좋음, 벌레 많음, 가끔 멧돼지 출몰’로 자동 번역됐다.
사실, 부모님의 아파트에 가본 적이 없던 건 아니다. 하지만 이전엔 휴가차 잠깐 들른 거라, 아파트를 누릴 시간 따위는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바다로 나가거나 카페를 전전하다가 밤 늦게 들어왔으니, 아파트 시설은 ‘지나가다 본 헬스장 간판’ 정도의 존재였다.
그런데, 이제 앞으로 내가 살아야 하는 곳이 바로 이 아파트라니.
산 한가운데, 엑셀을 꾸준히 밟아 올라가야 도착하는 이곳은 생각보다…. 아니, 많이 화려했다. 헬스장, 대중목욕탕, 탁구장, 골프연습장, 당구장, 도서관, 독서실, 필라테스, 심지어 노래방까지. 아파트 바로 옆 상가에는 편의점과 카페, 피자집, 치킨집, 국밥집, 고기집이 줄줄이 붙어 있었다. 이쯤 되면 ‘산속 유배생활’이 아니라 ‘산속 리조트 장기 투숙’ 아닌가?
게다가 이 아파트 뒤편에는 작은 공원이 있었는데, 이곳은 강아지들의 천국이었다. 아파트 주민들이 키우는 강아지들이 매일 산책을 나온다. 하루만 가만히 서 있어도 푸들, 말티즈, 리트리버가 줄줄이 지나가며 내 손에 인사를 해주고, 나는 그들의 고운 발바닥 냄새를 맡으며 행복해진다. 그것만으로 이미 나의 마음은 ‘이 아파트’에서 ‘우리 아파트’가 된다.
슬기로운 산골 생활? 아니다. 내가 마음 먹고 이 시설을 이용하고자 한다면 적어도 이 산 안에서는 분명히 말하건대 슬기로운 아파트 생활이다.
서울에서도 이런 대단위 아파트에 살아본 적이 오래됐는데, 여기서 다시 경험하게 될 줄이야. 그것도, 거제에서.
물론 마트나 빵집, 영화관, 올x브영, 옷가게는 없다. 하지만 대신 산속에서 맑은 공기 마시며 탁구 한판 치고, 목욕 재개하고, 도서관에서 책 읽다 카페에서 커피 마시는 생활이 가능하다. 이 정도면 꽤 괜찮은데?
누가 알았을까. 이곳에서 사귄 이모, 할머니들과 팔짱을 끼고, 아파트 단지를 유유자적 거닐며, 다름 아닌 내가 거제 신선놀음을 하고 있을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