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미술관

32주 차

by 당케맨

요즘 우리 부부는 100일 동안 매일 일기를 쓰면 공짜로 책을 만들어주는 어플을 쓰고 있다. 아내는 혹시나 잊을까 봐 알람까지 맞춰가며 열심히 사진과 글을 올리는 중이다. 덕분에 나는 일기를 두 번씩 쓰고 있는 셈이다. 하나는 비밀이지만 ^^;;


하루씩 번갈아 가며 일기를 쓰고 있는데, 아내가 어머니 사진과 함께 장모님 이야길 썼다. 아마도 11월이라는 계절과 내가 쓴 편지 때문에 그리워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글에는 이런 문장들이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한 사진은 전부 갓난아기일 때뿐이라고. 학창 시절은 물론이고 성인이 되고는 노느라 바빠 이 핑계 저 핑계로 부모님과 찍은 사진을 찾기가 어렵다고. 그게 참 슬프더라고. 그러고 보니 그렇다.


매년 반복하는 것이 있다. 크리스마스트리 만들기. 생일. 결혼기념일. 봄에는 벚꽃놀이. 여름에는 휴가. 계절도 반복된다. 시간은 일방향인데, 달력 때문인지 계절 때문인지 우리는 시간이 반복된다고 착각하고 산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데 말이다. 그래서 추억을 쌓아야 한다. 지나간 시간이 돌아온다고 착각해 놓치고는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그걸 붙들어 놓는 거다. 사진이든 일기든 어떤 방식이라도 좋다.


추억이란 무엇일까. 사진 한 장일까. 사진 한 장에 담긴 그 무언가일까. 나는 추억이 별로 없다. 유년시절 기억도 거의 없다. 그러니 부모님과의 추억은 말할 것도 없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자식 넷을 대학까지 보낸 부모님을 지금에서는 이해를 넘어 존경하지만 여행은커녕 놀이공원도 한번 같이 못 가본 게 원망스럽기도 했다. 게다가 갈데라고는 PC방 밖에 없던 고향에서 학창 시절도 어지간히 재미가 없었는지 별다른 기억이 없다.


하루키의 소설에서 '인간은 기억을 연료로 해서 사는 게 아닐까'라는 문장이 있었는데, 정말이다. 나는 연료가 별로 없었나 보다. 아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더럽게 재미없는 인생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조금 소름이 끼쳤다. 그래서 우리 아이는 추억이 가득한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매일 무언가 추억하며 과거에 살라는 것은 아니지만, 문득 행복했던 기억들로 가득한 아이로 성인이 되어 살아가길 바란다.


아내의 만삭 사진을 셀프 사진관에서 찍었다. 사진도 잘 찍고 유행도 앞장서는 아내 덕분에 평생 휴대폰에 셀카 하나 없던 나도 사진 찍는 게 이제는 꽤나 익숙하다. 사진을 찍고 나면 그날 하루는 몇 백번이고 들여다본다. 그러다 잊고 지내지만 몇 년이 지나 문득 그날이 궁금해지는 순간에 사진은 참 고마운 존재다. 그걸 잘 아는 우리는 눈빛만으로도 통했다. 매년 이곳에 와서 우리 가족 다 같이 사진을 남기자 약속했다.


그리고는 중국집에 가기로 했다. 어린 시절 나는 외식하는 게 너무 부러웠다. 가끔 통닭을 먹고, 졸업식날 짜장면 먹을 때 말고 우리 가족에게 외식이라곤 없었다. 감성팔이 하는 게 아니고 엄마 밥이 훨씬 맛있었던 것도 맞는데, 그냥 그 외식하는 가족의 어떤 분위기랄까. 그런 게 가지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반드시 짜장면이다. 사진 찍는 날은 매년 짜장면 먹는 날로 정했다. 근데 우리 딸이 먹기 싫다고 하면 어쩌지.


매년 돌아오는 트리처럼. 매년 기다려지는 시간을 만들어야지. 우리는 멍청이가 아니다. 지나간 시간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쯤은 누구나 안다. 그래도 반복되는 계절을 기다리듯 행복한 시간들을 붙잡으며 살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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