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성장을 방해하는 그것을 당장 치워라

의지는 생각보다 힘이 없다.

by 캐롤

책을 읽으려고 소파에 반쯤 누웠다. 책이 생각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옆에 있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유튜브를 본다. 이 영상에서 저 영상으로 신나게 옮겨 다닌다. 밥을 차려 먹는 것도 귀찮아졌다.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 간단히 먹으면서 유튜브 영상을 이어 본다.


우리 집엔 텔레비전이 없다. 혼수를 할 때부터 텔레비전은 항목에 포함되지 않았다. '텔레비전 없는 거실' 같은 고상한 걸 꿈꿔서가 아니었다. 나는 '텔레비전이 없어야만' 했다.

가끔 집에 손님들이 와서 이 집 거실엔 텔레비전이 없다고 두리번거린다. 식탁에서 차를 마시면서, "이 집은 텔레비전이 안방에 있나?"라고 슬쩍 묻기도 한다. 그럼 우리는 "텔레비전이 없어요."라고 답한다. 손님들은 '그래, 요새 텔레비전 안 두는 게 유행이더라고요.'라고 고개를 끄덕거리거나, '아, 역시 주인이 책을 좋아하니, 텔레비전을 안 보는 모양이네, 우리 집은 티브이 없인 못 살아요."라고 손사래를 친다.

손님들의 성향이나 분위기에 따라 어떨 땐 그냥 웃고 말지만, 대부분은 솔직하게 답한다.

"그게 아니라, 제가 티브이 없이는 못 살아서요. 생활이 안돼요. 하하하."

이렇게 말하긴 우습지만, 나는 책을 좋아할 것 같이 생겼다. 못생겼다는 뜻은 아니다. 그냥 그 뭐랄까, 좀 학구적인 느낌이 난다. 학생 때부터 그런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책을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책보다 텔레비전을 훨씬 더 좋아한다. 책과 리모컨이 있다면, 고민 없이 리모컨을 잡고 눕겠다.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러다 보니 텔레비전은 항상 내 독서의 천적이었다. 뭐 책 좀 못 읽는 게 대수겠는가. 문제는, 텔레비전이 일상생활까지 잠식한다는 것이다. 학생 때는 텔레비전을 피해 독서실이나 도서관을 전전해야 했다. 집에 있으면 텔레비전만 보니까. 시험이 코앞이라도 주말에 집에 있으면 머리가 아플 때까지 텔레비전만 봤다. 연속 재방영 같은 게 있으면 끝장이다. 텔레비전은 친구와의 약속, 운동, 외식보다 우선이었다. 나는 진짜 티브이만 봤다. 텔레비전에 재미있는 드라마라도 하면, 나는 그 자리에서 망부석이 됐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이 끝나면 바로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저 프로그램으로 옮겨 다녔다. 텔레비전엔 재미있는 게 많으니까. 재미있는 게 없으면, 이미 봤던 프로그램 재방을 다시 봤다. 끝이 없었다. 어떨 땐 밥도 건너뛰고, 혹은 간단히 때우고, 화장실 가려는 것도 참고 앉아 있었다. 다리를 배배 꼬고 앉아 있다 보면, 이게 뭐라고 내가 이러고 있나 싶었다. 사람들은 집이 고요한 게 싫어 텔레비전을 켜놓고 그 소리를 위안 삼아 생활한다던데, 난 그럼 생활 반경이 텔레비전 앞 1M가 전부였을 것이다. 흡사 텔레비전에 목이 묶인 개 꼴인 셈이었다. 뭐든 하려면 일단 텔레비전을 피해 집을 나와야 했다.

직장이 생겨 자취를 하게 되면서 텔레비전과 결별했다. 아마 텔레비전이 없어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신혼집엔 당연히 텔레비전을 들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대부분 남자들이 반발이 심하다는데 남편은 생각보다 요구를 쉽게 받아들였다. 다행히 텔레비전에 대한 욕구가 크지 않은 사람이었다. 오히려 친정 엄마가 혼수에서 티브이가 빠지면 어쩌냐고 난리였다.

요새도 우린 가끔 친정에 가면 텔레비전 앞에서 망부석이 된다. 남편도 친정에 가면 리모컨부터 찾는다. 유튜브에서 짤로만 봤던 예능이나 드라마가 나오면 특히 그렇다. '놀면 뭐하니'도 궁금하고, '유퀴즈'도 보고 싶고, '우리들의 블루스'도 재미있다. 텔레비전을 보지 않으니 새로 나온 광고도 잘 모른다. 광고 시간까지 흥미진진하게 시청한다. '아, 이 광고 모델이 바뀌었구나', '이 광고는 무슨 광고야?' 하고 난리가 난다. 그럼 엄마는 "강서방, 이럴 거면 티브이 하나 사소, 돈 없으면 내가 보태주까? 가시나 저거 들어가것다, 들어가것어! 뭐 이래 놓고 티브이를 안 산다고."하고 핀잔을 주신다. "아니야!!! 내가 티브이 싫어서 안 산대? 돈이 없어서 못 산대? 너무 좋아서, 이럴까 봐 못 사는 거지. 안 사요, 안 사!" 이러면서도 내 눈은 텔레비전에 딱 붙어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내 의지력을 믿지 않는다. 텔레비전을 많이 보는 내가 싫다면, 텔레비전을 보지 않겠다는 약속 같은 걸 하기보단 집에 텔레비전을 들이지 않는 편이 깔끔하다. 우리집엔 그래서 텔레비전은 없지만, 우린 각자 폰이 있다. 당연히 넷플릭스는 가입하지 않았지만, 유튜브는 깔려 있다. 그래서 나는 집에선 거의 휴대전화를 꺼 놓고 생활한다. 막상 전화기를 꺼 두니, 뭔가 위급한 상황일 때 내가 연락이 안 되면 어쩌지, 불안했다. 남편과 상의해 저렴한 2G 폰을 하나 들여 집전화기로 쓰고 있다. 가족들이 번호를 알고 있어 내가 폰을 꺼놓아도 급할 땐 연락이 가능하다. 그러니 언제든 집중하고 싶을 때면 내 폰은 끈다. 가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날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잘 지켜진다. 두세 시간에 한 번씩 전화기를 켜 확인해도 큰 지장이 없다. 오히려 갑자기 나와 놀자는 친구들의 메시지에 답을 못해 내 시간이 늘어나는 장점 아닌 장점도 있다. 주변 사람들도 이쯤 되면 나와의 약속은 미리 한다. 갑자기 불러내는 일은 잘 없다. '집에선 폰을 잘 안보더라'하고 그래도 전화를 해봤는데 안 받으면 포기한다. 대신 부재중 전화에는 꼭 답을 한다. 나중에라도 연락은 오더라 싶어 모두들 이제 그러려니 한다. 물론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나도 휴직 중이고 가을엔 복직 예정이다. 그땐 휴대전화 사용 장소를 지정해 볼 생각이다. 주방 한쪽에서 서서만 잠시 휴대전화를 쓸 수 있게 하면, 소파에 누워 유튜브를 한없이 보는 일은 없지 않을까. 그래도 안된다면, 유튜브를 삭제해야겠지.


"난 진지하고 치열하게 나를 성장시키는 중이야. 가끔은 버겁기도 하지만, 내가 이렇게 해내고 있다는 게 기뻐. 수고가 많다. 잘하고 있어."


물론 사람들이 항상 나처럼 이렇게 살 순 없다. 그래야 할 필요도 없고. 하지만 당신이 변화를 원한다면, 삶을 바꾸고 싶다면, 책을 좀 더 읽고 싶다면, 휴대전화나 텔레비전의 노예라고 생각된다면, 당신의 의지를 믿기보다는 환경 설정에 노력을 기울여라. 의지는 생각보다 힘이 없다. 텔레비전을 없애거나 다른 방으로 옮기고, 휴대전화 보관함을 만들어 그곳에 폰을 놓고, 자신의 주변에 책들을 배치하라. 진지하게 변화를 꿈꾼다면 문제가 되는 그 앱을 삭제하라. 당신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들을 당장 치워라. 당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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