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집에 돌아와서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 앉아 휴대전화로 하루에도 여러 번 아이 사진과 동영상을 돌려봤다. 나는 침실 침대에 남편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지만, 어차피 둘 다 보고 있는 건 같았다. 그러다 한 사람이 이야기를 꺼내면 다른 사람이 답을 하면서 한참은 아이 이야기를 하곤 했다.
만약 아이를 낳고 한 달 정도는 보지 않으면서 찍어둔 영상이나 사진만 봐야 한다면 당신은 어떨까? 우린 우리의 아이가 될 아이를 겨우 삼십 여분 보고 돌아 나온 후였다. 사실 그 순간엔 아이를 만났다는 감동에 벅차서 크게 눈에 들어오는 것도 없었다. 그냥 내 눈에 아이는 하얗고 동글동글한 아기였다. 그냥 내 아기였다. 아기의 이목구비보다는 아기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는 느낌, 엉덩이를 받치는 느낌, 남편에게 안겨서 나를 쳐다보던 눈빛 같은 것들이 나에겐 더 중요했다.
집에 돌아와 아기 사진을 보니, 복지사님 말대로 연어반이 꽤 크게 있었다. 붉고 큰 반점은 나중엔 아이의 머리카락으로 충분히 가려질 듯했지만, 현재로선 머리숱이 거의 없었다. 뱃속에서 십 개월 동안 겨우 그만큼을 길렀다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솜털이라고 봐야 할 수준의 머리카락이 보송보송하게 올라와 있었다. 아기를 제대로 본 기억이 별로 없어 아기는 모두 그런 줄 알았는데, 사진을 찾아보니 새까맣게 머리가 나 태어나는 아기도 많았다. 머리숱이 적은 경우는 있어도 우리 아이는 상위 1% 수준의 대머리였다. 딸아이인데 또 그게 걱정돼 한참을 ‘아기 머리숱’ 등을 검색했던 기억이 난다.
쌍꺼풀이 없는 눈도 너무 예뻤다. 우린 둘 다 쌍꺼풀이 진한 편인데, 복지사님이 왜 남편 눈을 닮았다고 했는지 의아했다. 첫날은 정신없어 쌍꺼풀이 없는지도 몰랐었는데, 집에 와서 보니 그제야 쌍꺼풀 없는 큰 눈이 눈에 들어왔다. 남편은 나중에 쌍꺼풀 수술은 해줘야겠다 했고 난 그 수술을 반대했다. 평소 쌍꺼풀 없는 큰 눈을 가진 김고은 배우를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게 이 눈은 돈 주고도 못 사는 귀한 눈이었다.
아이가 앞에 없으니, 아이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고 수다를 떠는 수밖에 없는 게 아쉬웠다. 지금쯤은 뭘 하고 있을지, 밥은 잘 먹는지, 잠은 잘 잤을지, 똥은 잘 누는지 모든 게 궁금했다.
그때 아이의 사진을 지인들에게 보여주면 모두가 칭찬 일색이었다. 물론 우리 딸이 하얗고 동글동글하니 이쁘기도 했지만(자랑 맞다.), 다들 우리의 입양을 응원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아이가 실제로 지금 있는 것도 아니고, 사진만 두고 이야기를 하자니, 조금 답답한 마음도 있었다. 진짜 보면 더 귀여운데 동영상에는 그 사랑스러움이 다 담기지 않았다. 그런데 또 상대가 칭찬 일색이면 괜히 벌써 팔불출이 된 것 같아 내 딴엔 겸손을 떤다고,
“그래도 쌍꺼풀이 없어.”
“머리는 거의 대머리 수준이야.”
“목 뒤로 붉은 반점이 크게 있더라고.”
대부분 이 세 가지 중 하나를 골라 말했었다. 지인들은 별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고, 지금도 충분히 예쁘다고 말해주고 넘어가곤 했다. 그럼 금세 나도 '그지, 그지?' 하면서 킥킥대고, 쌍꺼풀 없는 게 대세라는 둥, 애기 때 머리가 없어도 나중엔 다 자라더라는 둥, 반점은 머리에 감춰질 것 같다는 둥 내 나름대로 답변을 내놓고 다시 사진을 보고 팔불출이 되어 쫑알거렸다. 당시 내 지인들은 난임에 고생하다 이제 아이를 갖게 되어 신이 나 있는 내 모습을 참 좋아해 줬다.
그런데 어떤 지인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내가 아이 흠을 잡는 것 같아 불편한 건지, 내가 입양을 취소할까 걱정이 드는 건지, 괜히 열을 내서 나를 당황하게 했다. 그들은 내가 아이를 무조건 천사처럼 예쁘고, 사랑스럽다고 해야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아이를 두고 나는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였을까? 그때는 나도 생각지 못했던 상대의 반응에 당황해서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었는데, 그게 좀 아쉽다. 지금 같으면 능숙하게 답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자녀들의 외모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자주 듣는다. 아이에 대해 산후조리원에서부터 온 가족들이 한 마디씩 한다. 물론 대부분은 인물이 좋다고 칭찬을 하지만 가끔 솔직한 가족들은 아이들의 외모를 정확하게 지적해내기도 한다. 그게 부모 당사자일 때도 있다. 모두들 아이를 예뻐하지만 연예인을 시킬 만큼 미남, 미녀는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마냥 내 아들이 세상에서 가장 잘생겼다거나, 내 딸이 흠잡을 것 없이 예쁘다고 말하는 사람은 오히려 드물다.
아이들은 다 다르게 생겼다. 그래서 더욱 사랑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우리 부모들은 모두 내 아이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역시 나를 닮았어야 했는데”나 “역시 아빠(엄마)를 닮았어야 했는데” 같은 농담이 있다. 그리고 조금 심한 경우, 눈이나 코가 못나서 성형수술을 해줘야 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농담도 자주 한다. 그 갓난아기를 두고서 말이다. 우리는 그들이 아이의 외모를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해서, 아이를 그만큼 사랑하지 않는다고 보지 않는다. 그건 그거고 내 새끼라 이쁜 거다. 내가 입양을 했다고 해서 내 아이의 외모적 단점을 말하는 것이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말을 했다고, 친자식처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은 접어 두시라. 왜 나는 그 겸손으로 하는 말 한마디도 허용될 수 없는가. 그건 그거고 나도 내 새끼라서 이쁘다. 걱정을 마시라.
딸은 여전히 머리숱이 적어 네 살이 넘었지만 머리를 아직 한 번도 자른 적이 없다. 아직은 사과 머리나 겨우 묶을 수 있을 정도다. 연어반도 여전하고, 코가 높은 편도 아니다. 더 키워봐야 알겠지만, 몸매 비율이 그리 썩 좋을 것 같지 않다. 무슨 네 살짜리를 두고 그러냐고? 동네 문화센터 발레수업을 갔는데 나도 놀랐다. 몸매 비율이 좋은 아이들은 네 살인데도 팔다리가 진짜 길쭉길쭉했다. 손과 발도 도톰해서 예쁘진 않다. 대신 내 딸의 손발은 복스럽고 귀엽다. 깨물지 않고는 못 배기지. 눈매와 입매가 예쁘고, 피부가 하얗다. 얼굴형이 예쁘고, 표정이 다양하다. 팔다리가 길진 않지만 다부지고 근육이 남다르다. 하하하. 난 내 딸이 이 세상 어떤 아이보다 예쁘고 사랑스럽다. 아이에게 단점이 없어서가 아니다. 단점도 모두 내 딸의 일부이고 난 그게 좋다. 이 당연한 걸 이렇게 말해야 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안심하는 지인들이 가끔 있다. 걱정 마시라. 나도 내 새끼라 이쁘다.
* 아쉽게도 돌이 되기 전, 딸은 쌍꺼풀이 생겼다. 모두들 더 예뻐졌다, 돈 굳었다, 쌍꺼풀이 생기니 더 닮았다고 하는데, 엄마는 아주 조금 아쉽긴 하다. 아! 김고은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