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시면서 구독해주시고, 라이킷을 보내주시는 분들 덕에 벌써 아이 선보기까지 이야기를 이어왔네요. 감사합니다. 많은 힘을 받고 있습니다. 꾸준히 힘내 적어보겠습니다.
내 딸을 만나러 가는 길. 오후 2시가 약속인데, 진작에 골목에 차를 댔다. 설레는 마음에 서두르다 보니, 일찍 도착했다. 시계를 보면서 2시가 되기만 기다렸다. 센터는 2시까지 점심시간이라고 했다. 미리 들어가면 예의가 아니었다.
아이를 만날 날을 잡아두고 설렜냐고 묻는다면, 설렜다. 기뻤다. 감사했다. 물론이다. 그리고 동시에, 불안했다. 이렇게 입양을 한다고 해놓고, 막상 아이를 만났는데 '이건 아니다.' 싶으면 어쩌지? 아이가 예쁜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마음의 문제니까. 머리론 받아들여야지 해도 '아무리 생각해도, 이 아인 아닌 것 같아요.' 같은 마음이면 어쩌지? 아이를 보고도 마음이 가지 않으면, 그땐 어떡하지? 말 그대로 '삘 feel'이 안 오면 어쩌지? 그럼 되돌아 나와야 하는 걸까? 그래도 내게 주어진 아이니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그래놓고 살면서 계속 아닌 것 같으면 어쩌나? 아니라고 느껴졌다면 빨리 아니라고 말하는 게, 오히려 현명한 걸까?다른 사람들도 나같은 마음인걸까? 대부분 평온하게 한 아이를 보고 바로 입양하는 것 같은데 그게 말이 되나?공산주의도 아니고, 조선시대 결혼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맺어지는 게 과연 될까?
대부분의 입양 부모들이 처음 만난 아이를 자녀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물론, 우리가 원한다면 다음 기회가 올 수 있다. 그럼 그 아인 다른 부모를 만나게 될 것이다. 기다리는 가정이 많다니 입양이 안되지야 않겠지. 그래도 큰 인연이 빗껴가는 셈이다. 그리고 아이를 두고 거절하는 일은 아이를 고르는 느낌이 들어 더욱 해서는 안 될 일로 느껴졌다. 참 어려운 일이다. 입양을 준비하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첫 아이를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첫 상담 후 신랑과 약속했었다. 그냥 그 아이가 우리 아이인 걸로. 그런데, 혹시 내 마음에 '아무래도 아닌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면 어쩌나, 계속 불안했다. 두려웠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냐고, 비난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정말 어떤 아이여도 사랑스러울까? 자신할 수 있나?
2시가 되자마자 센터에 들어갔다. 복지사님이 '아기는 벌써 와 있어요.'라며 방문을 가리켰다. 저 문을 열면 아이를 만난다. '아, 어떡해.'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지난 5년 동안 내 아기는 항상 내 상상 속에 있었다. 내 꿈 속이나, 내 이야기 속에만 존재했다. 그런 내 상상 속의 아기는 이제 현실이 된다. 이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내 아기도 숨을 쉬고, 내 아기도 운다. 평생 기다리던 하나님이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보라한다면 이런 기분일까?(tmi지만, 나는 무교다) 뭔가 간절히 바라던 그것이 현실로 존재한다는 것을 직면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방문까지 걸어가고, 문을 젖히고, 아기를 안고 있는 위탁 어머님과 눈이 마주쳤다. 위탁 어머님이 몸을 돌려 아기를 우리에게 보인다. 아주 작고, 작고, 작은 아기였다. 그래, 아기였다. 불안과 두려움이 한순간 녹았다. 그래, 너였다. 고맙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딸이 되어줘서 고맙다. 이렇게 건강하게 태어나줘서 고맙다. 날 기다려줘서 고맙다.
복지사님이 아기를 건네받고, 위탁 어머님은 방을 나가셨다. 복지사님이 안은 아기를 가만히 들여다봤다. 아기는 너무, 아기 같았다. 이 말이 우스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너무 아기였다. 목 뒤로 붉은 얼룩이 있었는데, 연어반이라고 했다. 아픈 건 아니고, 점 같은 거라고 했다. 붉은 꽃잎을 목에 두른 듯했다. 머리숱이 거의 없었다. 눈썹도 연하고. 특별히 예쁜 얼굴은 아니었지만, 내 눈엔 예뻐 보였다. 복지사님이 '한 번 안아보시겠어요?' 하셨다. 내가 아기를 받아 안아들자, 남편의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이 모습을 얼마나 상상했을까? 순간 감정이 복받쳐온다.
"우리 남편은 오는 차에서도 저러고 울었어요."
너무 진지해진 분위기가 어색해 괜스레 복지사님께 웃으며 말했다. 지금도 아이러니한데 난 이 날 울지 않았다. 지금 글을 쓰면서는 펑펑 울면서 그날은 왜 울지 않았을까? 아마도 기쁜 날이었으니까, 울지 않았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기는 아무 저항 없이 내 품에 얌전히 안겨 있었다. 너무 가만히 있어서 평온하기까지 했다. 남편은 내가 아기를 안은 모습을 휴대전화로 찍고, 동영상을 남겼다. 당장 아기를 데려갈 순 없었다. 아기가 우리 품에 올 때까지는 사진밖에 도리가 없다. 첫 만남의 기록이 소중하기도 했다. 남편이 아기를 안고 엉거주춤하는 모습에 또 웃음이 터졌다. 복지사님이 아기와 시간을 보내시라며, 필요하면 부르시면 된다고 하고 잠시 자리를 뜨셨다. 그 작은 방에 우리만 남겨졌다. 처음엔 복지사님이 나가시는 게 왠지 불안했지만 곧 편안해졌다. 남편이 또 울음이 터졌다. "우리 아기다. 우리 아기." 이렇게 우리는 가족이 될 것이다.
아기를 쳐다보고 울고, 웃고, 또 사진을 찍고, 그러다 아기의 울음이 터졌다. 어찌할 바를 몰라 아쉽지만 밖에 도움을 요청했다. 복지사님이 다시 들어오시고, 아기는 곧 복지사님 품에서 잠들었다. 잠든 아기는 위탁부모님과 돌아갔다. 위탁어머니께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는데 잠시 민망해졌다. 이제껏 아이를 돌본 건 위탁 어머님인데, 오늘 잠시 보고 그새 내 아이인 듯 말하는 내가 좀 우습다싶었다.
아이를 보내고 복지사님께 이 아이를 입양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 후 아이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빠짐없이 들을 수 있었다. 이날 우린 복지사님에게 내 딸의 친생부모에 대한 이야기와 건강 이력을 들었다.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지켜줘서 감사하다.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서 고맙다. 아이를 잘 보살펴줘서 감사하다. 우리에게 안전하게 보내줘서 감사하다. 세상에 이렇게 큰 감사가 내 삶에 들어오게 될 줄이야. 모든 이야기를 듣고 우리 부부는 친생모뿐 아니라 정말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 아이가 지켜졌다는 걸 느꼈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우리 품에 안전하게 올 때까지 모두가 아이를 최선을 다해 지키고 계셨다. 혹시 위탁 어머님이 먹이시는 분유가 좋지 않으면 고급 분유로 바꾸겠다 말해볼까 생각했던 게 되려 민망해졌다. 아이의 전체적 환경이 전혀 아쉽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위탁 어머니는 우리보다 육아에 능숙해 보였다. 아이는 어떤 면에서도 소홀히 다뤄지고 있지 않았다. 수많은 손들이 아이를 받쳐 들고 우리의 손에 얌전히 아이를 내려다 줄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혹시 아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나 아이에게 부족한 게 있으면 입양 결정 전까지라도 챙겨봐야겠단 마음이 금세 ‘우리가 잘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으로 옮겨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