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맞벌이 부부라 법원에서 결정이 모두 종료될 때까지는 아이를 집으로 데려올 수 없었다. 그동안 아이는 위탁 가정에서 자랄 예정이었다. 친정엄마가 계셨지만, 조부모가 대신 양육하는 것도 기관은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입양 전제 위탁을 희망한다면 무조건 부모 중 한 명의 휴직 서류를 제출해야 했다.
입양 휴가라는 제도가 있었지만, 이는 입양이 모두 완료된 후에야 쓸 수 있고 기간도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위탁에는 무용지물이었다. 아이와의 선보기가 정해지는 시기가 불분명하다는 걸 감안해보면, 일의 흐름과 상관없이 갑작스럽게 휴직을 한다는 건 어려울 가능성이 더 컸다. 또 위탁은 휴직 사유에도 없어 명목이 모호했다. 육아휴직을 쓰려면 가족관계 증명서 같은 서류가 필요했다. 여러 이유로 입양 전 위탁은 우리 형편엔 맞지 않을 거라고 단정 짓고 있었다. 상황이 그러니, 아쉬운 마음을 긍정적으로나마 생각하려고 애썼다. 일단 입양 카페에 그렇게 진행하는 맞벌이 부부들이 많다는 게 큰 위로가 되었다. 또, 아무것도 모르는 나보다야 육아에 능숙한 위탁어머니께서 딸을 키워주시는 게 아이에겐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알고 포기한 부분이었는데, 막상 아이를 만나고 나니, 법원 결정까지의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노력만 하면 아이를 매주 보러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한 달에 한 번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정해져 있었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커갈 텐데 이렇게나 보지 못하고 지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휴직이 가능할지 회사에 의논이라도 해보기로 했다. 의외로 나는 6개월 휴직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다행히 일 사이의 텀이 있어 시기가 적절했다. 문의해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바로 휴직을 신청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아이를 데려와 키운다고 생각하니 정말 입양이 완료된 것처럼 들떴다. 그런데 그 감정은 곧 현실을 떠올리게 했다. 아기를 안고 쩔쩔매는 내 모습 말이다. 덜컥 겁이 났다.
“내가 갓난아기를 키울 수 있을까?”
원래 법원의 입양 결정이 끝날 때쯤이면 딸아이는 훨씬 더 커있을 예정이었다. 나는 돌 때쯤 아이를 키울 거라고 의심 없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장 육아에 아무런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도 아이를 하루라도 빨리 데려오지 못하는 현실이 당연히 아쉬운 줄로만 알았다. 근데 아니었나 보다. 선보기에서 작은 아기를 안아보니, 갓난아기를 키우는 일이 무서웠다. 법원 결정 후면 좀 커서 온다니 못 보는 게 아쉬우면서도 안심했었나 보다. 갑자기 내 마음에서는 불안이 활개를 쳤다.
‘한 달에 한 번은 너무하잖아. 애 키우고 싶던 거 아니었어? 그렇게 원했던 거잖아. 게다가 휴직도 된다잖아. 그럼 바로 데려와야지. 뭐가 걱정이야. 그렇다고 갑자기 아기를 키운다고? 내가? 아는 거 있어? 아무것도 모르잖아.’
정말 하든 지랄도 멍석 깔아 두면 안 한다고 그렇게 하고 싶던 육아였는데, 막상 ‘이제 해 봐.’ 하니 왜 갑자기 겁이 났던 걸까? 난임을 겪고 아기를 간절히 기다릴 땐 언제고 이 주저하는 꼴은 뭐란 말인가. 휴직이 안된다면 어쩌지 어젯밤 내내 걱정해놓고 말이다. 나는 난임 동지였고, 친한 동료였으며, 지금은 육아 휴직 중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가 겁이 나, 너 나한테 혼 좀 나자!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내가 너한테 그렇게 육아가 힘들다고 했었니?”
그 순간 알았다. 내가 정말 한심하게 느껴졌다. 애 키우는 게 겁난다니. 이러고도 날 엄마라고 할 수 있을까? 전화를 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세상 모든 엄마가 하는 일인데 나라고 못할 건 없지!
지금 와 생각하면 그때의 내가 부끄럽다. 나를 혼내주던 친구에게 감사를 표한다. 나는 엄마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지만 비겁했다. 겉으론 절차와 상황 탓을 하면서 속으론 갓난아기를 안기를 겁냈다. 입양 절차를 시작했었지만, 그때 난 아직 진짜 엄마는 아니었단 생각이 든다. 딸이 집에 정말 오고서야 나는 진짜 엄마가 되기 시작했다. 딸에게 분유를 타 먹이고, 잠을 재우고, 기저귀를 갈면서 나는 엄마가 되었다. 물론 나는 그 시절 딸의 법적인 엄마일 순 없었지만, 위탁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우린 이미 가족일 수 있었다. 딸이 뒤집기를 하던 순간, 두 발로 서던 순간, 첫 이유식을 먹던 순간들을 보내며 육아가 이런 것인 줄 알았다면 그런 걱정 같은 건 하지 않았을 텐데 뭘 모르니 그리도 어리석었다며 이전의 나를 비웃었다. 이젠 딸에게 내가 없던 순간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딸의 첫 4개월을 함께 하지 못한 것도 너무 아쉽기만 하다. 쪼글쪼글했을 첫 모습도, 배꼽을 떼던 순간도, 겨우 눈을 뜨던 모습도, 눈을 맞추고, 고개를 들기 시작하던 순간도 모두 놓친 것이 시리게 슬프다. 휴직이 가능해서 아이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게 너무 감사하다.
아이에게도 입양 전제 위탁은 입양될 가정에서 생활하며 입양 부모의 양육 방식에 적응하고 가정의 분위기, 식생활 등을 미리 익히는 과정이다. 보통 직장이나 학교도 적응하는 것이 어려운데 하물며 아기에게 가정이 바뀐다는 건 얼마나 힘들 일이겠는가. 딸은 집에 와서 다음 날 오전까지 분유를 먹지 않았다. 아기가 탈수가 오는 건 아닌가, 병원에 가봐야 하니 마니 온 가족이 애태웠던 그날을 떠올려본다. 겨우 백일을 지난 아기였지만, 집의 공기, 온도, 들려오는 목소리가 모두 다른 곳에서 아이가 느꼈을 공포를 생각해보면 마음이 아린다. 어려서 모르는 게 아니라, 어려서 더 두려웠을 것이다.
외부에서는 예비 입양 가정의 위탁을 입양 전 ‘사전 체험’ 정도로 인식해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아기가 선보기 이후 한 가정에 입양 절차를 모두 거쳐 입양이 완료되기까지는 대략 육 개월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우리 가정의 경우 사 개월이 걸렸다. 빠른 편이다. 1년을 꼬박 걸리는 경우도 흔치 않지만 있다.) 그동안 아기가 입양 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것은 가족의 유대감을 쌓아가는 데 매우 유리하다. 성인에게도 긴 시간인 육 개월 동안 아기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기던 아이가 걷고, 분유를 먹던 아기가 이유식을 먹는다. 그 시간을 잃는다는 것은 매우 안타깝다. 가족은 추억으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추억에는 물론 육아의 괴로움이 포함된다. 허리가 부서질 것 같은데도 배 위에 아기를 올리고 재우는 시간, 자다 깨서 분유를 타는 시간, 아픈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달리는 시간. 이 시간들이 모여 우리는 가족이 되는 것이다.
* 입양을 하고 나면, 입양에 대해 자신들도 생각해보았다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생각보다 자주 듣는다. 입양을 생각해 보았지만 다시 애를 키운다고 상상하면 막막해진다며 연장아(갓난 아이가 아닌 아이) 입양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갓난아기는 엄두가 안 나고 다섯 살쯤 된 아이면 좋겠다고들 하신다.
이미 아이를 키웠던 분이라면 다시 처음부터 아이를 키울 일이 만만치 않게 여겨지는 것이다. 입양에 뜻은 있지만 친생 자녀를 키우는 사이 부부도 나이가 들었고, 이 나이에 다시 육아라니 겁부터 나는 것이다. 이젠 나도 아이를 키우니 그 고민도 알겠다.
그래도 가능하다면 나는 갓난아이를 입양하시길 권한다. 아기 때부터 기르는 과정이 추억이 되어 아이를 단단하게 가족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연장아 입양은 연장아들에게 입양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는 좋은 생각이지만,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에 시간과 노력이 더 요구된다. 입양아의 연령은 단지 육아의 수고로움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여러모로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센터와 상담을 통해 신중하게 결정하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