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입양을 하려면 보육원에 봉사활동부터 가야 하는 게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때는 그렇게 입양이 진행되기도 했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신애라 부부도 그렇게 딸을 입양했다고 들었다. 흔히 입양이라고 하면 봉사활동을 하는데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아이가 있고, 그 아이를 입양하게 되는 스토리를 상상한다. 하지만 그런 목적으로 보육원을 찾으면 대체로 거절당하기 쉽다. '마음에 들어온 운명적인'이라는 표현이 어찌 보면 참 모호하지 않은가. 일단 봉사부터 하면서 마음에 들어온 아이를 운명적으로 만나겠다는 부부의 순수한 마음은 아이의 입장에서는 '선택받는' 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요즘 보육원에서는 입양을 전제로 한 봉사활동을 거부한다.
우리도 이 시기쯤에는 지인들에게 아기를 몇 명이나 보고 고르는 것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답을 하자면, 입양 부모는 아이를 고르지 않는다. 담당 복지사는 그 가정의 전반적인 것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한 아이를 선보게 한다. 대부분의 가정은 그 한 번의 선보기로 아이와 맺어진다. 흔하지 않지만, 선보기 과정에서 입양 부모가 아이를 거절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후, 이전과 같은 기간을 다시 기다려야만 다음 아이를 선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다음번에도 아이를 거절하게 되면 입양을 할 수 없다. 카페의 글들을 읽어보면 그런 페널티까지 고려하지 않더라도 입양부모들은 첫아이를 바로 입양하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가끔 막 카페에 가입한 사람들이 '아기를 몇 번이나 볼 수 있나요?'와 같은 질문을 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곧 첫 아이를 입양하겠다는 데 마음을 모은다. 입양은 부모와 자식으로 인연이 맺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부모들은 처음으로 만난 아기를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고를 수 없다고? 한 명만 보고 바로 정한다고?"
지인들은 아이를 생각하면 맞는 말이긴 하다고 하면서도 다들 말끝을 흐렸다. 아마 부모가 될 내 입장에서 입양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분명 나에게 유리한 제도는 아니었다. 아이를 선택하는 건, 너무 잔인하지 않냐는 내 질문에 그제야 '아, 그럴 수도 있겠네.' 하고 내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솔직히 말해, 나도 처음에 절차를 들었을 때 속으로 좀 놀랐었다. 나도 두 세명 정도의 아이는 만나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내 인생에 너무 중요한 일인데 누군가가 정해준 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불안함이 엄습했었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일이 곧 아이를 '고르는' 일이다, 더 심하게 말해 아이를 '쇼핑'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정신이 번뜩 차려졌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보면 성별과 일반적 건강상태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었다. 게다가 일반적이진 않지만 한 번의 거절의 기회가 있지 않은가. 친생 부모 중 누구도 아이를 고르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 번의 선보기로 결정되는 것이 당연한 운명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러고 보면 우리 복지사님은 내게 삼신할머니인 셈이었다. 아이들에게 부모를 만들어주는 일, 복지사라는 직업이 새삼 경이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신이 하는 일을 대리받은 느낌이랄까. 역시 복지사님은 내가 가장 잘 보여야 하는 사람인 게 확실했다. 부모님과 남편을 제외하면, 내 인생에 이렇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으니까. 하하하. 이제 그녀가 점지해준 딸아이를 만나러 갈 시간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