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감정이 이성을 압도한다.

대출 즐겁게 갚는 법

by 캐롤

"이번 달 보너스 들어온 건 대출 갚았어."

"응, 잘했어. 어느 은행 꺼 갚았어?"

"농협."

"왜 신한부터 갚지 않고?, 그게 이자가 더 쎌텐데?"




우리는 대출금이 많다. 음, 그냥 많다고 하긴 그렇고 아주 많다. 아파트를 팔면, 빛잔치를 하고 끝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크게 걱정은 하지 않는다. 대출은 갚아 나가고 있으니까, 곧 해결될 일이다.

우리는 결혼할 때 둘만의 힘으로 모든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했다. 결론적으로 신혼에 우리는 돈이 없었다. 연애시절, 남편이 직장 근처 30평대 아파트를 분양받았지만 그곳에 신혼살림을 차리는 것은 사치였다. 우리에게는 10평대 아파트가 맞춤했다. 우리는 분양 받은 30평 대 아파트를 전세 주고, 10평이나 20평대 오래된 아파트를 골라 전세로 살기로 약속했다. 그래, 약속했었다. 하지만 결혼 준비 기간과 알맞게 아파트가 지어지고, 입주자들에게 아파트를 구경시키는 날이 다가오자, 내 마음이 흔들렸다. 막상 새로 지은 아파트를 보니, 살고 싶었다. 남편이 이 아파트에 살면 한 달에 나올 이자를 알려주었지만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둘 다 맞벌이고 나쁘지 않은 벌이니까 그정도의 이자쯤은 가볍게 여겨졌다. 그냥 이 아파트에 들어가 살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대출을 떠안았다. 아주 어리석은 것을 안다. 하지만 그때 나의 경제관념은 딱 그정도였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가계부를 쓰기 시작하고나서야 내가 과분한 집에서 생활한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아파트 가격이 전체적으로 조금 내려간 시점이라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가기도 애매해졌다. 그냥 우리는 지금의 집을 만족하면서 살기로 했다. 이게 지금 우리 부부의 현실이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아주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그때의 나는 그런 결정을 했다.


어찌되었든, 그래서 우리는 빚이 많다. 대신 좋은 점은 빚을 갚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아끼고, 새로운 수입원을 갖고자 노력한다는 사실이다. 만약 빚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절약하려고 애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를 위로해본다. 여기에 대해선 많은 분들이 다른 생각이 있으시겠지만, 그런 생각은 댓글로 받는 것으로 하고. 오늘은 대출금 갚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만약 여러 개의 대출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이 중 어떤 대출을 먼저 갚아야 할까?


A. 대출액 : 1억, 이자: 4%

B. 대출액 : 5천, 이자 6%

C. 대출액 : 500만, 이자 3%

D. 대출액 : 30만, 이자 없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B를 갚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자가 가장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의 생활이라면 D를 가장 먼저 갚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 다음은 C이다.

왜 이자가 낮은 C와 D를 먼저 상환하는가? 이유는 대출액이 적기 때문이다. 더 궁극적인 이유는 '감정이 이성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이자를 상환하는 것은 감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많은 금액의 대출을 상환한다면, 단기간에 모두 상환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갚고 있고, 갚을 수 있다는 실재감이 필요하다. 갚을 큰 금액을 생각하면 이자율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것보다는 우리가 갚아서 하나의 대출 상환이 완료되었다는 성취감이 중요하다. 대출의 개수를 줄이는 것이 급선무다.

우리 부부는 이렇게 대출의 개수를 줄여나가는 것을 게임처럼 생각하기로 했다. D를 갚고 서로를 칭찬하고, C를 다 갚은 날, 우리의 절약이 성과를 거두었음을 자축한다. 그리고 나면 더 큰 B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D와 C를 잘 물리쳤으니, B도 시간이 더 걸릴 뿐, 우리는 해낼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긴다. 이를 자기효능감이라고 한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를 터득해 실천해오고 있었는데, 얼마전 남편이 고영성, 신영준의 '완벽한 공부법'이라는 책을 읽더니, '이거 자기 읽었었어?'라고 물었다. 책의 아주 초반부 '믿음' 파트에 우리의 생각과 거의 일치하는 내용이 서술되어 있었다.

미국의 유명한 재테크 전문가인 데이브 램지는 부채의 늪에 빠져 미래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 사람들에게 얼핏 보면 매우 비합리적인 부채 해결책을 제시한다. 먼저 부채 목록을 작성하게 한다. 그리고 이자에 상관없이 상환액이 적은 것부터 해결하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이는 매우 손해보는 일이다. 하지만 램지는 빛이 적은 것부터 갚으라는 것이다. 램지는 이렇게 말한다.

"재정 전문가인 나도 처음에는 항상 수학적 계산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수학적 계산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동기부여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기부여를 받으려면 초반의 성공이 중요하다"

작은 부채들을 하나씩 해결하면서 부채 항목을 지워나간다면 자신의 미래가 바뀔 수 있다는 일말의 '기대'를 품게 된다. 작은 성공이 기대를 낳는다.




우리 부부는 마음으로 이걸 느껴 실행하고 있었지만, 책의 내용을 읽고 확신을 얻었다. 많은 부부들이 하우스푸어의 삶을 살고 있고, 기약 없는 빚을 갚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의 보편적인 삶이 되어버렸다. 많은 대출을 갚는 부부들이 우리의 경험을 듣고, 대출상환에 대해 다시 고민해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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