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생과 가족계 하기
"엄마, 이번 어버이날에 갖고 싶은 거 있어요?"
"나 갖고 싶은 거 많은데? 다 사줄 수 있어?"
"뭐가 갖고 싶은데?"
나는 매년 경조사비로 나갈 돈을 특별지출로 연초에 마련해둔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같은 매거진 '2. 올해앤 부담없이 건조기를 삽니다'에 소개되어 있다. 평소에 부모님께 매달 용돈을 드리기 때문에 어버이날이나 생신에는 간단한 선물을 하고 있다.
엄마의 어버이날 선물은 20만원 정도의 선에서 정한다. 평소에 강변을 걷는 걸 즐겨하시는 엄마에게 새 운동화를 사 드릴까, 아니면 화장품을 사 드릴까 고민을 하다가 전화를 했다. 사실 엄마에게 이런 걸 묻는다고, 필요한 걸 이야기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하실 수도 있으니까.
"엄마, 이번 어버이날에 갖고 싶은 거 있어요?"
"나 갖고 싶은 거 많은데? 다 사줄 수 있어?"
"뭐가 갖고 싶은데?"
엄마는 요즘에 건조기도 갖고 싶고, 공기청정기, 인덕션도 갖고 싶으시다고 했다. 평소 갖고 싶은 게 딱히 없다고 말해오셔서 같은 대답을 예상했다. 생각지도 못한 엄마의 바람에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올해는 건조기의 해인가, 왜 남편도 엄마도 건조기를 사고 싶어 하는지.
"내가 요즘에 소녀가 되능가 갖고 싶은게 너무 많다. 니 감당도 못할틴디 끊어라."
"엄마, 감당이 안되긴 하는데, 그래도 암 것도 갖고픈 것도 없다는 것보다는 낫네. 갖고 싶은 게 있다는 건 참 좋아. 어떻게 감당할 지 고민좀 해볼게~"
퇴근길 엄마와의 전화를 끊고, 집으로 가는 길. 남편에게 무엇부터 어떻게 말해야할까, 머리를 굴린다. 엄마에게 말한대로 엄마에게 갖고 싶은 물건이 생겼다는 게 왠지 기뻤다. 가끔 '나는 이제 갖고픈 것도 없고, 먹고픈 것도 없다.' 하시면 엄마가 벌써 노인이 되어버린 것 같아 서글펐다. 무언가 갖고 싶은 게 있다는 건 삶에 의욕이 있다는 이야기니까. 결혼하지 않았다면, 일단 뭐가 어떻게 될지 따지지 않고 사드리고 봤을텐데. 결혼을 하면 내 마음대로 다 해드릴 수 없다. 이래서 주변 언니들이 결혼하기 전에 부모님께 해드리고 싶은 거 다 해드리고 시집가라고 했나보다.
남편에게 집에 와서 상황을 그대로 설명했다. 남편도 난감한 눈치였다. 어디서 갑자기 백만원만 딱 떨어지면 좋겠지만, 월급쟁이들에게 그런 일은 없다. 저녁을 준비하는 30분 정도 침묵이 흘렀다. 둘 다 머리 속에 생각이 많아진 탓일 테지.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우린 엄마에게 건조기를 사드리기로 했다. 그렇게 부피가 큰 선물을 해드린 지는 꽤 오래된 데다가, 갖고 싶은 걸 말하셨을 때 한 번은 사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건조기를 선택한 이유는 모든 것을 다 사드릴 수 없다면, 가장 큰 걸 하나 사 드리는 게 가장 만족감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우리는-고양이 털 때문에- 아이를 낳으면 곧 건조기를 살건데, 그 때 엄마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 것 같았다. 엄마에게 건조기가 필요한가, 에 대한 이야기도 해보았다. 사실 빨래가 많지도, 아이가 있지도 않으니 당장은 필요하지 않을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세탁기, 냉장고처럼 건조기도 필수 가전이 되어가는 추세다. 건조기를 오래 꿈꿔온 신랑이 경험한 바로는 건조기는 갖고 싶은 마음이 든 순간부터 빨래 너는 일이 짜증난다고도 했다. 언젠가는 엄마에게도 건조기를 사드려야 할 때가 올 것이다.
마음은 마음이고, 돈은 돈이다. 돈은 마음처럼 솟아나지 않는다. 우리는 비용을 이렇게 마련하기로 했다. 일단 우리의 어버이날과 생신 예산, 남동생의 어버이날과 생신 예산을 합치기로 했다. 이 비용은 각자가 부담 가능한 선에서 준비하기로 했다. 물론 이 돈으로는 부족하다. 나머지는 남동생과 하는 가족계에서 보태기로 했다. 일단 예산 이외의 돈은 들지 않는 셈이다. 곧바로 남동생에게 전화를 해 동의를 얻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잘 설명드려, 어버이날과 생신 선물을 합쳐 건조기를 사드리기로 했다.
우리는 예산 외의 돈을 쓰지 않고, 엄마에게 건조기를 사 드릴 수 있게 되었다. 특별한 지출이 생겼을 때, 가능하면 예산의 범위 안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애쓴다. 가족계와 같이 미리 돈을 조금씩 모아 두는 방법도 이런 경우 아주 유용하다. 동생과 남매계의 목적은 '엄마의 행복'이니까, 두 사람의 마음만 맞는다면 사용할 수 있다.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큰 돈을 효도 명목으로 내 놓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미리 조금씩 모아둔다면 크게 도움을 받는다.
남동생과 가족계를 한 지는 벌써 오 년이 되었다. 주변 동료들의 조언을 받아 시작한 것인데, 생각보다 돈이 잘 모인다. 평소에 부모님께 해드리는 보통의 일들은 각자의 사정에 맞게 알아서 챙긴다. 대신 엄마는 반년에 한 번씩 서울에 큰 병원을 가시는데, 이때 드는 비용을 여기서 제한다. 이번엔 남동생이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는데, 병원비와 차비, 식비 등을 계에서 부담했다. 하루 일을 하지 못하고, 서울까지 엄마를 모시고 다녀온 것에 대한 수고료까지는 챙겨주지 못해도 기본적인 비용은 줘야하기 때문이다. 다음 번에 내가 엄마를 모시고 다녀온다고 해도 병원비와 차비 등은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그 외 엄마도 예상하지 못한 갑자기 결정된 친구들과의 해외 여행 비용이나, 종합 건강 검진 비용 등도 여기서 해결한다. 이번에도 이 비용을 모아두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예산을 훨씬 초과하는 지출을 하고 힘들어 하거나, 선물을 아예 하지 못하고 속상했을 것이다. 미리 가족계를 해 두면 좋은 이유다.
형제나 자매가 있다면, 작게라도 가족계를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부모님에게는 늘 예상치못한 큰 지출이 들게 마련이다. 그때마다 그 비용이 각 가정의 예산을 침범하면 마음이 불편해지게 마련이다. 특히 미혼이 아니라면, 배우자에게도 마음이 쓰인다. 나도 갑작스럽게 큰 선물을 준비하게 되었지만, 우리 예산에서 무리가 되지 않도록 조정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남편의 동의를 쉽게 얻어낼 수 있었다. 부모님을 위해 미리 돈을 마련하라. 꾸준히 형제 자매와 이 문제를 논의하자. 엄마는 소중하니까♥ 엄마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