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가족은 가계부를 공유하나요?
남편과 가계부 공유하기
나는 남편에게 한 두 달에 한 번씩 가계부를 보여준다.
엑셀로 작업한 가계부를 프린트해 보여주는데, 남편은 관심 없이 보는 듯싶다가도 뜬금없이 "근데 이번 달엔 왜 화장품을 이렇게나 많이 샀어?"와 같은 질문을 해 나를 당황시킨다.
궁금한 게 당연하지 않나요?
결혼 전부터 가계부를 간간히 보여주겠다는 약속은 내가 했다. 남편은 가계부에 큰 관심이 없다. 한 두달쯤 바빠서 보여주지 않아도 신경쓰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꼭 가계부를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두 사람이(맞벌이라면) 함께 돈을 벌고 있고, 한 사람이 수입과 지출을 모두 관리한다면 적어도 일 년에 두 번, 아니면 분기별로라도 가계 상황을 말하고 서로 의논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친구들이 대부분 맞벌이를 하고, 아내가 가계를 운영하지만 가계부를 공유하는 건 내가 알기론 나뿐이다. 굳이 그런 것까지 '부부 사이에' 보여줘야 하느냐, 그냥 믿어라, 가계부는 쓰지 않는다고들 한다. 하지만 남편이 가계를 운영했다면, 나 역시 일 년에 몇 번쯤은 돈이 얼마나 모였고, 또 얼마나 쓰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을 것이다.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월급을 그대로 아내에게 내맡기는 대한민국의 남편들은 무심한 건가, 아내를 신뢰하는 건가.
엄마가 아빠에게 보낸 위로
간간히 가계부를 공유하라는 것은 친정엄마에게 배운 것이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외국 생활을 하셨다. 최소한의 생활비를 제하고 나머지 월급을 꼬박꼬박 한국에 송금했다. 엄마는 남편이 홀로 외국 생활하는 것을 꽤 안타깝게 생각하셨다. 어린 딸이 자라는 모습을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었던 아버지의 젊은 시절은 퍽 외로웠을 것이다.(요즘 영상 통화를 하면, 엄마는 그 시대에 영상통화도 없었던 것을 아쉬워 하시곤 한다.)
그래서 엄마는 절약해 생활하시고, 나머지를 모두 저축했다. 매달 편지와 함께 적금 통장 복사본을 아버지에게 보냈다. '아, 내가 번 돈이 이렇게 모이고 있구나, 내가 헛고생을 하고 있는 건 아니구나.' 하는 위로를 아버지에게 전하고 싶었다면서.
부부에게도 중간 정산이 필요하다
생활하다 보면 생각보다 쉽게 적자가 나고 우리는 큰돈을 쓰지 않는데 카드 값은 목돈으로 떨어져 나간다. 백만 원이 훌쩍 넘는 카드값을 보면서, '내가 이번 달에 무슨 짓을 한 걸까' 하며 명세서를 넘겨본다. 만원, 이만 원, 오만 원 대의 소 지출이 대부분이다. 유난히 비싼 물건을 사지도, 좋은 식당에 가지도 않아도 한 달이 모이면 이렇게 거금이 되어 내 월급을 그대로 흡수해간다. 이것이 내가 가계부 공유하기를 생각한 두 번째 이유이다.
남편들이 50대가 되면 아내에게 슬며시 묻는다. "우리 돈 얼마나 모았어?", 그리고 아내의 대답을 듣고는 다시 묻는다. "그것밖에 못 모았어?" 그 말에 아내는 화가 솟구친다. "우리가 모인 돈이 어딨어!, 다 생활비로 썼지"
아내의 화도 이해될 법하다. 그 돈이 다 어디로 갔는가? 땅으로 꺼졌는가? 모두 아이들 교육비며 식비며, 그 외 기타 등등의 말도 못 할 사소한 비용으로 다 쓰인 것이다. 정작 본인은 변변한 옷 한 벌 못 사입고, 커피값 아껴가며 살았는데 "그것밖에 못 모았어?"소리를 들으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
하지만 남편의 입장에서도 그렇다. 월급 십 원짜리 하나 안 건드리고 아내에게 월급 통장 비번에 공인인증서까지 반납하고 근 20년 넘게 살아왔는데, 명품시계 하나 손목에 걸쳐보지 못하고 좋은 차도 아직 못 몰아봤는데, 모인 돈도 없다고 하면 허망할 노릇이다. 그래서 이른바 중간정산(?)이 필요하다.
무조건 절약하자에는 한계가 있다
가계부를 공유하면 가정 경제에 대한 부부의 대화가 늘어난다. 경제는 부부에게 좋은 대화 주제이다. 그리고 보다 나은 절약 방법, 수입의 증가를 꾀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더 나은 경제상황을 만든다.
우리 부부의 경우, 남편의 식탐이 가계 경제에 큰 부담이 되기도 했다. 남편은 좋은 음식을 먹을 때 가장 행복하고 돈 버는 보람이 있다고 말한다. '오늘은 돼지갈비가 먹고 싶어, 우리 회식하러 갈래?'와 같은 말에 내가 잔소리를 하면, '내가 돈도 버는데 그거 하나 못 먹냐?'며 투덜거린다. 그럼 또 자기돈 벌어 그거 하나 사 먹는 것도 눈치 보는 남편이 괜히 짠해져서 식당으로 가게 된다. 그러다 보면 신혼부부 두 사람의 식비만 한 달에 60만 원을 넘어서게 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엥겔지수 폭발 상태이다.
그리고 월말, 가계부를 남편에게 가져가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내가 이렇게 먹나?' 하는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이 방법이 남편의 식탐을 줄이는 데 가장 큰 몫을 한다. 아무리 백번 말해봤자, 한 번 눈으로 보느니만 못하다. 백문이 불여일견. 물론 모두 줄이는 것은 힘들지만, 아무래도 몇 번은 참게 된다.
부부의 경제생활의 가장 첫걸음은 함께 경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부부는 가장 가까운 사이이지만, 돌아서면 남보다 못한 사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민감한 게 돈이다. 경제를 두고 허심 탄해 하게 논할 수 없으면서 '무조건적으로 절약'하자는 말엔 한계가 있다. 함께 보고 고민하다 보면 자연히 절약을 이야기하게 된다.
물론 부부마다 상황이 다르고, 경제규모도 다르다. 무조건 내 말을 따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적어도 '혼자 경제를 책임지고 20년이 지나면 이런 상황이 생길 수도 있겠구나'라는 고민은 해봤으면 좋겠다. '나는 아끼려는데 배우자가 낭비하니, 방법이 없어요'하는 사람도 많다. 경제상황을 모르니 막쓰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나는 나 혼자 경제권을 쥐는 것은 부담스럽다. 그건 모든 문제를 책임져야 한다는 말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함께 의논하고 고민하면서 답을 찾아가겠다고 애초에 결정한 것인지도 모른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