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망하고 황당한 죽음의 순간
나의 덜렁거림으로 물고기 한마리가 죽었다.
몸이 나른했다. 축 처졌다. 좀 자야했다. 긴 낮잠을 잤다. 저녁시간을 넘겨서야 잠에서 깼다.
"좀 잤어? 어때?"
"응, 정신없이 잤네. 약 먹었어. 낫겠지."
"내가 수조 조명은 껐어. 근데, 물고기가 왜 죽었어?"
"물고기가 죽었다고! 몇 마리나! 왜!"
"물고기 죽은 게 한 마리 있던데? 죽어서 떠낸 게 아니었어?"
수조 옆 뜰채 속 멸치만 한 녀석이 굽은 채로 꾸덕하게 말라 있었다. 혹시나 싶어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건드려보았다.
"벌써 죽었지. 내가 봤을 때 이미 죽어 있었어. 한 세 시간은 지났으니까. 뜰채로 뜰 때 같이 올라왔나 보네. 몰랐어?"
"몰랐지. 어쩌지? 미안해서."
"뭐 담엔 조심해야지."
멍하니 있다가 사체를 휴지에 돌돌 말았다. 들고 휴지통 앞에 갔다가 망설여졌다. 휴지통에 넣기도, 변기 속에 던지기도 애매했다. 뒤에 생각해보기로 하고 다시 뜰채 옆에 두었다.
서재에서 책 한 권을 들고 나와 거실에서 읽는 데 집중이 안됐다. 머리로 몇 번이고 생각하다가 벌떡 일어나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순간 이건 써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이고 그 녀석이 떠올랐다. '아, 왜 그런 거 하나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한 거야.' 그 조그마한 게 혼자 팔딱거리는 장면을 계속 상상했다. 겨우 우리 집 수조에 적응한 지 2주가량 된 작은 녀석이었다. 뜰채로 주변 부유물이나 지저분한 수초 찌꺼기를 건질 때 같이 건져진 모양이었다. 크기도 작고 투명한 녀석이라 눈에 띄지 못했나 보다. 갑자기 뜰채로 떠져서 물 밖으로 나왔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나는 얼마나 무심했던가. 한 번만 더 살펴봤으면 살릴 수 있었을 텐데. 평소 좀 무심하고 덜렁대는 편이긴 하지만, 그게 목숨 하나를 앗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 없다.
물고기들은 질병으로, 수온의 변화로 또 혹은 서로 간의 입질로 죽기도 한다. 수질에 문제가 생기면 여러 마리가 떼죽음을 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 더 배워가는 거라고도 하고. 하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물고기 한 마리쯤이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까? 사실 이런 물고기들은 수족관에서 마리당 천 원, 이천 원이면 다시 살 수 있다. 하지만, 그 물고기에게는 가장 소중한 자기 목숨 아닌가. 물고기를 키워보면, 걔들이 한 번 살아보겠다고 얼마나 애를 쓰며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는지 말이다. 그런 놈을 이런 사소한 실수로 보냈다니, 미안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미안하다는 표현이 너무 가볍지 않을까. 겨우 내 가벼운 실수로, 뜰채 안에서 죽어갔을 녀석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그 뒤 급하게 출근을 해야 했다면 정신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걸 보고서도 차분히 책을 읽을 만큼 나는 냉정하진 못하다. 심지어 물고기가 죽은 게 처음이 아닌데도 그렇다.
첫 물고기는 물고기들끼리의 싸움으로 지느러미를 잃었다. 며칠 동안 치료했는데도 서서히 죽어갔다. 그때도 꽤 맘이 아프고 짠했다. 꼬리를 쪼아댄 다른 놈이 참 밉기도 했다.-이 놈은 아직도 그 어항에서 잘 산다.- 주말이라 밖에도 안 나가고 몇 시간을 기다려 물고기가 죽는 순간을 옆에서 지켜봐 줬다. -남편이 무슨 임종을 보는거냐고 놀렸지만, 사실 남편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았을 거다.- 출근할 때마다 불안하고, 퇴근할 때마다 그 사이 죽었을까, 맘 졸였는데도 며칠을 더 살아냈다. 이제 정말 몇 시간 사이에 죽겠다 싶은데, 주말이라고 두고 놀러 나가긴 너무 미안했다. 그때도 내가 좀 유난인가 싶긴 했지만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도 그땐 내 탓이라고 자책하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은 사정이 좀 다르다. 이렇게 허망한 죽음이라니. 이렇게 난 또 몇 마리의 물고기를 죽이게 될까? 이렇게 물고기를 키우는 게 맞는 걸까? 겨우 물고기 한 마리 죽은 걸로 그래서야 어떻게 키워낼 거냐고 했다가도 마음이 좋지 않다. 난 물생활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일까?
내가 키우는 물고기들이 모두 무병장수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안다. 몇은 점프사(어항 밖으로 뛰어 떨어져 죽는 일)를 하게 될지도 모르고, 몇은 병에 걸려 죽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번처럼 어이없이 보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작은 생명이라도 스스로 키우던 것을 죽게 하고 나니 마음이 편치 않다.
오늘 아침까지도 난 내가 좋은 물 집사라고 자부했다. 아직 공부해야 할 것이 많긴 하지만, 나는 수조를 잘 관리하고 있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씻기 전 수조 앞에 앉는다. 조명을 켜고 물고기들의 유영을 살핀다. 혹시 지느러미가 다친 녀석은 없는지, 유영이 자연스럽지 않은 녀석은 없는지, 수면 위로 호흡을 가쁘게 하는 놈은 없는지 살핀다. 남편은 깨서 바로 샤워하러 가기 싫어 그냥 물고기 구경을 하는 줄 알지만 나름 세심하게 수조를 관리하는 순간이다. 밥을 주면서 먹이 반응이 느린 놈은 없는지, 어떤 놈이 늘 먹이경쟁에서 뒤지는지도 잘 챙겨본다. 어떤 놈이 어떤 놈을 괴롭히지는 않는지, 무리에서 이탈해 돌아다니는 놈이 없는지도 꼼꼼히 살핀다. 이 시간을 요즘 나의 하루 일과에서 가장 좋아한다.
무엇을 기르는 일은 즐거운 만큼 책임이 무거운 일이다. 오늘 또 한 번 그 무게를 실감했다. 물고기들이 나의 손짓 하나에도 생명이 오락가락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않겠다. 그 녀석이 용궁에서 편안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