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왜 아기가 있지?(1)

1. 내가 변한 이유

by 김나율
누가 봐도 선명한 두 줄, 안녕 화창아

임신을 하게 된 후, 정확히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에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임산부가 먹을 수 없는 음식을 찾는 것이었다.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모조리 태아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다. 회는 자주 못 먹을 것이라 진작부터 예상했지만 꽤 설득력 있게 참치와 연어는 임산부에게 좋지 않았다. 먹고 싶은 걸 참아서 생기는 스트레스보다 차라리 적은 양을 먹는 게 건강에 낫다는 주변의 말도 있었지만 인생에서 10개월은 금방 지나갈 것 같았다. ‘그까짓 물고기 안 먹고 말지’ 하며 모유 수유하는 기간까지 보태서 16개월 정도야 참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패기 넘치던 임신 5주 차 초보 임산부였다.


그러나 나에게 연어는 그까짓 물고기가 아니었다. 평소에도 입맛이 주로 없던 나는 누군가 먹고 싶은 음식을 물어볼 때마다 항상 연어초밥이라고 대답했다. 패밀리 뷔페에서 생연어를 처음 먹어본 이후 연어의 비릿하면서도 고소한 맛에 빠져 십 년 가까이 매주 한두 번은 꼭 연어를 찾았다. 자타 공인 연어 마니아였던 내가 뱃속에 아이를 품고 있다는 이유로 연어와 생이별을 해야 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임신 6주 차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먹덧을 시작했는데, 도대체 먹고 싶은 음식이라고는 우럭 회 아니면 연어초밥뿐이었다. 차선책으로 먹고 싶은 것을 겨우 떠올려내 음식을 입안에 구겨 넣고 나면 얼마 안 가 또다시 허기가 지고 울렁거렸다. 하루의 일과가 먹고 싶은 것을 생각하고, 먹고, 치우는 일의 반복이었다. 나중에 이때를 떠올리면 행복할 것이라는 사람들의 조언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되새겼지만 저 바닥에 떨어진 입맛을 달래고 달래 겨우 입안에 무언가를 넣는 일을 하루에 네다섯 번씩 해야 하는 것은 고통이었다.


특히, 너무나 먹고 싶은 음식은 정해져 있는데 먹을 수 없어 다른 음식을 생각해내는 것은

일종의 스트레스였다. 평소 쉬는 날이면 배가 고파도 늦잠을 선택하는 나였는데 조금만 배가 고프면 아기를 굶긴다는 생각에 잠자리를 헤치고 나와 음식을 찾아 먹는 나를 보며 문득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의 노예가 된 기분이었다.


이대로라면 얼굴도 모르는 아기를 미워하게 될 것 같아 의사 선생님께 여쭤보았다. 먹고 싶은 게 회뿐인데, 먹어도 되냐고. 안 되는 걸 알면서 묻는 것이 민망했지만 의사 선생님은 오히려 안심시켜주셨다.


“모범답안을 말씀드리면 회는 자제하시는 게 좋아요. 특히 연어나 참치처럼 큰 생선들은. 그런데 모범답안대로만 살면 재미없잖아요. 가끔 아기와 타협해서 조금씩 드시는 건 괜찮아요.”


의사 선생님은 꽤 길게 이야기하셨지만 나는 마지막 마디인 "괜찮아요."에 꽂혀 남편에게 눈을 반짝이며 "괜찮대!" 하고 당장 연어초밥을 먹으러 가자했다. 하지만 남편은 철저한 원칙주의자였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허락한 연어초밥을 탯줄이 생긴 이후에는 먹을 수 없었다.

나는 지금도 남편에게 이야기한다.

“다음 생에는 반드시 여자로 태어나서 임신을 꼭 경험해보길 바라.”


비단 임산부가 음식에만 제지를 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임산부들은 좀 더 자유로울 수도 있지만, 나의 경우에는 융통성이 부족한 남편과 걱정을 태산으로 안고 사는 친정식구들 덕에 아주 바른 임신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한 달에 한두 번씩 찾아가던 네일아트샵은 고사하고, 미용실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머리를 다듬는 것뿐이었다. 독단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었겠으나 주위에서 들려오는 불안과 걱정의 소리를 무시할 수 없었다.


임산부가 되고 나서 유일하게 감소된 욕구도 있다. 남편에게 치명타인 성욕이다. 식욕이나 수면욕이야 남편과는 상관없이 내가 조절하면 되는 것이기에 부부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급격하게 하락한 나의 성욕은 남편이 나의 몸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신혼에 이렇게 성욕이 없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내 남편은 성적으로 무덤덤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남편의 그것은 나의 커다란 욕구에 가려져 있던 것이었다. 파도 같던 나의 성적 욕구가 호수처럼 잔잔해지자 남편의 내재되어 있던 욕망이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임신 초기에 성욕이 솟구치는 여자들도 있다고는 하지만 정반대의 상황이었던 나는 지금까지 남편이 내 욕구를 어떻게 다 받아줬을까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렇지만 어두운 방안에 나와 남편, 둘만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호르몬 때문인지 부부관계를 자제해야 하는 임신 초기에는 말 그대로 털 끝 하나 대지 못하게 했다. 엄마가 되려고 자연스럽게 자중이 되는 건가 싶어 나 스스로 기특했지만, 남편은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 안달 난 어린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또 한 가지 내 의지로 억제하는 것도 있었다. 평소에도 폭력적이고, 잔인한 영화나 드라마를 즐겨보는 편은 아니었지만 임신을 한 이후에는 더욱 그런 매체들과 멀어지려 했다. 어찌 보면 이것 또한 자연스럽게 내 아이에게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행동의 결과일 수 있겠다. 별다른 태교를 하지 않던 내가 양심상 차마 이런 것 까지는 보여주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었을까.




내 안의 자리잡은 너의 방, 고마워 나에게 와줘서







작고 소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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