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왜 아기가 있지?(2)

2. 나는 여자인가 엄마인가

by 김나율


이 모든 변화를 견딜 수 있게 하는 힘

입덧이 서서히 줄어들면서 어느새 임신 중기에 접어들었다. 쳐다보기도 싫던 냉장고 문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열렸다 닫혔고, 온갖 군것질거리에 손을 댔다. 평소 관심도 없던 과자를 박스 째 사놓고 먹었다. 입덧이 끝나면 식욕이 왕성해진다더니 나는 다른 임산부들에 비해 입덧이 그리 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식욕은 너무나 왕성해져 버렸다. 원래 남들 밥 한 공기씩 먹을 때 반 공기만 먹고도 배가 차던 여자가 이제는 한 공기를 넘어서 남편 밥까지 뺏어먹으려 하니 남편 또한 임신의 위대함을 직접 목격하고 있었다.


입덧이 끝나자 신체가 임신 전보다 더 건강해지는 기적도 맛보았다. 집 안에만 있는 것이 갑갑하게 느껴지고, 어디로든 나가고 싶어졌다. 몸과 마음이 가뿐하니 혼자라도 어디든 나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 시간들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이웃 주민들과 영어 스터디와 독서모임을 만들어 주기적으로 만났다. 주목적이 수다인지 자기개발인지는 모호했지만,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나 육아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들을 꺼내놓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해소되었다.


임신 후기에 어떻게 변할지 모를 몸을 위해 요가도 등록해서 열심히 다녔다. 운동을 해서 인지, 나보다 배가 두 배씩 불러있는 임산부들을 보며 위안을 삼고 와서 인지 처녀 때 예상했던 것보다 요통은 심하지 않았다.


또한 임신 초기에 미뤄두었던 태교다운 태교를 시작했는데, 잠자리에 들기 전 뱃속 아기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도서관에서 육아 관련 서적은 닥치는 대로 찾아 읽었다. 나름대로 여자로서의 삶과 엄마로서의 삶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었다.


임신 20주가 지나면서는 입던 옷들도 못 입게 되었다. 억지로 잠그면 잠글 수야 있겠지만 바지 단추를 채우는 것이 답답했고, 큰 사이즈의 레깅스들도 불편하게 느껴졌다. 임부복은 임신 후기에 가서나 입게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배는 한 주가 다르게 커져갔다. 하지만 아무리 인터넷 쇼핑몰을 뒤져도 내 취향의 임부복은 찾을 수 없었고, 단조롭고 얌전한 디자인의 원피스들 뿐이었다. 몇 개월 전 출산한 지인은 계절이 겨울이라 예쁜 옷을 찾기 힘든 것 같다고 조언해주었다. 나는 봄이든 겨울이든 예쁜 옷을 입고 싶은데!


결국 가장 무난한 검은색 임부용 레깅스 몇 개와 평생 쳐다보지도 않던 단색의 펑퍼짐한 원피스 몇 벌을 구입했다. 기호에 따라 쇼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옷을 사야 하다니. 임신 초기에 염색과 네일아트를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우울했던 것보다 더 서글프고 침울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내 우울감은 아름답지 않은 임부복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주수가 늘어나면서 겉에 입는 옷뿐만 아니라 속옷 또한 새로 사 입어야 했는데 평소에도 속옷을 넉넉하게 입는 편이었던 나는 우리 외할머니 팬티보다 더 큰 팬티를 사게 되었다. 처음엔 그런 속옷들을 입는다는 것 자체가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나와 아기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기호가 아닌 필요에 따라 옷을 입게 되면서 점차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이 희미해지고, 나조차도 나를 여자가 아닌 ‘임산부’로 인식하게 되어 갈 때쯤, 유즙이 나오기 시작했다.

육안으로 보이는 첫 번째 변화였다. 유즙이 분비되기 시작하자 엄마의 몸이 되어간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출산을 하고 나면 유즙은 모유로 바뀔 것이고 처음 보는 낯선 작은 사람에게 내 양쪽 가슴을 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이것은 모성애와는 상관없는 문제였다. 그리고 겨드랑이에도 짙은 갈색 선이 생기는가 하면

엉덩이는 점점 쳐지고, 옆구리에도 살이 붙기 시작했다. 임신 관련 책에서 언급되었던 임산부 신체의 변화가 내 몸에서 온전히 일어나고 있었다. 임산부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겠지만 나는 이러한 변화들이 썩 달갑지 않았다. 신기하다기보다 불쾌했고 놀랍다기보다 신경이 거슬렸다.

아직 내 몸속에 다른 사람이 들어와 살고 있다는 것, 내 작은 배 안에 훨씬 더 작은 생명체가 자라고 있다는 것도 아직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몸의 변화는 마음의 변화보다 훨씬 빠르게 찾아왔고, 내 마음은 점점 나를 바닥으로 가라앉혔다.



하루는 변기에 앉아 볼 일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훅하고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어떤 생각의 끝에 우울감이 든 것이 아니라, 마음에 돌덩이가 '쿵' 하고 내려앉은 것처럼 우울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리고는 우울한 표정의 내 모습이 그려졌다. 밤마다 칭얼거리는 아기 때문에 잠을 포기해야 하는 나, 아기에게 모유를 주느라 젖꼭지가 헐어 연고를 바르고 있는 나, 거울에 비친 뱃살을 보며 한탄하고 있는 나.

온갖 부정적인 상황들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눈물이 났다. 임신을 하고서 흘린 첫 번째 눈물이었다. 그리고는 변기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아이를 품고 있는 사람이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 안 된다고 한 소리 들을 것이 뻔했고, 남편은 공감해주지 못할 것 같았다. 그날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우울감을 느낀 날이었다. 학교를 다닐 때든, 직장생활을 할 때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지속적으로 해야 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우울해’라고 자주 말하는 편이었지만, 실제로 우울함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어렸을 적, 가끔 불행한 기분이 든 적은 있었지만 그때의 감정과는 또 다른 감정이었다. 나는 이 우울이라는 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막막했다. 하루 종일을 우울한 기분으로 지내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을 만나 재밌는 이야기를 하면 웃기도 하고, 처음으로 태동을 느꼈을 때는 신기하면서 감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하루에 한두 번, 몇 초에서 몇 분까지 우울한 느낌은 불쑥불쑥 나를 찾아왔다. 매일 한 두 번씩 찾아오는 우울은 시간이 갈수록 두세 번이 되고, 서너 번이 되었다. 이대로는 하루 전체가 우울한 날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새로 가입한 모임에서 우울증을 앓고 계신 분을 만났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울증 약을 먹고 있는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한 번만 만나보아도 밝고 소탈한 성격처럼 보였다. 하지만 첫 모임에서 자신이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고, 최근에는 불면증까지 겹쳐서

매우 힘들게 살고 계시는 중이라 하셨다. 나는 모임을 마치고 그분께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산후우울증은 많이 들어봤지만 산전에도 우울증이 올 수 있냐고.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우울이 맞냐고.

그분은 약을 복용할 만큼의 우울증까지는 아니지만 임신 중에 느낄 수 있는 우울감으로 보인다고 하셨다. 그분은 대학에서 상담을 전공하셨고, 병원에서 우울증으로 상담을 받고 계시기에 어느 정도 신빙성 있는 대답이었다. 그리고 덧붙여 그분은 우울감을 알아차리고, 해결하려고 고민하는 것 자체가 좋은 징조라고 하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모르고 더 깊은 우울감에 빠져들다 우울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며. 나는 그날 집으로 돌아와 우울과 관련된 책을 모조리 찾아보았다. 지금의 내 증상을 회복시켜줄 수 있는 책이 있는지,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는지 등등 임신 초반에 육아서적을 뒤적거리듯 우울이라는 감정을 다루고 있는 책들을 찾느라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집 주변 도서관에서 관심 있게 봐 둔 책 5권 정도를 빌리고 하나씩 읽기 시작했다.


나보다 더 심한 증상을 가진 사람들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내가 너무 설레발친 것이었나 약간 부끄럽기도 하고, 산전 우울감이라는 놈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분명 축복받고, 축하받을 일이지만 자세히 시간을 내어 들여다봤을 때, 몸과 정신, 마음 등 나를 이루고 있는 세포 하나하나까지 변화를 겪는 과정은 마냥 기쁜 마음으로만 해낼 수 없는 것이었다. 특히 ‘나’라는 사람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주변에서 아무리 괜찮다 위로해도 해결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나는 차라리 기존의 나를 발전시켜 새로운 나를 창조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기존의 나보다 좀 더 성숙하고, 너그럽고, 이해심 많은 사람으로. 그렇게 엄마가 되는 준비를 하는 거라고 믿기로 했다. 마음을 고쳐먹자 내 몸의 변화들도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배가 불러오고, 살이 찌고, 임신선이 생기는 등 임산부로서 당연히, 누구나 겪는 변화이고 그것들이 나를 성숙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출산을 하고 나서도 살이 빠지지 않으면 어쩌나, 임신 후기에 가서 튼살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들은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로 걱정하며 시간을 보내기에는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내 몸이 은연중에 ‘너 때문에 살이 쪘다, 너 때문에 튼살이 생겼다’라고 여길 것 같아 아예 그런 생각은 접어두기로 했다. 대신 살이 무방비 상태로 찌는 것을 막기 위해 덜 먹고 많이 움직이며, 튼살을 예방하기 위해 샤워 후 크림과 오일을 듬뿍 바르는 것을 선택했다.


그렇게 나의 임신 중기는 잠잠해진 정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후에도 문득 우울감이 느껴졌지만 그때마다 스스로 ‘괜찮다’고 격려하며 지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임신 후기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상상도 못 한 채.



네 덕분이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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