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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by 단미

조만간 부고 소식이 또 들려올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올해만 벌써 네번 째다. 작년 받은 부고는 기억조차 희미한 먼 친척이나 남이었는데, 올해 돌아가신 분들은 추억 한 조각씩 남겨주신터라 기분이 더 묘하다. 이제 하늘 아래 그 분들과 함께 있지 않다는 현실도 낯설기만 하다.


부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와 상관없어 보이던 죽음이 성큼 다가온다. 나도 이제 죽을 때를 대비해야하나 싶지만 일상의 소란과 분주함으로 금새 잊고 만다. 지자체에서 일 년에 두어 번씩 웰다잉 프로그램 참가자 모집 문자가 온다. 문자를 받을 때마다 또다시 생각한다. 나름대로 차근차근 준비는 해야하는건 아닐까.


사고도 많고 묻지마 범죄도 많아져서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세상이니 유서를 미리 써놓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내 물건은 어떻게 처리해주고 온라인 세상에 남긴 내 흔적은 어느 수준으로 남겨주길 바라는지 매뉴얼을 만들어둔다든가 하는 내용을 담아서. 아, 내게 따뜻함을 보여준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지.


그렇지만 그 모든 것에 앞서 아직 지구에 발을 딛은 채 먹고 마시며 현실을 사는 내가 집중해야하는 건 죽음이 아니라 '바로 지금'이다. 인생은 고통과 괴로움의 연속이고 그 끝은 죽음이라는 장치로 해방을 맞이하지만 죽음에 이르러 눈 감을 때 나는 행복한 기억으로 떠나고 싶기 때문이다.


신해철님은 1989년 발매된 무한궤도 앨범 타이틀 곡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에서 이렇게 묻는다.


세월이 흘러가고 /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 대답할 수 있나 /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


나는 마흔 중반 살아온 내 삶을 충분히 후회했고 여전히 매일 크고 작은 후회를 되풀이한다. 그렇다고 죽을 때마저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후회보다 더 큰 크기로 행복을 만들어가고, 그 기억으로 눈감고 싶다.


비 올때 나는 흙냄새, 아침마다 들리는 맑고 높은 새소리, 여름에 유난히 더 진한 노을, 바람쐬고 싶을 때 차창을 열고 달리던 영종대교, 비 오는 날 테라스에서 남편과 끓여먹던 라면, 만남이 늘 설레는 우리 독서모임, 호기심을 채워주던 많은 책, 글쓰기 멤버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이 글... 모두 다 나의 행복이다. 그래서 아직 유서는 안 썼지만 내일 죽어도 아쉽지 않다. 이미 충분히 행복했고 그 기억으로 충만하기에.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힘든 세상이었지만 잘 놀다간다고 웃으며 안녕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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