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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과 중년에 단짝이 될 확률

by 단미

"와, 우리 이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도 갔겠다."


이른 저녁에 스타벅스에서 커피와 베이커리로 간단하게 식사를 하며 책 읽고 글쓰다 나온 시각 밤 열시. 나는 아침부터 끙끙대며 붙잡고 있던 책 리뷰를 완성한 참이었고 맞은 편에 앉은 그녀는 그날 분량의 책읽기와 영어 공부까지 마친 상태였다. 뿌듯함이 담긴 발걸음으로 주차장에 들어선 우리는 감히 서울대를 입에 올리며 낄낄 거렸다.


사실 우리는 아침 시간에도 함께 만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각자 볼일 보러 잠깐 헤어지고 해지기 전 다시 만난거였다. 상황이 허락될 때 편하게 만나고 각자 스케줄에 따라 흩어지곤 하는 우리는 독서모임 친구다.


2024년 4월에 동네 어머니들 대상으로 작은 독서 모임을 하나 만들었는데 뒤늦게 어떤 분이 참여의사를 밝혀왔다. 독서 모임 단톡방으로 초대를 하고 간단하게 소개를 듣는데 카톡방에 내 이름이 적혀있었다. 단톡방에선 닉네임을 쓰는데 왜 내이름이 나왔는지 어리둥절한 것도 잠시,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분의 소개란 걸 알아차렸다. 심지어 성씨 마저도 같았다.


워낙 흔한 성과 이름인 탓에 자기 소개를 하면 내 주변에도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두어 명 있네, 첫사랑이 그 이름이었네 라는 레파토리를 늘 겪는다. 그럼에도 한 모임에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는 건 초등학교 이후 처음이어서 조금 놀랐다. 게다가 그녀는 우리집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건물에 산다. 이런 인연이 있나!


가까운 곳에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산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한데 우리의 인연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독서모임은 월 1회라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게 전부지만 한 동네 사는 아줌마인 우리는 서로 식재료를 나누고 식사 초대도 하고 산책도 하며 가까워졌다.


흔히 나이 들면 친구 사귀기 어렵다고 한다. 있는 친구마저 줄어드는 마당에 새로운 친구가 웬말인가. 중년이 되면 삶을 사는 방식, 가치관 등이 정립되어 웬만큼 비슷하지 않으면 가까워지기 어렵다. 우리는 어떻게 친해진걸까.


독서모임을 한다는 건 책을 읽는다는 뜻이다. 책이라는 공통분모는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하다. 그렇게 책에서 출발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세상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며 어떤 태도로 사는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우리 사이의 거리를 좁혀도 되는지 어떤지 감이 온다.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서로 상대방을 향한 긍정의 신호를 찾으면 한 발자국씩 더 가까워진다.


그렇게 우리는 천천히 친해졌고 더 이상 서로를 경계하지 않아도 될 만큼 가까워지게 되자 나를 신뢰하는 누군가가 생겼다는 사실이 기뻤다. 나는 어릴 때부터 친구가 거의 없었고 그 원인이 나에게 있는 걸 잘 알기에 이제는 내가 함께 어울려도 좋을 만큼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어서다.


그런데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인지, 스치듯 던지는 말과 그녀가 쓴 글에서 추정해보건데 그녀도 이전에 비해 훨씬 여유와 부드러움을 갖춘 성숙한 어른이 된 모양이다.


어쩌면 그이와 내가 이십 대 무렵 만났다면 친구가 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사회 생활, 결혼, 육아 등 삶의 마디마다 걸쳐있는 어려움을 만나 상처입고 아물기를 반복하다 그렇게 얻은 지혜와 너그러움을 갖춘 지금 이 나이가 되었기에 가까워질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아침 여덟시가 되기 전 벌써 집청소를 싹 해두고 남은 시간은 독서와 영어공부, 운동과 글쓰기에 할애하는 그녀의 부지런함은 나를 늘 긴장시킨다. 내 글에 꼬박꼬박 정성어린 댓글을 달아주는 독자이기도 한 그녀는 내 덕분에 글쓰기 세계를 만났고 이 곳을 향한 끈을 놓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며 동기부여를 해주는 친구가 되었다. 지금 내 삶이 즐거운 이유에는 이 건강한 관계가 일정 부분 차지한다.


우리 오래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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