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람은 벌 받고, 착한 사람은 성공하는 이야기를 좋아했기에
Giver(기버) : 받은 것보다 더 많이 주기를 좋아하는 사람 (책 '기브 앤 테이크' by 애덤그랜트)
누군가 좋아하는 영화의 장르를 물어보면 항상 'SF'라고 답했었다. 화면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멋진 특수효과, 미지의 세계라는 신비함이 있는 우주에서의 이야기. 다들 좋아하는 이유는 다르지만 나에겐 영화의 마지막이 항상 '권선징악'으로 마무리된다는 점이 좋았더랬다. 착한 사람은 왜 꼴찌가 되어야 하는 건지 영화 내내 갖고 있던 그 답답함을 마지막에 화려한 특수효과와 뻥 터뜨려버리는 시원함도 좋았다. 결국엔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이로운 세상'이 된다는 안정감도 긴긴 여운으로 남았다.
07학번, 나이는 MZ지만 실상은 MZ 같지 않은 회사의 나름 꼰대 라떼파. 나의 18살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의 장래희망엔 쇼핑호스트가 적혀있었다. ‘밝고 명랑하여 학급일에 참여도가 높고 순발력이 뛰어나 쇼핑호스트의 자질이 보임.’이라는 담임 선생님이 적어주신 글귀는 쇼핑호스트 면접날 카메라 앞에서 자랑스레 생기부를 내보이며 흔들 수 있던 무기가 되기도 했다.
쇼핑호스트란 직업을 생활기록부 장래희망에 적은 이유는 단순했다. 그때 막 떠오르는 새로운 직업으로 뉴스에 자주 나왔는데 생각해 보니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게 담겨있는 직업이기 때문이었다. 좋다고 느끼는 상품을 TV라는 채널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할 수 있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는 공동구매의 효과로 좋은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게 할 수 있다니! (심지어 나는 새 물건을 마음껏 테스트해 볼 수도 있잖아? 이런 좋은 직업이!)
전업주부셨던 엄마와 달리 결혼해서도 아이를 낳고도 일을 하고 싶던 10대의 나는, 여자로서 사회에서 일을 할 때 시간과 경험이 쌓일수록 오롯이 내 것으로 가져올 수 있다는 쇼호스트의 직업도 마음에 들었다. 보통은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고 사회와 단절된 여성의 삶을 살아가는데 저 직업을 가지면 내가 보낸 시간과 노하우가 다 내 것이 되어서 나이가 들어도 큰 힘이 될 것 같단 막연한 생각을 했다. (방송 시간 별로 출퇴근하기에 육아하기에도 일반 직장인보다 자유롭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10대의 난 애늙은이였던 걸까...)
무튼 그 정도로 쇼호스트라는 직업이 생소할 시기라, 장래희망이 쇼호스트라고 말하면 '그건 무슨 쇼 진행을 하는 MC니?'라고 묻는 분도 계셨기에 쇼핑호스트라는 명칭으로 고민해서 생활기록부에 적어 냈던 기억이 있다. (실제로는 회사마다 그냥 부르는 명칭이 다르다고 보면 된다.)
뼛속까지 파워 J성향의 나는 인생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내가 꿈꾼 20대, 30대, 엄마가 된 나, 할머니가 된 나. (당시엔 60세까지 적었던 것 같은데 언제 인생 100세 시대가 된 거지 놀랍다.) 가장 먼저 단기적 목표 달성을 위해 쇼호스트가 되겠다고 다짐한 나는, 이 직업이 TV를 통해 보이는 마케터이자 영업인이라 생각해서 경영학과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은 없어진 수시 1학기에 5개 학교를 모두 다 경영학과로 지원했다. 내가 유일하게 합격한 학교의 전형은 1차는 내신, 2차는 적성검사, 3차는 영어와 국어논술 면접으로 이루어졌는데 그때 3분의 교수님과 면접을 볼 때도 당돌하게 쇼호스트가 되고 싶다며 지원동기를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채미학생은 왜 우리 학교, 우리 학과에 지원하나요?"
첫 번째는 00 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님들이 훌륭하시단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고요, 두 번째는... 제 장래희망이 '쇼핑호스트'인데요. TV 홈쇼핑에서 물건을 파는 쇼핑호스트는 제 생각에 방송인이자 마케터라고 생각합니다. 방송경력은 제가 학교를 다니며 채워나갈 수 있기에, 마케팅 적인 부분을 학교에서 제대로 잘 채우고 싶어서 이 경영학과에 지원했습니다.
이미 예상한 질문이었고, 내 방 책장에 내가 지원한 학교의 교수님들 사진을 실제 얼굴 크기로 출력한 뒤에 붙여놓고 그 앞에서 매일 연습해서인지 긴장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쿵쾅거리는 순간이었다. 이 짧은 면접시간 동안 교수님들은 어린 내가 giver가 되고 싶음을 알지는 못하셨겠지만,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좋은 걸 함께 나누고 싶다는 내 마음이 전달되었던 건지 8,444명이 지원한 경영학과에서 30명을 뽑는데, 6등으로 합격하는 기쁨을 안았고 무더운 8월 여름, 수능도 보지 않고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내가 세운 인생 계획대로 차근차근히 잘 밟아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