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가기 위해 머리를 감고 있다.
그러던 와중 아빠(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지만 달리 지칭할 표현이 없다.)가 술에 잔뜩 취한 채로
아직도 학교를 안 갔냐며 머리끄덩이를 잡고 폭력을 행사한다.
'아. 또 시작이구나'
그 시절 나는 궁금했고 지금도 궁금하다.
이 사람은 돈도 벌지 않고 많은 연세의 할아버지가 막노동을 해서 버는 돈으로 입에 풀칠하며 얹혀사는 주제에 뭐가 그리 당당하고 뻔뻔하게 집을 휘젓고 다닐 수 있었을까?
눈앞에서 생생한 후안무치를 보자니 웃음이 나온다.
나에게만 폭력을 행사하느냐? 그것도 아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누구도 예외는 없다. 술을 처먹었으니 인간이 아니라 개가 되셨으니까
술이 깨고 난 뒤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말로 다 해결되는 일이었을 테니까 하하.
왕따인 나에게는 친구가 없다는 사실보다 엄마의 챙김을 받는 아이들과 나에게서 외관으로부터도 분명히 다른 점이 있음이 체감되는 것과 엄마가 그립다는 것이 더 괴로웠고
TV에서 아빠의 직업이 부끄럽다며 신파를 찍는 드라마를 볼 때도
아빠가 적어도 일을 한다는 그 자체가 부럽고 괴로웠다.
왜 그리도 수많은 남들에게 당연한 일들이 그 인간에게는 당연하지 않을까?
사람이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하다. 돈은 벌어야 하는 것이지 벌지 않고 쓰기만 할 순 없다.
재벌이 아닌 이상에야.
우리 집은 나무토대로 만들어진 일제식 집이었고, 기초수급자에 월세로 근근이 사는 집이었다.
보통 개미와 바퀴벌레가 같이 나오는 일은 없다고들 하지만
이 집은 나무로 된 집이라 그런지 바퀴벌레와 개미가 동시에 출현하는 것은 물론
불을 껐다 켜기만 해도 벌레들이 득실거리다 사라지는 게 늘 보였고
자다가도 얼굴 위로 벌레들이 지나가서 깨는 게 다반사였다.
특히 라면을 끓이는데 라면 물에 개미가 둥둥 떠다녔던 광경이 잊히지가 않는다.
이게 누군가에게 쉴 수 있는 공간인 '집'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큰 병이 걸린 사람도 아니고 너무나 멀쩡한 몸뚱이로 술 먹고 친구들과 노는 에너지는 있고
돈 벌고 일할 에너지는 없는 걸까?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내가 쉴 곳이 없다.
내 방도 없고 잠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주무시는 안방에서 같이 자야 하니까.
쉴 곳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자다가도 씻다가도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폭력과 폭언에 두려운 나날들로 인해
항상 망상과 현실도피 속에서만 안식을 취했던 것 같다.
가끔 엄마와 통화를 하지만 너무 어릴 때 헤어졌던 탓일까,
엄마를 그리워했으면서도 막상 통화를 하거나 만나면 낯을 가리기 바빴고 할 말이 없었다.
"엄마, 나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요. 집에서는 아빠가 나를 때려서 너무 힘들어요. 나도 엄마가 싸주는 도시락을 먹어보고 싶어요."라고 솔직하게 말했다면 엄마는 나를 그 구렁텅이에서 구해주러 왔었을까?
나는 엄마도 홀로서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자존심 때문에 엄마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도 단 한 번도. 그래도 엄마는 아마 은연중에 알고 있는 듯 나에게 친구들에 대해 물어보곤 했다.
그래도 말할 수 없었다. 낯선 엄마에게 조차도 솔직해질 수 없었고 그 누구에게도 나는 솔직해질 수 없다.
그렇게 3년 간의 왕따 생활에도 졸업이 찾아오면서 종지부가 찍히는 것 같았다.
졸업식을 며칠 앞두고 내 교복 치마와 상의를 앞뒤에서 잡아당기는 괴롭힘으로 인해
나는 처음으로 "그만하라고!" 소리치며 저항했다.
그 순간 교복 상의는 무참하게 찢어지고 그 상태로 나는 하교를 해버렸다.
찢어진 교복을 입고 어떤 정신으로 어떻게 집을 갔는지 지금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비참함으로 가득 찬 머리에 무엇이 들어갈 수 있었을까.
그렇게 나는 중학교를 졸업했고 나는 중학교 졸업 사진이 없다. 아무도 오지 않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