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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냥 Mar 01. 2024

고등학생 D 이야기, 첫 번째

Your Child My Child

고등학교 입학식을 앞두고,

나의 내면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건지는 모르겠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되기를 앞둔 이 시간 동안

할머니 할아버지는 더욱 늙어갔고 다른 기생충들은 더더욱 나락의 길을 가며 악영향을 줄 뿐.


기억나는 감정은, 화가 났고 그 후엔 결심을 했던 것 같다.


나에게 두려운 것들은 없어질 일이 없고 흐려질 일도 없다는 것

자신감 따위 있지도, 있었던 적도 없지만 여기서 멈춰서 있을 수 없다는 것

결국엔 나 또한 혐오하는 저 기생충들과 같은 사람이 되어 버릴 뿐이라는 것


고등학교 입학식 당일.

옆에 있던 애에게 발끝부터 머리까지 모든 용기와 결심을 끌어모아 처음으로 먼저 말을 걸었다.

그걸 계기로 나의 고등학교 생활은 중학생 때와 180도 달라졌다.


베스트프렌드라고 부를 수 있는 친구들이 생겼고,

같이 노는 그룹이 생겼고,

친구들 집에 놀러 가고 친구들이 놀러 오고,


중학생 때는 소풍이랍시고 롯데월드로 반 애들을 모두 데리고 가놓고

(반에 왕따가 있는 걸 알면서도) 알아서 놀게 내버려 두는 선생과

그룹별로 각자 신나게 놀고 도시락을 먹고 음식을 사 먹는 아이들 사이에서

혼자 멀뚱히 벤치에 앉아 있다가 다른 반 담임인 종교 선생의 권유라는 이름의 친절한 강요로 혼자 놀이기구를 탔다. 어찌나 비참하던지


근데 이제는 친구들과 롯데월드를 몇 번이나 가서 놀았는지 모를 정도가 되었다.


가장 웃긴 점은, 고등학생이 된 이후에도 나를 왕따 시키고 폭력을 행사하고 방관했던 애들도

대부분 나와 같은 고등학교로 배정이 되었고, 일부는 같은 반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우리반에서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를 챙길 수 있는 여유까지 생겼다.


한 번은 나에게 말하더라, "너 많이 변했다?"라고

그래서 나는 대답을 한다는 자각도 없이 "어" 한마디를 했다.

화도 담기지 않고 원망도 담기지 않은 그냥 대답을.

나에게 질문을 던진 가해자의 어색하고 일그러진 표정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몇 명은 친한 척까지 하는 꼴이 어찌나 역겹고 우스웠던지

집의 환경은 나날이 나빠졌어도 나는 고등학교 생활이 아주 통쾌하고 재밌었을 뿐이었다.


물론 나중에 풀어낼 이야기지만,

수학여행이든 졸업여행이든 소풍이든 급식비든 매번 돈을 낼 일이 생길 때마다

엄마가 아니었다면 아버지란 인간으로 인해 얼마나 창피와 비참함을 또 느낄뻔했는지는

다시 나를 원래 있던 장소로, 현실로 끌어내렸지만.


그래도 나는 입학식 단 하루, 단 한순간, 단 한마디로 인해 바깥 생활만큼은 변화를 일으켰다.

더 이상 고개 숙이고 투명인간처럼 멀뚱하게 서있는 불쌍한 왕따가 아니었으니까.


물론 용기를 내는 모두가 해피엔딩을 맞이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인생은 동화가 아니니까.

하지만 용기를 내는 그 순간, 내 온몸의 용기를 끌어모아 밖으로 표출하는 그 순간의 경험은

어떤 엔딩이 되더라도 나에게 유의미한 경험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성인이 된 나는 이번에 다시 한번 용기를 끌어내서

아픈 기억을 헤집고 꺼내서 세상에 풀어놓았다.

한 줌이든 1g이든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용기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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