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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냥이 Mar 08. 2024

고등학생 D 이야기, 세 번째

고3이 되고 졸업식을 앞둔 방학 무렵 늘 가지고 있던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증이 폭발해서 거의 30kg를 감량했다.

오로지 굶고 자몽이나 오렌지 한 개만 먹으면서 뺐는데 어려서 그런지 쭉쭉 빠졌더랬다.


너무 커서 동여 멘 교복을 입고 학교를 가니 굉장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중학생 때 졸업식과는 정 반대의 졸업식으로 고등학생 신분을 벗어나게 되었다.


이후 돈도 한 푼 없이 친구와 같이 살게 되었고 그 친구는 남자들, 그리고 술자리를 매우 좋아했던 그 친구였다.  

노상은 기본, 숙박업소 가서 술을 마시거나 심지어

집까지 이성친구들을 불러내어 술자리를 가졌다.


그래도 내게는 지켜야 할 적정 선이라는 게 남아있었고, 원룸 형태의 집으로 불러서 다 같이 자야 할 때는 취한 상태에서도 늘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가놓고 잠에 들었다.


가끔 화장실로 피신할 정신도 없을 만큼 취한 어떤 날은 친구가 부른 남성으로부터 경찰을 부를 정도의 사건이 있을 뻔도 했지만 다행히 도중에 눈을 떠 미수에 그치는 일도 있었다.


나는 그렇게 PC방 아르바이트, 식당, 카페, 도넛가게 등 여러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살아가며 시간을 보냈다.


어차피 나에게는 지금 이 순간에 술자리나 놀이에서 느끼는 충동 외에 그 무엇도 브레이크가 될만한 존재도 이유도 목적도 없었으니까


그저 이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적당한 때에 생을 마감하고

싶을 뿐이었다. 나는 남들처럼 대학을 다니고 꿈을 가지며 평범한 인생을 살기엔 시작부터 잘못된 패를 골라서 태어났다고 생각했기에.


그 와중에 나에게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자주 찾아뵙거나 맛있는 걸 사다 드리거나 외식 한 번 시켜드리지 않았다.


그저 이기적으로 나만 생각하고 나만의 쾌락을 좇았을 뿐.


나이는 20살이 넘었어도 내면은 여전히 고등학생 수준에서 멈춰있었다.


그러다 돈도 떨어지고 알바도 하기 싫어졌을 때, 본가로 돌아갔다. 내가 바로 그 기생충 중 한 명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와중에 할머니는 갈수록 치매가 심해지고, 할아버지는 눈물을 보이거나 전보다 나날이 약해져 가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게 마음이 아프기보다는 화가 나는 게 먼저였다.


왜 화가 났던 걸까, 생각해 보면 아마도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 들의 자랑이 될 수도 없고 제대로 된 가정교육도 시켜주지 않은 원망 등 몇 개는 이기적이고 몇 개는 안타까운 복합적인 이유들이 섞여 검고 혼탁한 색의 마음만이 남아있어서였을 것이다.


20살이 넘어서도 매일 집에서 게임이나 하는 나와

치매와 당뇨 합병증에 걸려 매일 밖을 노숙자처럼 돌아다니며 담배꽁초를 주워 피러 다니고 응급실을 다니던 할머니.

그런 할머니를 돌보는 할아버지.

내 이야기 처음부터 지금까지 언급조차 하지 않은 한 명,

악마도 고개를 젓고갈 사이코패스 범죄자인 여동생.

중학생 때부터 가출에, 성매매 알선에,

돈이 떨어지면 집으로 기어들어와 술에 꼴은 상태로

나는 물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폭력을 행사하고 툭하면 식칼을 들고 휘둘러댔더랬다.


이 지긋지긋한 집을 나는 다시 나갔다.

이 선택이 지금도 두고두고 후회가 되어 남을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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