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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편선 Dec 21. 2016

2016년에 들은 음악들

2016년 12월 19일 월요일 "랏도의 밴드뮤직" DJ 선곡표

24시간 인디음악 라디오 방송국 "랏도의 밴드뮤직"에서 월요일과 화요일 밤 11시부터 1시까지 "권나무의 알고 보면 잘 몰라요"를 진행하고 있는 음악가 권나무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19일 방송을 할 수 없게 되어, 대신 방송을 진행하게 되었다. 나는 지난 8월부터 9월까지 한 달 간 "단편선의 말하기 / 듣기"를 진행했었고, 2017년 1월부터 다시 레귤러 DJ로 합류할 예정이다.


연말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2016년에 들은 음악들을 소개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종일 한 해 동안 들었던 음악들을 다시 체크하는데, 개중에선 너무 길거나 시끄럽거나 난해하거나 좋아하기는 했는데 굳이 틀어야하는지 싶거나… 여하간 여러 이유에서 라디오에서 틀기 적합치 않은 곡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매트 엘리엇Matt Elliott이나 히조카이단 X 준 토가와Hizokaidan X Jun Togawa 같은 것을 틀긴 좀 애매하단 이야기다. 그것들을 빼고 다시 추려보니 이 정도가 되었다. 방송분량이 2시간이니 경험상 12곡 정도 틀면 시간이 맞을 것 같아 국산 음악과 외산 음악을 사이좋게 6곡 씩 번갈아 배치했다. 메인스트림 팝은 방송국의 컨셉과 다른 탓에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정미조 선생님은 굳이 따지자면 메인스트림이지만… 어덜트 컨템포러리로 치는 것으로.) 마지막으로, 모두 2016년에 발표된 음악들이다.


리스트에는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해서 넣은 음악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음악도 있다. 이게 내 베스트냐고 물어보면 그것도 잘 모르겠고, 내 인생 꾸리는 것에 바빠 따로 연말결산 할 시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두 좋아했던 음악임은 틀림없다. 그리고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듣기 편한 음악들이기도 하다. 즐겁게 들어주셨으면 한다.


선곡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1. 파라솔 - 베개와 천장

2. Papooz - Stories of Numbers

3. 이민휘 - 빌린 입

4. Whitney - No Woman

5. 정미조 - 귀로

6. Touché Amoré - Rapture

7. 넌 아만다 - 서로의 서로

8. D.D Dumbo - Satan

9. 푸르내 - 야생의 밤

10. Metá Metá - Corpo Vão

11. 이랑 – 신의 놀이

12. Mike & The Melvins - Chicken n Dump


이하 유튜브 링크와 방송에서 아무렇게나 말했던 것을 짧은 코멘트로 정리.


1. 파라솔 - 베개와 천장


파라솔에 대해 내 트위터에 썼던 글을 붙인다.


"으로 분류될 한국의 근래 음악들 중 가장 격조를 갖춘 아름다움을 들려주고 있다. 그것을 좋아한다. 베개와 천장의 코러스 파트는 II ─ V ─ I에 기반해 쓰였는데, 특히 곡을 써본 사람이라면 이 진행에서 클리세를 피해가기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 것이라 생각한다. 이 곡은 질척함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연주와 자신 간의 거리를 냉정하게 유지해가며 감상적인 음악을 연주하는 일은 보기보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자면, 나는 파라솔이 3인조라서 좋다. 3인조가 보여줄 수 있는 3인조의 음악을 3인조 답게 멋지게 들려주고 있는 까닭에서다.


https://youtu.be/MPCkqAvYtyM


2. Papooz - Stories of Numbers


오브 몬트리얼Of Montreal이나 타히티 80Tahiti 80을 좋아하는 느낌으로 좋아하는 것 같다. 프렌치 팝에 약간의 비틀즈를 끼얹었는데, 약간의 비틀즈를 끼얹는 것은 좋은 팝송의 지름길이기도 하지만 누구나 잘 만들 순 없는 것이기 때문에…


https://youtu.be/ea2qUmFc6dw


3. 이민휘 - 빌린 입


이민휘에 대해 내 트위터에 썼던 글을 붙인다.


"올해 들은 한국어로 된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들 중 하나. 대놓고 애시드 포크인 것도 너무 취향이고."


여하간 나는 이 노래에서 관악이 굉장히 효과적으로 쓰였다고 생각하는데, 세세한 공간감과 긴장감을 만들어주고 있다. 무드가 좋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verse에선 축 처진 것 같이 노래하다 chorus에서 탁 튀어오르며 생동감을 불어넣어주는 멜로디 라인도 참 좋고.


https://youtu.be/ZQXbf8BUUXw


4. Whitney - No Woman


올해 드라이브 하면서 가장 많이 플레이했던 노래. 물론 나는 차가 없기 때문에 친구 차 조수석에 타서 가장 많이 틀었던 노래라는 뜻이다. 구성도 그렇고 어레인지도 그렇고, 밸런스가 기가 막힌 음악.


https://youtu.be/CGKN6qiDqnk


5. 정미조 - 귀로


EBS 스페이스 공감에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정말 어덜트 컨템포러리다운 음악을 어덜트하게 공연하는 모습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은퇴했던 싱어가 37년 만에 다시 노래를 부른다는 사실 자체가 드라마틱 하고, 목소리 만으로도 굉장한 깊이감을 만들어낸다.


https://youtu.be/bTqt7MVyMAw


6. Touché Amoré - Rapture


과장 되어있지 않고, 본인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굉장히 알맞은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느낌. 군더더기 없이, 괜히 머리 굴리는 거 없이 그냥 스트레이트하게 자신들의 음악을 연주한다.


https://youtu.be/xxqw2k8BbMU


7. 넌 아만다 - 서로의 서로


굳이 따지자면 리스트에 올라온 음악 중 가장 덜 유명한 편일텐데, 사실 엄청나게 훌륭하다거나 잘 하는 축에 드는 밴드도 아니다. 그런데 음악이 좋다. 90년대 가요 같은 느낌도 있고,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의 한국 모던 록 같은 느낌도 있으며, 다른 몇몇 곡에서는 구성에서 포스트 록들을 참고한 느낌도 난다. 그것들을 오버스럽지 않게 담아내서 좋았다.


https://youtu.be/JYyYKI0sUTU


8. D.D Dumbo - Satan


D.D Dumbo에 대해 인디포스트에 기고했던 글을 붙인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올리버 휴 페리(Oliver Hugh Perry)의 1인 프로젝트, 디디 덤보(D.D Dumbo)의 데뷔 앨범 <Utopia Defeated>에 실린 싱글. 나는 '동시대성'이 느껴지는 이 싱글을 좋아한다. “음악적 정체성을 어떻게 구성해낼 것인가?”는 근대 이후의 아티스트들에게 끊임없이 제기되는 질문. 특히 유튜브, 스포티파이 같은 도구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 세계, 모든 시점의 음악과 접속할 수 있게 된 현대의 청취 환경을 고려할 때, 그러한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내놓기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현대의 네트워크 환경이란 기본적으로 무시간성, 무국적성, 무지역성을 특질로 가진다. 따라서 공간과 시점에 따른 차이는 전보다 줄어들게 되며, 그것은 일견 자유를 증진하지만 한편 차별화의 어려움을 가져오게도 한다.)


디디 덤보는, 그러한 변화를 잘 이해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부정적인 요인을 통제하고 긍정적인 효과를 극대화하는 재능을 가진 음악가다. 디디 덤보의 세계에는 첫째로, 이전의 토킹 헤즈(Talking Heads)가 그랬듯 1세계 외부의 음악적 요소들을 스펀지 같이 빨아들여 솜씨 좋게 녹여내는 자유분방함이 있으며, 둘째로 옛 사이키델릭 록에서부터 신스팝과 디스코까지, 레트로한 장르들의 클리셰를 명민하게 활용함으로 얻어지는 친숙함과 안정감이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즐거운 절충주의. (친숙함 또는 익숙함이란 종종 부정적인 평가의 근거로서 기능하지만, 팝 음악에선 아주 중요한 가치. 일단 익숙함이 없다면 팝 음악 자체가 성립되질 않는다.)"


요약하자면 똑똑하고 신나서 좋다는 이야기다.


https://youtu.be/yrsfyu9N0ps


9. 푸르내 - 야생의 밤


푸르내의 첫 앨범 [야생의 밤]은 오래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내가 왜 이 음악을 좋아할까?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다른 건 차치하고, 보컬이 남성이라서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이 음악을 여성이나 다른 스타일의 보컬이 부른다는 어떤 느낌일까? 아직 상상해보지 않았다. 여하간 나는 푸르내의 음악을 들으면서 남성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자세라거나, 윤리라거나, 도덕 같은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남성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음악이 아닌데도 괜히 그런 생각이 든다.


https://youtu.be/L38i1jpdZ-A


10. Metá Metá - Corpo Vão


나는 맛탱이 간 브라질리언 음악들이면 그냥 일단 좋아하고 보는 것 같다. 작년의 엘자 소아레스Elza Soares에 이어 올해도 브라질리언 음악들로부터 많은 감명을 받았다.


https://youtu.be/FNXUOGdNmSk


11. 이랑 – 신의 놀이


자신의 작업과 예술이라는 것에 대해서 메타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점이 재미있다. 그리고 그런 관점과 음악이 너무도 잘 어울려서 좋다. 겨우 3분 밖에 안 되는 노래지만 창작이라는 것, (창작자로서) 삶을 살아가는 윤리, 그리고 일 / 노동으로서의 창작이라는 것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전히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에서 끝이 마침표(.)로 딱 떨어지는 느낌이 좋다. 어떻게 이런 노래를 만들었지? 지금도 신기하다. 굉장히 자극된다.


https://youtu.be/t6gDp9IsBgw


12. Mike & The Melvins - Chicken n Dump


나는 이 아저씨들이 변함없이 구닥다리를 연주하는데도 너무나 간지나서 좋다.


https://youtu.be/DCuB1yAZk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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