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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련일기 Aug 09. 2021

같이 달리는 사이

단련일기 #000


우리 셋은 종종 같이 달립니다. 

12월 25일에는 한강을 달렸어요.

달리고 나서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다가 

[단련일기]를 만들게 되었답니다. 


그날의 달리기 일지를 각자 적어보았습니다. 



✣ 박연습의 단련일기










달리 

할 일도 없는데 

달리기


또 오랜만에 달린다. 거의 한 달 만인 것 같다. (한 달 만에 달린다고 해도 규칙적이라면 꾸준히 달리는 셈이다. 그렇다고 하자) 오늘 이렇게 달리게 된 이유는 크리스마스. 코로나가 덮친 2020년이지만 그래도 연말인데 밖에 좀 나가고 싶었다. 달리 할 일도 없는데 달리기나 하자 싶어 친구를 따라나섰다.                 


목적지는 우리의 단골(10년 단골이라고 해도 나는 한 달에 한 번 갈까 말까지만, 잊을만하면 가고 있으니 단골이라고 치자) 카페. 차가워진 공기에 마스크를 쓰고 달리니 숨이 잘 안 쉬어졌다.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쉬니 턱이 아팠다. 그렇게 7킬로 남짓 달려서 도착한 합정동의 카페. 커피 한 잔이 간절했지만, 마스크를 쓴 채 어정쩡하게 카페 사장님의 안부만 묻고 원두를 사서 다시 밖으로 나왔다. 한강 변에 있는 운동기구에도 사람이 앉지 못하도록 테이프가 칭칭 감겨있었다. 


환대받지 못하고 서성일 수밖에 없는 요즘. 어쩐지 존재가 죄송해지는 느낌이다. 그래도 하늘은 맑았다.





✣ 황집중의  단련일기












그래도 

달리기


어제는 미세먼지 때문에 공기가 안 좋았는데 오늘은 하늘이 쨍하게 맑다. 대신 날이 무척 춥다. 얼마 전에 추위를 얕잡아 보고 옷을 대충 입고 나갔다가 허벅지가 빨갛게 다 텄었다. 오늘은 기모 바지에 패딩까지 챙겨 입었다. 크리스마스지만 코로나 확진자 수가 더 신경 쓰인다. 길 가다 기침하는 사람이 가장 무섭다. 너도 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요즘 괜히 피곤하고 목이 칼칼하면 체온을 재어 본다. 


운동 부족인 건지 겹겹이 입은 옷 때문인지 오늘따라 달리는 게 힘들었다. 3킬로쯤 뛸 땐 '언제 끝나나' 그 생각만 하염없이 했다. 이 와중에 천의 물결은 세상 무심한 듯 눈부시게 빛나고, 두 다리는 습관적으로 앞을 향했다. 불광천에서 출발해 한강까지 목표한 거리를 채우고 나니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 들깨 칼국수를 먹으러 갔다. 식당에서 한 칸씩 거리 두고 앉았지만, 칼국수 3인분은 세숫대야 만한 거대한 그릇에 함께 담겨 나왔다. 열심히 먹었지만 다 못 먹었다. 부른 배에 기대어 두고 입만 재잘재잘 움직였더니 마스크 쓰라는 주의를 받았다. 


식당 밖으로 나오니 땀이 식어 등줄기가 서늘했다. 목으로 스며드는 한기, 축축한 마스크, 그리고 올해가 일주일 남았다는 사실이 신경 쓰였다. 





✣ 정수련의 단련일기 










크리스마스를 

잊는 

달리기


유난히 조용한 크리스마스다. 24일 저녁 11시 30분의 지하철은 놀랍도록 텅텅 비어있었다. 조용한 크리스마스에, 우리는 달리기를 하기로 했다. 겨울의 달리기는 항상 살짝 긴장된다. 옷을 잘 갖춰 입지 않으면 달릴 때 너무 덥거나, 달리기가 끝나고 땀이 식으면서 너무 추워진다. 오랜만의 추운 날의 달리기라 귀마개까지 하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크리스마스인데도 마땅히 갈 곳이 없기 때문인지 달리기나 산책을 하러 나온 사람들이 꽤 보였다. 홍제천과 한강이 만나는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스팟(작은 천을 달리다가 한강과 만나면서 탁 트이는 하늘과 강의 만남이 언제나 드라마틱해서 좋다)에는 청둥오리와 가마우지로 보이는 까만 새들이 빛나는 윤슬을 배경으로 천천히 유영하고 있었다. 한강답지 않게 바닥까지 훤히 보이는 맑은 물 위로 새들이 움직이다 물고기를 사냥하려고 물 밑으로 내려가는 모습을 한참을 바라봤다. 


달리기 중이었다는 사실도 잠시 잊어버리게 되는, 가장 화려하게 연말을 장식해야 할 크리스마스라는 것도 잊게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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