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게 바라지는 미(美)의 압박
절친한 친구가 연애를 한다. 이 친구, 맨날 연애 실패하더니, 드디어 자기 모습 그대로 사랑해주는 남자친구를 만났다. 무척 기쁘다. 어떤 말을 해도 “맞아. 그럴 수도 있겠다.” “내가 잘못 생각했던 것 같아, 미안해”를 달고 산다더라. 아, 부러워. 그런데 고정관념, 관습이 무서운 법이라고, 친구의 연인 분도 친구에게 은연중에 바라는 것들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 아름다움에 대한 압박이다. 친구가 예쁘게 차려입고 (특히 치마), 예쁘게 화장한 날이면 남자친구가 좋아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누구나 깔끔하면 좋다. 하지만 “혹시 이직한 회사에서 ‘오피스룩’을 입으라고 하진 않아?” 혹은 “자기 오늘 화장이 연하네, 너는 치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나봐, 바지가 편하면 어쩔 수 없지, 많이 입어”라는 사심이 담긴 질문을 받을 때는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고 하더라. 이 남자도 과거의 연인들과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아서 그런 거겠지. ‘그가 원하는 대로 꾸미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하는 건 아닐까’, 많이 불안해하는 친구의 모습에 참 속상했다.
그리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 취향은 다양하니까 존중해주고 싶지만, 그 취향을 다른 사람에게 투영할 때 부담감 혹은 반감이 생기는 것 같다. 예로, 나는 한 번도 남자친구에게 어깨가 부각 되는 옷을 입어달라거나 실루엣이 드러나는 옷을 입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해본 적이 없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겉모습을 지적받을 때 혹은 미(美)에 대한 압박을 느낄 때는 여자로서 그렇게 속이 상할 수가 없다.
예전 연애를 돌이켜보면 나 또한 한겨울 남자친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살색 스타킹에 짧은 치마를 입고 데이트를 나가곤 했다. 그런데 모든 배려와 희생은 내가 감당할 수 있고 내 기분이 상하지 않을 만큼만 하는 게 좋은 것처럼, 이제는 더 이상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남에게 잘 보이고 싶지 않는다. 더 이상 나는 예쁘게 보이기 위해 꽉 조이는 스키니진을 입거나 보온보다 패션을 더 중시하지 않는다. 다른 여성들도 이런 변화를 보이고 있어서 행복하다. 단적인 예지만 짧은 테니스 치마, 딱 달라붙는 옷보다 와이드 팬츠를 입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처럼 패션 시장도 편함, 실용성을 추구하는 쪽으로 바뀌었다는 점이 참 만족스럽다. 와이어리스 브라와 낙낙한 사각 드로즈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참 기쁘다.
속옷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남녀의 사랑이 깊어지면 관계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단순한 의심인데, 특정 성별만 특정 부위의 털이 없어야 하는 이유는 없지 않을까? 그 특정 부위는 바로 겨드랑이. 그 곳을 제모하지 않으면 ‘깔끔하지 못한 사람’, ‘자기관리가 철저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고정관념이 아닐까? 당연함에 의심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왔듯, ‘불편하다’,‘싫다’, ‘이게 왜 당연한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코르셋을 던져버리는 변화가 일어날 거라 생각한다.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라는 책처럼 여성들은 꾸밈 노동에 엄청난 시간을 쏟아왔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깨끗한 피부를 갖고, 긴 생머리를 하고,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옷을 입을 필요는 없다. 사랑하는 친구에게 차마 말하지 못하고 마음 속에 품어두었지만 이 장소를 빌려 말하고 싶다. 네 연인이 계속 너를 예쁜 모습으로 변화시키려고 한다면, 네 모습 그대로 사랑해주지 못한다면, 과감히 그 사람 손을 놓으라고. 네가 너무 불편하고 힘들면서 해야 하는 일은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