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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상의 기록 Mar 02. 2024

더럽고 천한 것은 무엇인가?

오키쿠와 세계

오키쿠와 세계가 상영중인 에무시네마 입구

1. 사카모토 준지 감독의 <오키쿠와 세계>를 보았다. 이런 영화를 단순히 보았다고 하기에는 경기도민에게는 다소 험난한 과정들이 있다.  이런 영화는 당연히 내 주변에는 상영관이 없고, 멀리 서울까지 나들이를 해야만 볼 수가 있다.


몇 안 되는 상영관을 찾아보니 그나마 가장 가기 쉬운 조건의 상영관은 광화문 인근에 있는 <에무시네마>였다. 집 앞 정류장에서 이층 광역버스를 타고 2시간 전에 나오면 영화 시작 전까지 얼추 도착할 수 있었다.  

건너편 시네큐브는 자주 갔던 곳인데 딱 반대편에 있는 <에무시네마>는 처음 와봤다. 한 50석 정도 되는 작은 상영관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열명 남짓의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를 찾아 앉았다.  


19세기 에도시대 이른바 똥 푸는 청춘들에 대한 이야기, 이 영화는 흑백으로 만들어진 이유가 시작과 동시에 납득이 될 정도로 똥의 이미지들이 너무 리얼하게 나왔다. (수많은 평론가들이 이 영화를 미학적으로도 굉장히 깨끗하고 아름다운 영화라고 평했던데..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그 부분은 개인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웠다. 난 비위가 약했나 봐..) 

세계라는 개념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절,  싸고, 먹고, 더럽고, 숭고하고, 추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들은 결국 하나로 이어지는 세계임을 가장 천하고 낮은 사람과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순수한 사랑을 매개로 이야기한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오물과 분뇨의 이미지로 영화를 보내 내내 그리 편하지 않았지만, 영화의 엔딩 크레닷이 올라갈 때쯤 '진정 천하고 더러운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는 질문이 머리속에 맴돌았다.  


오키쿠와 세계 스틸컷



2. 오늘처럼 일부러 멀리까지 볼일이 있어 서울을 가는 경우, 예전과 달리 최근에는 차를 가지고 이동하지 않는 편이다. 주차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고,  무엇보다 오며 가며 버스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여유의 시간이 즐거움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페에서 글을 쓸 용도의 아이패드, 경기도민들에게 제일 중요한 보조 배터리와 에어팟, 그리고 오며 가며 읽을 책 한 권, 카페에서 마시고 남은 커피를 담을 텀블러 따위를 가방에 챙겨 오면 하루 뚜벅이의 짧은 여행준비가 끝난다.  운전하면 이렇게 중간중간 여백을 즐기는 시간이 없어지게 된다. 기름값과 주차비도 아끼고, 운동도 되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차로 다녔으면 그냥 지나쳤을 수많은 공간 사이사이의 빈틈을 찾아보는 재미도 생겼다. 앞으로 일부러라도 이렇게 뚜벅이 모드로 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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