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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상의 기록 Apr 06. 2024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거장이 되어버린 나와 동갑, 하마구치 류스케

오랜만에 찾은 광화문 시네큐브

기다리던 하마구치 류스케의 신작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를 보기 위해 일치감치 사전투표를 하고 광화문행 광역버스에 올랐다. 내가 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시간은 주말 오전밖에 없는데 여느 유부남들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점심 이후에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보고 싶은 영화가 주변 극장에서 상영을 해도 점심시간 이후 애매한 시간에 상영하는 경우는 아쉽게도 볼 수가 없다. 그래서 가끔 집 앞 정류장에서 광역버스로 한 번에 가는 광화문으로 가서 영화를 보곤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광화문에는 예전에 서울 살 때부터 자주 가던 시네큐브도 있고 에무시네마도 있어 상영관을 찾기 힘든 독립, 예술영화는 오히려 광화문 쪽에서 보는 게  거리상으로 멀어서 그렇지 접근성은 오히려 좋은 편이다.  (예전에는 이대 모모하우스도 정말 많이 갔었는데.. 용인으로 이사 온 후로 가본 적이 없다.)  다만 최근 날이 따뜻해져 광화문의 집회와 시위가 많아진 것만 빼고는 이러한 경기도민의 영화 보기 패턴은 주말의 즐거운 이벤트가 되었다.

오랫동안 개봉하기만을 기다렸던 하마구치 류스케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평소 플레이타임이 길기로 유명한 하마구치 류스케의 작품과 다르게 (전작 해피아워는 무려 5시간 17분이다) 이번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다행히 106분밖에 되지 않아서 기쁜 마음으로 개봉을 기다렸던 영화다 (아무리 영화를 잘 만들어도 3시간이 넘어가는 영화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본능적인 생리적 고통에 이르게 한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일본의 시골마을에 글램핑장을 만들기 위해 내려온 엔터테인먼트 회사 직원들과 마을 주민 간의 갈등을 그린 영화로 개발이라는 논리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려 하는 지극히 평범한, 어쩌면 선으로 보일 수도 있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직원들과 사슴처럼 숲의 샘물을 마시고, 야생 풀을 뜯어다 우동에 넣어먹는 주인공의 영화 후반 어쩌면 인간의 섭리로는 악으로 보일 수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통해  하마구치 류스케는 자연이라는 커다란 생태계에서 악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또한 자본의 논리로 환경의 파괴마저 이해될 없는 선으로 포장하려는 행태는 흡사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떠올리기도 하는데 영향이 이후 사람들에게 죽음이라는 악으로 돌아오게 되어도 그것은 악이 아닌 커다란 자연의 순리일 뿐이라는 냉소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이전까지는 A사이드의 필모였다면, 이번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B사이드를 살짝 보여준 영화랄까? 나와 동갑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으로 치면 일본에서는 어린 축에 속하는데 벌써 거장이 된 느낌이다.  살짝 칼집에서 칼만 보여줬을 뿐인데 이 정도의 영화가 나오다니.. 좀 더 나이가 들고 칼을 모두 꺼내드는 그때쯤이 되면  하마구치 류스케는 얼마나 큰 거인이 될까? 그때가 너무 기다려진다. 

PS. 참고로 류스케야. 상영시간은 지금이 딱 좋다.


   


단상의 기록 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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