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파크] 7.

by 서커스

호진은 10년차 서퍼다. 양양에서 태어났다. 학교에선 책상에 가만히 앉아있는 걸 못 하는 학생이었다. 교실 의자에 앉아 있으면 늘 다리를 떨었다. 키는 컸지만 마른 몸은 남학생들의 서열 싸움에서 불리한 조건이었다. 그래도 성격이 사나워서 잘 밀려나지는 않았다. 공부에는 취미가 없었다. 게임도 그저 그랬고 친구들과 몰려 다니며 별 생각없이 하루 하루를 보냈다. 양양시에서 서핑 선수 교육을 시작했을 때 호진의 아버지는 아들이 그거라도 해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번 해 보라고 권했다. 서핑은 해본 적이 없었지만 바다는 익숙한 곳이었다. 한번 경험만 해보려던 것인데 운동신경이 좋고 몸이 가벼워 남들보다 금방 배웠다. 재미보다는 몸이 마음대로 잘 안 되는 게 화가 나서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바다에 나갔다. 그렇게 시작됐다.


어머니가 어릴 때 집을 나갔다. 아버지의 거친 성격을 참지 못히고 어린 아들을 두고 떠났다. 아버지는 입도 손도 거칠었다. 그런데 인물이 너무 좋았다. 다른 사람들보다 자주 용서받았고 쉽게 사랑받는 편이었다. 술을 많이 마셨다. 아내에게 욕을 하고 술에 취해 손찌검도 했다. 호진의 어머니는 많이 참았다. 그러나 남편의 바람기는 참지 못했다. 남편이 끝내 다른 여자를 임신시켰을 때 호진의 어머니는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아들과 남편을 버리고 떠났지만 버려진 기분으로 집을 나서야 했다. 호진은 내내 어머니가 자기를 버리고 갔다는 슬픔을 마음에 담고 살았다. 어머니가 상처받고 배신당한 마음으로 집을 나섰겠구나 하는 이해는 너무 늦게 찾아왔다. 공허한 마음으로 보낸 시간이 길었다.


호진은 아버지의 인물을 물려받았다. 얼굴선이 섬세하고 큰 눈이 빛났다. 어릴 때부터 예쁘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여자들은 그에게 친절했다. 사랑받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면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남을 배려하거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 호진은 다른 누구보다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겼으므로 다른 사람의 입장을 배려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다른 사람도 각자의 슬픔을 이고 산다는 걸 모르는 평범한 청소년이었다. 다만 엄마가 아닌 사람이 엄마의 자리에 있는 걸 봐야 했다. 머릿속에 늘 혼란이 있었고 스스로를 지키는 건 늘 자신뿐이었다.


바다에서는 머릿속의 혼란이 힘을 잃었다. 파도를 보고, 패들을 해서 보드에 서면 머릿속이 단순해졌다. 한 번 라인업에 서면 몇 시간이고 파도를 보고, 라이딩을 하고, 다시 패들해 라인업에 돌아간다. 해가 져서 더이상 서핑을 할 수 없게 될 때에야 뭍으로 나온다. 자기연민에서 벗어난 몇 시간이었다. 집 대문이 보이면 속이 또 다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기분이었지만 성질을 낼 기운이 없어져 있었다. 멍하게 밥을 먹고 나면 나름대로 개운하게 잠들 수 있었다. 이것 외에는 위로받을 구석이 전혀 없었으므로 호진은 매일 서핑을 했다.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그냥 하는 중인 줄 알았는데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나간 대회에서 1등을 했다. 누구에게 잘했다 소리를 듣는 기분은 간질간질하고 낯설었다. 호진은 상을 받고도 웃지 못했다. 남들이 자신을 추켜올리는 기분이 너무 생소하고 이상해서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대회는 그냥 있을 때마다 나갔는데 수상을 못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상은 주니까 받았지만 1등을 한다고 해서 더 기쁘지 않았고 2등이라고 해서 아쉽지도 않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웨이브파크]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