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의 열여섯 살 서퍼 마할로가 경기도 시흥에서 열린 국제서핑대회에 나왔다. 국제 서핑대회지만 마할로는 강원도 양양으로 이사 와 살고 있으므로 양양 출신으로 소개된다. 마할로는 키가 160센티미터도 채 되지 않고 몸무게는 40㎏ 남짓이지만 남자 숏보더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마할로를 형이라고 부른다. 너무 잘 해서다. 마할로는 이날도 무척 잘 탔다. 숏보드 부문에 출전해 에어 리버스를 해냈다. 마할로는 파도 위에서 몸을 틀더니 보드를 공중에 띄워버린다. 그런 다음 원래 자세로 착지하는 게 아니라 보드가 180도 틀어져 테일이 앞으로 향한 상태로 다시 파도 면 위에 안착한다. 조용하게 경기를 보고 있던 관중들은 이 순간에는 소리 지르지 않을 수가 없다. 사회자가 흥분한다.
"여러분! 마할로의 에어 리버스 기술이 나왔네요! 정말 아름다운 라이딩입니다. 저기 멀리서 보고 계시는 마할로의 엄마는 지금 얼마나 뿌듯할까요! 아 정말, 여러분, 마할로 선수, 열 여섯살의 마할로 선수를 보고 계십니다. 열 여섯살! 아아 저는 열 여섯살 때 뭘 했을까요? 여러분은 열 여섯살 때 뭘 했습니까? 아 정말 대단합니다 마할로 선수…"
약간 싼마이 느낌의 목소리로 장내를 채우는 사회자 박장호 역시 서퍼다. 장호는 양양에서 서핑샵을 운영하고 있다. 1세대 서퍼라고 할 정도로 일찍 서핑을 시작했다. 양양에 해수욕장만 있던 때부터 서핑을 시작해 지금처럼 서핑 성지가 돼가는 과정을 모두 지켜봤다. 장호는 웬만한 선수들의 출신과 성장 과정, 선수들의 부모까지도 꿰고 있고 편안하고 유쾌하게 사회를 보기 때문에 곳곳에서 열리는 서핑 대회의 사회자를 도맡고 있다. 4년 전 장호가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병원에 한달 간 입원했을 때 포항시는 서핑대회 일정을 당연하게 장호의 퇴원 이후로 조정했다.
장호는 자신도 열여섯 살 때부터, 아니면 그보다 일찍 서핑을 시작했더라면 지금 좀 더 멋진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한국의 서퍼들을 다 알고 지내는 정도가 아니라, 국제대회에 나가서 해외 브랜드의 협찬을 받으면서 좋은 보드를 타고, 세계의 온갖 서핑스팟을 돌아다니는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아주 잠깐 스쳐 보낸다. 열여섯 살 때 장호는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 친구가 전부였고 주로 피씨방에서 시간을 보내기는 했지만 게임이 엄청나게 재밌지도 않았다. 30년 전 그 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에 남는 게 하나도 없다.
나는 외고 동창 현지를 만나 밥을 먹으며 이 순간을 전해준다.
"사회자가 여러분은 열여섯살 때 뭐 하셨냐고 묻는 거야. 저는 도대체 그 나이 때 뭘 하고 있었을까요? 이러면서. 근데 나는 너무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지. 나는 열여섯 살 때 공부를 진짜 열심히 했어요 하고. 나는 진짜 공부 열심히 했잖아"
"알지. 열여섯이면 중3이니까 딱 우리 외고 입시 할 때네. 나는 그때 남원 사람을 태어나서 처음 본 거였어. 너 그때 주말마다 남원에서 서울까지 왔다 갔다 하면서 학원 다니지 않았나?"
"맞아 나 그때 막판에는 아예 혼자 고시원 살면서 공부하고 그랬어"
"와 진짜 우리 뭘 위해서 그렇게 공부한 거냐?"
"그러게, 그게 뭐라고. 그때는 진짜 외고 못 가면 인생 망하는 줄 알았어. 그게 얼마나 대단한 성공이라고"
"소름 돋아. 중학생이면 애긴데. 어린애들이 뭘 안다고 그렇게 학원에 다니고"
"그때는 외고 가면 인생이 술술 풀릴 줄 알았나봐. 재수할 때도 대학만 가면 다 되는 줄 알았지 나는"
"완전 헛소리였어.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아무것도 없이 새롭게 시작하는 거였는데"
"그래도 그 사회자가 열여섯살 때 여러분은 뭐 하셨냐고 물어볼 때 할 말은 있는 거지"
"그치 뭘 하긴 했지. 그 어린애가 하는 거만큼은 했겠지 우리도"
웨이브파크에서 종종 마주치는 어떤 아저씨는 체력이 떨어져 가도 꾸역꾸역 다시 라인업으로 패들하면서 혼잣말로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이렇게 했어봐…" 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생각한다.
'나는 학교 다닐 때 이거보다 훨씬 열심히 했었는데'
많은 어른이 어렸을 때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걸 최대의 후회로 꼽는다. 그러나 나는 조금의 후회도 없다. 나는 열세 살 무렵부터 거의 공부만 하면서 살았기 때문이다. 공부 잘하는 것보다 더 좋은 건 상상할 수 없었다. 시험 잘 보는 게 인생의 목표인 채로 몇 년을 보냈다. 그때 나는 성공을 향해 가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행복하다고도 생각했다. 지금 나는 그때의 내가 행복하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나는 늘 두려운 상태였기 때문이다. 한 번의 시험을 망칠까 봐 두려웠다. 답안지를 밀려 쓰지 않을까 두려웠고, 시험을 잘 보기에는 공부가 부족하지 않았을지 불안했다. 시험을 잘 보지 않으면 내 인생이 실패한 것이 될 거라고 확신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을 잘 보고, 성취감을 느끼며 또다시 즐겁게 공부하는 그런 식이 아니었다. 나는 운동선수처럼 시험 보는 날 아침엔 온갖 이상한 루틴을 다 마치고 나서야 집을 나섰다. 자주 체했고 늘 어딘가가 아팠다. 외고 진학 후 첫 시험을 치르는 동안에는 다리에 심한 피부병이 생기기도 했다. 내가 다닌 학교는 여학생들에게 반드시 스타킹을 신게 했는데 진물에 스타킹이 달라붙어 밤마다 울면서 스타킹을 벗어야 했다.
마할로는 내가 공부에 쏟은 시간과 정성만큼 서핑을 하고 있으리라. 마할로는 나보다는 행복할 것 같다. 몸과 머리를 균형 있게 쓰고 있으리라. 그리고 무엇보다 서핑을 하루에 13시간 14시간을 하지는 않으니까. 나는 하루에 공부를 14시간 정도 했다. 스톱워치를 켜두고 화장실 가는 시간이나 밥 먹는 시간 등을 빼고 실제 공부한 시간을 매일 쟀다. 13시간은 디폴트, 14시간 이상은 돼야 마음 편히 잠을 잤다. 즐거움은 잊은 지 오래였고 먹을 것으로만 스트레스를 풀면서 살이 많이 쪘다. 그때 생긴 튼살은 아직도 몸에 남아 볼 때마다 고3 시절의 자아를 떠올리게 한다. 나는 그때 스스로를 뚱뚱한 여자로 정체화했다. 맞는 옷이 없어서 매일 같은 옷을 입었는데 그게 공부에 전념하고 있다는 징표라고 생각했다. 아마 불행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