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스럽게 남자 앞에서 말을 더듬고

by 서커스

썸을 타는 간지러운 기분을 오랜만에 느꼈다. 서로 존댓말을 하면서 약속을 잡아 회사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한 번은 커피를 마셨다. 이번에는 저녁 약속을 잡아 퇴근 후에 파스타를 먹었다. 약속을 잡고, 식당을 알아보고, 조금 늦겠다고 전화를 하는 것 모두에 설레는 감정이 조금 들어가 있었다. 이게 데이트인지, 아니면 일을 하다가 알게 된 두 사람의 저녁 식사인지가 애매한 경계에서 미숙하고 서툴게 몸을 좀 떨었다.


바로 지난번 연애를 할 땐 처음으로 같이 밥을 먹은 뒤 3일 연속으로 만났다. 나흘째부터 연애를 시작했다. 열흘이 지나지 않아 잠자리를 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맹렬하게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고, 그런 마음을 전달하며 다음번 만남을 기다리는 일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강렬한 느낌을 받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런 연애 초기 과정은 어렵지는 않았다. 생각나는 대로 하면 됐고 상대도 나도 헷갈리지 않았다. 맹렬한 마음은 그러나 일 년도 지나지 않아 다 타서 사라졌다. 나는 내가 한 게 사랑이 맞았는지조차 좀 모르겠을 정도로 의아해졌다.


뭉근하게 달아오르는 것이 좋은 사랑이고, 불같이 타오르는 것은 욕망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뭉근하게 달아오를 줄 알았다가 맥없이 식어버리는 일도 많았고, 오르내림은 있어도 내내 확실하고 뜨거운 사랑도 있었다. 나는 다만 1년 전까지만 해도 욕망의 주인이자 사랑의 주체인 것처럼 자신 있게 사랑을 시작했던 내가 새삼스럽게 썸남 앞에서 긴장을 해 이상한 대답을 내놓고, 자꾸만 대화에 버퍼링이 생기던 게 우습고 신기하다. 사회에서 미숙하고 연약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으려고 부단 노력해왔는데, 불타게 사랑하는 것도 아닌 남자 앞에서 이렇게 머뭇거리는 게.


회사에서 뭘 얘기하다가 말이 막히거나, 선배 질문에 어눌한 대답이 나오면 마음이 괴롭다. 왜 어렵지도 않은 질문에 혀가 꼬였는지 좀 자책한다. 그러나 나는 엊그제 발견한 내 미숙하고 긴장한 모습이 오히려 반가웠다.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는 연애감정에 마음 놓고 휘둘릴 용기가 내 안에 있다고 느껴서다. 엊그제 파스타를 나눠 먹은 썸남이 내 다음 연애 상대가 될지 아니면 이 감정도 푸욱 수그러들지 아직 알 수 없다. 그래도 엊그제 파스타집에서와 같은 저녁이 몇 번 더 생기고 나면 또 다른 꽤 괜찮은 연애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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