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너무나도 필요했다. 자유롭고 깊은 호흡으로 나를 풀어주고 싶었다. 마치 다리에 묶은 줄을 풀어 하늘로 포르르 날아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다라면 말이다. 묵혀있는 것들을 내보내고 길을 열어 주는 일이라면, 바다가 제격이지 않을까.
직장인이라면 으레 그렇듯 일상의 시각은 매우 도시적인 것으로 채워진다. 지하철, 붐비는 사람들, 횡단보도, 건물들, 모니터, 마우스. 보는 것 닿는 촉감 모두 각지고 딱딱하다.
그러다 그렇게 그리워 마지 않은 바다와 드디어 만났다. 기차를 타고 강릉 바다에 다녀왔다. 멀기만 해 보이는 동해라도, KTX로 두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내 앞에 바다를 이렇게 가까이 볼 수 있다.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와 너울. 균일해 보이지만 일렁임은 일정하지 않다. 바다 특유의 짠내를 좋아하지만 마스크 탓인지 혹은 강릉 바다는 짠내가 덜한지, 후각까지 바다가 스며들지 않았다. 대신 바다에서 불어오는 묵직한 바람을 들이 마셨다. 그리고 내 안에 부스러기를 내보냈다.
새해 뜨는 첫해를 보진 못했어도, 1월의 바다는 기운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또 생각하기를, 2022년은 치열하게 보내보자고 또 다짐한다.
등대 쪽으로 걸어가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동네 주민 같아 보이는 남자들이 낚시를 한다. 10대의 남자 아이들 무리는 모여있는 것만으로 재미나 보였고, 중년의 아저씨는 낚시대를 내밀고 가만히 앉아있다. 그 물은 너무나도 맑았다. 마치 지중해 바다처럼 투명했다. 와, 맑다. 아래가 다 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