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오기 전에
평일을 회사 출퇴근으로 채우고 주말은 평일의 고단함을 메꾸기 위한 잠과 늘어짐으로 채운다. 과연 무엇을 위한 삶인가를 심각하게 고찰하게 한다. 누군들 그러하겠지라는 삶의 애환으로 치부하기엔 누구나 이렇게 살지는 않는다는 날카로운 응수가 튀어오른다.
올해에는 있는 힘껏 에너지를 발산하며 바쁘게 살아야 겠다고 각성을 해보았다. 그동안 흐물텅한 맥빠짐을 묵인했다면 올해만큼은 후회 남지 않게 하고 싶은 거 좋아하는 거 다 하면서 지내겠노라고.
조금은 창피하지만, 주말에 외출하지 않는 건 두 명 이상의 무리들 틈에 홀로 있을 자신이 없었던 것도 부인할 순 없다. 무리의 웃음을 혼자 웃을 리 없는 내가 견딜 수 있을까. 그들의 다정함을 올곧게 바라보기가 여간 자신이 없었다.
혼자가 익숙했고 나름 즐겁게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젊지 않은 나는, 이제 고독보다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본 어떤 영화 요약 리뷰를 보고 마음 한 켠의 작은 안정을 녹여냈다. 한 여성이 미래에서 온 연인(그 모습은 할아버지지만)을 만난다. 함께 보낸 행복한 시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행복한 연애와 결혼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안고 평안함을 찾는다는 스토리였다. 물론 그 여성에게는 당시 소홀한 남친이 있었고, 그가 그녀의 진정한 연인은 아니었던 것. 남친이 이별을 선언하지만, 그녀는 미래에서 온 연인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슬픔이 더이상 괴롭지 않다. 그녀에겐 정말 자신을 사랑해 줄 인연이 찾아오리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나도 쑥스럽지만 나의 인연이 분명히 올 거라 믿으며, 그에게 내가 가기 전, 그가 나에게 오기 전 그 안의 시간을 후회없이 즐겁게 보내자는 마음을 먹었다. 어차피 그는 올 사람이고, 나는 그와 행복해질 사람이니까, 불안해 하지 말고 지금의 나의 시간을 꽉꽉 즐겁게 채우자고 말이다.
능동과 수동성이 교묘히 교차되어 보이지만, 나는 그에게 가기 위한 시간임을 인식하며 혼자 있는 시간을 소중하게 보낼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