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기 위한 방법
점점 운동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 젊음의 패기를 과시할 수 있는 나이가 지나가고 그 다음 연령대를 바라보는 체력을 길러야 한다. 부쩍 피곤함이 느껴진다거나 몸 이곳저곳이 아프면 운동의 필요성을 체감하기도 하지만, 운동이나 몸보신은 다음 나이를 위해 해야할 일이라고 들었다. 그러니까 당장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더라도, 30대인 나는 40대인 나를 위해 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분명 준비성이라는 차원에서 성실성을 보인다는 게 조금은 막연한 느낌이 없지 않다. 그러다 보니 해볼까 말까의 선택지에서 괜스레 귀찮다는 마음이 발동하게 한다.
꽤 쌈박한 차원으로 운동의 목적이
하나 더 늘어났다.
강단 있게 살기 위해서
어릴 때부터 싸움을 굉장히도 싫어했고, 갈등 상황에 몹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남자 아이가 나를 툭 때리고 도망가면 그때부터 기분이 나빠졌을 뿐 '쟤를 (악착같이) 잡아서 한 대 쥐어 박아야지'라는 생각은 없었다. 각별히 평화를 사랑했을까, 아니면 이미 벌어진 일에 용서와 자비를 보이지 않은 엄격함이었을까. 하여간 몸으로 쓰는 일은 능숙하지 않았기에 싸움, 운동, 춤 영역은 잼뱅이였다.
그런데 말이지, 나에게 해를 끼치는 녀석들을 강력하게 저지하기 위해서는 몸을 잘 써야 하는 게 너무나도 맞는 말인 것 같았다. 선사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동물에게서 내 몸을 보호하고, 차디찬 바람이나 눈보라를 피하기 위해 바삐 움직여 살아야 했기에 생존 능력이 만렙이었을 것이다. 요새는 그런 위협보다는 정신을 마구 들쑤셔 놓는 것에서 온전함을 유지하기 위해 마음챙김 능력이 엄청나게 요구되는 시대다. 정신과 체력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는 것은 지당한 말이지만, 번번이 피곤함에 몸이 흐드러지기 일쑤라 될 대로 되라라는 맘을 갖게 된다. 진리임에도 실천이 어려운 것은 참으로 고뇌에 빠지는 일. 아프고 피곤한 몸에서 강한 정신력이 나올리 만무하다.
몸이 튼튼해야 정신도 똑띠 차릴 수 있고 더 나아가 내 정신을 침범하는 무리들과도 싸울 수 있는 여력이 생기는 것이다. 싸우기 위해서라는 의미보다 침범 당하지 않고 나의 권리를 당당하게 외치기 위해 체력이 필요한 법이다.
영화에서 보면 복수를 위해,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몸을 단련하는 장면이 꽤 나온다. 몸과 정신은 연결임을 인식한다면 몸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은 나를 지키기 위한 행동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한 무리에 제압 당하지 않으려면 강한 체력과 또렷한 눈빛은 필수. 직장인으로서도 적당한 싸움꾼 기질은 필요하지 않을까.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 살아가다 보면 더욱 피곤해지기 때문.
야무진 인간이 되기를 바라왔다. 다짐만 반복하고 좋은 글귀를 되뇌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우선 몸을 단련하면, 야무짐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은 아닐까. 온전히 나로서 잘 살고 내 마음을 편하게 하며, 사회와 원활한 관계를 맺기 위해 몸을 만드는 것을 '나에게' 요구한다.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