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상한선도 하한선도 정해지지 않은 길에 오롯이 자신의 판단으로 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그럴 때 불안이 찾아오기 쉽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방향이 없이 사는 것은 진정한 삶이 아닐지도 모르니, 얼른 제대로 된 방향을 찾아야 한다는 조바심도 난다. 밤하늘 달님을 바라보며, '달님, 저 잘하고 있나요?'라고 묻곤 한다. 어찌 되었건 힘을 내어 살아가자고 다독이거나 부추길 수밖에는 없다.
나는 불안을 떨쳐내고 싶었다. 불안에서 확신의 방향으로 키를 돌려 용감하게 살아나가기를 바랐다. 불안이 그나마 남아있는 내 시간과 정신 그리고 명료함을 앗아가지 않기를 바라왔다. 긍정성으로 피어나는 온기와 같은 것만을 생각해 내자고 다짐도 해보았다. 그러다 보니 조금 지치고 힘들었다.
"행복하려면 우선적으로 고통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게 사람들이 갖는 일반적인 생각이지.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 나는 내 행복 속에 내 우울함과 연약함을 위한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고 생각해."
- 아침의 첫 햇살/파비오 볼로
'아침의 첫 햇살'이라는 소설은 진정한 사랑을 느끼지 못한 엘레나가 짜릿한 경험으로 자신을 알아가는 이야기다. 남성 작가임에도 너무나 섬세하게 여성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어서 놀라움을 주는 책으로 알려져 있다. (화자가 엘레나라는 결혼한 여자) 엘레나의 친구인 카를라는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하고 다른 도시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엘레나가 자신의 고민을 토로하던 중 카를라가 한 말이다. 뒤에 엘레나가 '화내지 않겠다면 말할게'라며 현실 도피가 아니냐는 반문을 하긴 하지만, 카를라의 말은 내 안에 어느 정도 불안의 영역을 놓아두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내가 막무가내로 쉴 수 있는 공간 말이다. 괜하게 밝은 척, 착한 척, 배려하는 척 하지 않고 그저 잿빛이면 잿빛인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나를 풀어놓을 수 있는 곳. '왜 그런 거야'라고 나를 타박하지 않고 이런 나라도 괜찮다고 다독이는 그런 공간. 물론 불안, 연약함, 우울이 무한대로 펼쳐지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나의 한 부분임을 인정하는 것도 나를 위한 길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불안했지만 불행하진 않았다. 무언가 뜨거운 강이 속에서 흐르는 듯했다. 그건 뜨거운 강으로 변장한 내 '첫' 열망이었을까?
우는 것은 마음을 청소하는 일이다. 목놓아 울었더니 얼굴 아래부터 발가락 끝까지 속을 제대로 샤워한 기분이다. 예전에는 '마음 청소'를 정말 열심히도 했다. 손가락에 꼽을 만큼 친한 친구 앞에서 마음을 푹 놓고 실컷 울어대는 일도 있었는데, 친구들은 나중에 장난삼아 그 일을 '완창(판소리의 한 마당을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는 일)'이라 부르며 지금까지 놀린다.
(중략)
무엇보다 나는 눈물이 차올라, 저절로, 쏟아지는 일을 사랑한다.
- 소란/박연준
시인 박연준의 산문에는 그녀의 불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불안했지만 불행하진 않았다'는 말에 나는 놀랐다. 불안하다는 것이 불행한 것은 아니었어! 게다가 완창을 하듯 울음이 차오르는 때를 그대로 담아내고는 그러면 다시 힘을 낼 마음 청소가 되었다고 말한다. 울고 싶을 만큼 답답하고 불안한 날들이 누구인들 없을까. 그래서 나의 불안을 위해 내 한 켠을 내어주기로 한다. 잠식당하는 대신 적과의 동침처럼 인정하며 걸어가보기로 한다. 나는 불안함을 내 곁에 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