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람을 좋아합니다
일요일 아침, 눈 비비며 일어나니 바깥에 눈이 소복히 쌓여있다. 첫눈이 내린다더니 정말로 생경하면서도 익숙한 풍경으로 눈이 와 있었다. 눈이고 크리스마스고 연말이고 아직이었는데, 이로써 눈이고 크리스마스고 연말이라는 게 당장 눈 앞에 내려 앉았다. 내 마음은 아직 크리스마스 캐럴이나 재즈조차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는데 눈이 이제 그럴 때가 되었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근래 들어 답답하면 밖이나 공원을 걷곤 한다. 동네에 자기만의 세상을 갖고 있는 듯한 남자가 이곳저곳을 정처없이 거니는 모습을 보곤 했다. 저 사람은 걷는 걸 좋아하나보다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 사람도 속이 시끄럽거나 답답함이 차올라 밖을 그렇게 거닐었던 게 아니었나 싶다. 예전엔 이유 없이 걸어본 적은 별로 없었다. 귀찮지만 운동이라는 차원으로 공원을 열심히 걸었는데, 요새 내 걷기의 목적은 수런거리는 내 마음을 새로운 공기로 정화해주기 위함이다. 마치 바다 속이나 고립된 공간에서 숨을 쉬려고 발버둥 치는 행위랄까.
흰눈이 온 일요일, 바깥에 나갔다. 부담되는 회사일을 준비해야 하는데 그게 하기 싫었던 것도 있었지만, 찬바람을 맞으며 내 몸 속 어딘가에 숨구멍 하나 채워주고 싶었다.
이곳저곳 헤매다 공원 근처에 오니 사람 없는 적막과 흐린 하늘, 녹아드는 쌓인 눈이 또렷히 보였다. 조용한 가운데 까마귀의 울음 소리와 질퍽대는 눈, 서늘한 촉감의 바람 속을 어기적 어기적 걸었다.
다짐도 판단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두었다. 그저 이렇게 걷다 보면 아마 해답이 아니더라도 나를 살리는 적당한 상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건 몰라도 겨울 바람은 분명히 나를 살려줄 것이다. 그것만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