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나무의 파수꾼/히가시노 게이고
참을 수 없는 더위 속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는 추리물 정도. 그리하야 최근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연달아 보았다. 11문자 살인사건, 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과 녹나무의 파수꾼까지 내리 세 권을 쭉.
히가시노 게이고는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소설가이자, 한국에도 꽤 많은 책이 번역된 성실한 이야기꾼이다. 그의 책을 한 번 정도 읽어본 독자들도 꽤 있지 않을까. 다소 늦게 유명해진 작가다 보니, 유명해진 후에 예전 작품이 번역되어 한국에서 다작을 하는 작가로 인식된 면도 있다고 한다. 꾸준히 신작을 내는 일이란, 온몸을 끌어다 쓰는 굉장한 노동이기에 대단하고도 대단하다.
<녹나무의 파수꾼>은 휴머니즘 낭낭한 따듯한 이야기다. 가족애라는 소재로, 쫀쫀한 구성과 명확한 문장으로 몰입감을 높여 끝까지 읽게 만든다. 추리소설가의 휴머니즘이라니 이색적인 조합인데, 그의 전작인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알고 있다면 따듯함이라는 키워드도 작가를 표현하는 낱말임을 알 수 있다.
<녹나무의 파수꾼>은 말 그대로 녹나무를 지키는 인물이 나오는 이야기다. 누군가 녹나무에 자신의 뜻과 생각 등 모든 것을 기념하면, 유언처럼 후대에 혈족의 누군가에게 그 념이 전달되는, 간단히 말해 녹나무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 신령스런 메신저.
녹나무 파수꾼이 된 20대 청년 레이토, 그리고 그의 배다른 이모인 치우네. 녹나무를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함께 전개된다. 가족 사이에 생기는 오해, 전하지 못한 진심을 그가 죽기 전 녹나무에 담아두면, 그 마음이 가족에게 전달된다. 감상에 치우쳐 독자를 눈물 쏙 빼게 하기 보다 적당한 균형을 유지하며 가족애를 담아내고 있다.
작가는 추리소설의 대가이므로, 탄탄한 플롯과 긴장감 조성을 특출나게 잘 하기 때문에, 굵직한 스토리 라인만 완성된다면 쓰는 것쯤은 가뿐히 해내는 것 같다. 특히나 자극적인 사건이 등장하지 않음에도 비교적 긴 스토리를 지치지 않고 끌고 가는 것은 참 대단한 것 같다. 매끄럽게 흘러가는 구성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악의 요소가 없는 따듯하면서도 탄탄한 이야기.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라면, 오래 전에 제주에서 만난 구실잣밤나무가 생각난다. 카멜리아 힐 안쪽에는 나무를 꼭 껴안고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고 하는 행운목이 있다. 구실잣밤나무. 눈코입을 그려나 몹시 귀여워졌으나 굵직한 아름드리 나무다.
모든 이들의 소원을 다 들어주기엔 신도 나무도 벅찰테니 ‘힘을 주소서’라고, 어떤 일이든 담대하게 꿋꿋해질 수 있기를 빌고 싶다. 활짝 웃기를, 씩씩하기를, 스스로를 믿기를!